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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4 12:31:29

토요카와 신용금고 뱅크런



1973년 12월, 일본 아이치 현토요카와시에 소재한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파산 위기에 내몰릴 뻔했던 초유의 뱅크런 사태.

중견급 신용금고가 단 한 순간에, 그것도 은행측의 어떠한 과실도 없이 나락으로 갈 뻔한 사건이고 그 이유가 매우 황당하여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다.

1. 전개
1.1. 뱅크런1.2. 사태 수습
2. 긴급 조사
2.1. 사건의 진상2.2. 부수적 원인
3. 여담

1. 전개

뜬금없지만 진짜 아무런 징조도 없이 시작된 뱅크런이다 보니 그냥 배경같은 것도 없다. 토요카와측 입장에선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날벼락이었다.

1.1. 뱅크런

뜬금없지만 사건 자체가 진짜 이렇게 시작했다. 12월 13일, 별다른 특이점도 없었고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한 명, 두 명 예금을 해지하고 전액 인출하는 사람들이 보이더니 느닷없이 토요카와 신용금고 전 지점에 예금주들이 빗발치듯 쇄도해서 돈을 찾아가겠다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하루아침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뱅크런이 시작된 것이다.

이 날 하루동안 인출된 예금은 5천만 엔이었다. 2020년대 기준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당시의 물가를 감안하고, 또 전국구 은행이 아닌 아이치 현내의 지역구급 신용금고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토요카와측은 당황한다. 아니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하룻밤이 지나 12월 14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토요카와는 당사 재정과 신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각 신문사들은 토요카와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요 신문사 1면에는 토요카와의 성명문이 실렸는데, 정작 사람들은 이 호소문을 보고 속지 않겠다., 토요카와가 진짜 위험하구나라고 판단해버려 뱅크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덕분에 토요카와 신용금고 전 지점에 예금을 해지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워낙 사람이 많아 은행 바깥까지 대기표를 받아든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토요카와와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대기 행렬을 보고 토요카와가 망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곳곳에서 소란이 발생하여 경찰이 출동했는데, 이게 역효과를 가져왔다. 경찰들은 뱅크런으로 몰려든 사람들 사이의 소란과 충돌을 막고자 출동한 것인데, 이것이 엉뚱하게도 돈을 찾으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토요카와 내에 부정행위가 발생했고 경찰들은 이를 조사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라는 소문이 돈 것이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소문은 구체성을 띄웠다. 토요카와 내 주요 인사가 대규모 회계부정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토요카와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 사실을 미리 안 사람들이 13일부터 예금을 해지하기 시작했고, 경찰도 뒤늦게 비리 조사를 위해 출동한 것이다. 토요카와 신용금고의 대표이사는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는 식의 이야기가 은행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사실상 정설로 자리잡았다.

1.2. 사태 수습

날이 바뀌어 12월 15일, 여전히 예금 인출을 위해 수많은 인파가 은행으로 몰렸다. 그런데 어느 지점 앞에 맨 노년 신사가 나타나 호소문을 발표하고 진정해달라고 호소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했다고 소문이 난 토요카와 신용금고의 대표 이사였다. 이로서 소문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님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핸드폰도 없던 시절, 지점 한 곳에서 대표가 소문이 허위임을 밝혀도 그게 바로 퍼지지는 못했고 어디까지나 대표이사가 살아있다는 것만 증명한 것일 뿐, 금고가 멀쩡하다는 증거가 되진 못했다.

이때 개입한 것이 바로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었다.

13일 당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던 일본은행은 직원 몇 명을 파견해 조사했지만 이들의 조사 결과로도 토요카와 신용금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뱅크런으로 인해 지급준비율 이상의 금액이 대거 인출되면서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행으로서도 멀쩡한 은행 하나가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꼴을 볼 수 없었고, 전격적으로 토요카와측에 긴급 유동성 자금, 그러니까 현금을 대거 공급한다. 그런데 단순히 현금만 공급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은행은 현재 토요카와의 위기는 결국 출처 불명의 악의적인 소문때문이라고 판단했고 단순히 현금만 공급해서는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일본은행과 토요카와는 협의 끝에 긴급 지원한 현금을 뭉터기로 은행 내 고객들이 보이는 곳에 두었다. 토요카와에는 이렇게 현금이 넘쳐나니 고객 여러분들은 불안해하시지 말라는 메세지였다. 이를 본 고객들은 이 정도면 내 순번이 올 때까지 돈이 바닥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추가적인 도움이 있었다. 당시 일본 신용금고 연합회에서는 토요카와측에 몇 가지 조언을 하여 이를 실행에 옮긴다. 첫째로는, 지점 곳곳에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포스터였다. 이 포스터는 은행은 건전하니 밑고 돈을 맡겨달라는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얼마든지 돈을 찾아가셔도 괜찮습니다.라는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행이 공급한 현금뭉치와 이 자신감넘치는 포스터를 같이 보게 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한다. 두 번째로는, 인출을 기다리는 마지막 손님이 올 때까지 절대 지점 문을 닫지 말고 자정이 넘더라도 창구를 열고 영업하여 고객에게 돈을 지급할 것이었다. 일반적인 은행 영업시간을 훌쩍 넘겨도 고객들이 계속 예금을 인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15~17일에 걸쳐 토요카와 신용금고의 뱅크런 대혼란은 수습기에 들어갔다.

2. 긴급 조사

피해자인 토요카와 신용금고 본인들은 물론, 긴급지원을 해준 일본은행과 신용금고 연합회, 그리고 경찰까지 관련자들은 모두 이를 토요카와에 원한이 있거나 혹은 토요카와를 파산시켜 이득을 얻을 자가 고의적으로 흘린 악의적 소문에 의한 것이라 판단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엄청난 인원을 투입하며 소문의 근원지를 역추적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대면조사했다. 멀쩡한 은행 하나를 파산시킬 뻔한 중대차한 범죄였으니 이는 매우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

그런데...

2.1. 사건의 진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악의적 루머따위 하나도 없었고 그냥 농담 한 마디가 와전되면서 역대급 뱅크런을 유발했다.

이 뱅크런이 어떻게 터지게 된 것인지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제의 발단은 12월 8일, 하교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는 전철 안이었다. 이중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친구 사이인 3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진학반이 아닌 취업반[1]으로 곧 취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중 한 명이 지역 은행인 토요카와 신용금고에 취업이 확정된 상태였다.

친구 사이인 2와 3은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신용금고는 위험한 거 아니냐는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이들이 건넨 농담의 뜻은 은행은 강도가 들이닥칠 수도 있으니 위험한 거 아니냐는 말 그대로 농담이었다.

문제는 1이 친구들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2와 3이 농담을 건넬 때 강도가 들 수 있으니 금고는 위험한 거 아니냐고 한게 아니라 이를 그냥 생략한 채 금고는 위험한 거 아니냐고 말했기에 1은 친구들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고3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평생직장이 될 곳이 위험하다고 하니[2] 민감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1은 귀가 후 저녁에 친척인 4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카와라는 상호명은 언급하지 않고 신용금고가 위험한 것이냐고만 물어보았다. 뜬금없는 조카의 전화에 4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끊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4는 1의 부모로부터 자식(1)이 토요카와 신용금고에 취업이 확정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였기에 조카인 1이 자신에게 말한 신용금고가 토요카와 신용금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1은 신용금고라는 업계와 직장이 위험한 것이냐고 물어본 건데 4는 그 전에 들은 정보를 토대로 토요카와 신용금고라는 특정 회사가 위험한 거 아니냐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상술했듯 4에게 있어 1은 조카였고, 조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4는 다시 자신의 친척 중 한 명인 5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하냐고 물어보게 된다. 5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5가 토요카와 신용금고 본점 인근에 거주해서 혹시 전해들은 이야기가 뭐 있나 했기 때문. 그러나 토요카와 신용금고는 멀쩡했기에 5는 그런 이야기를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5역시 4의 말을 전해듣고 찜찜해하기 시작한다.

날이 바뀌어 12월 9일, 5는 찜찜한 마음을 품은 채로 동네 미용실을 방문하여 머리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미용실은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매우 좋은 장소였다.(...) 5는 단골 가게이기도 한 미용실 주인 6에게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로 말한다. 뭔가 문장이 바뀐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착각이 아니다.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하냐는 4의 질문이 5를 거쳐 6에게 전달되면서 위험할 지도 모른다로 바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미용실 주인 6은 흔히 볼 수 있는 말 많은 동네 아주머니였고, 자신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말을 전하게 된다. 문제는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이 과정에서 또 다시 바뀌어 6에 의해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가 된다.(...)

여기까지 말이 바뀌는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실제 한 말이 아닌 화자의 의도)

1. 학생2&3 -> 학생1 : (은행강도가 들지도 모르니) 신용금고는 위험하데
2. 학생1 -> 친척4 : 신용금고 업계가 위험한가요?
3. 친척4 : (학생1은 토요카와 신용금고에 취업 내정이니 토요카와에 뭔 일이 있나 알아봐야겠다)
3. 친척4 -> 친척5 :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한가요?
4. 친척5 -> 미용실 주인6 :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위험할 지도 모르겠어요.
5. 미용실 주인6 -> 불특정 다수 : 토요카와 신용금고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작은 동네에서 퍼지는 소문일 뿐이었다. 사실 소규모 촌락이나 집단에서 이런저런 유언비어가 퍼졌다가 사그러드는건 흔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세탁소 주인 내외(8&9)가 등장한다.

6이 동네 사람들에게 토요카와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니던 곳 중엔 8&9가 운영하는 세탁소도 있었다. 6이 8&9에 직접적으로 대화를 한 적은 없지만, 세탁소 내에서 손님들끼리 떠드는 것을 이들 내외가 못 들을리 없었다. 문제는, 이들 내외는 몇 년 전에 실제 부실운영으로 파산한 신용금고 때문에 저축해둔 돈 상당수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내외는 손님들끼리 떠드는 대화를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인 12월 13일. 세탁소 단골 손님이던 10이 등장한다. 10은 세탁소를 방문하여 급한 용건 때문에 전화가 필요하니 좀 써도 되겠냐고 부탁하고 8&9는 흔쾌히 허락한다. 핸드폰이 나오려면 30년은 더 기다려야하는 시절, 공중전화도 마땅치 않은 곳에선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이나 손님이 급한 용무로 전화를 이용하는 일이 흔했었으니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 10이 대화상대에게 한 말이었다.
토요카와 신용금고에서 120만엔을 즉시 인출하라

사실 10은 상술했던 토요카와 신용금고 관련 소문은 전혀 모르던 상태였고, 그저 우연히 토요카와 신용금고와 거래를 하고 있었으며 역시 우연히 그때 사업상 이유로 현금이 필요해서 거래하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려 한 것이었는데, 하필 우연히도 이게 과거 신용금고에 데인 적이 있고 근래 들어 안좋은 소문을 듣고 있던 8&9가 운영 중인 세탁소에서 전화를 빌려 통화한 것이다.

물론 10은 사업상, 그리고 개인적인 사유상 돈을 인출한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그저 전화를 빌려줬을 뿐인 주인 내외에게 해주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안그래도 흉흉한 소문을 듣고 있던 8&9는 자신들이 들은 통화내용과 소문을 결부시켜 토요카와가 파산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8&9는 즉시 토요카와 신용금고로 달려가 자신들의 예금을 전액 인출했다. 그리고 이 부부는 남들도 몇 년 전 자신들같은 피해를 보게 할 수 없다는 선의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지인, 동네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알리기 시작한다. 이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기겁하여 일제히 토요카와 신용금고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던 은행에서 하루아침에 사상 초유의 뱅크런이 일어난 이유였다.

조사에 나선 경찰과 금융당국, 그리고 결과를 받아든 토요카와측은 모두 허탈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의 악의도 없었다. 엄청난 우연과 우연, 그리고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오해가 겹치고 이를 사람들의 선의가 부추기면서 건전했던 은행 하나를 하루아침에 파산시킬 뻔한 역대급 나비효과이자 스노우볼이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이 소문에 연루된 사람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범죄의 구성요건이 전혀 충적되지 않은 것이다.

2.2. 부수적 원인

3. 여담


[1] 일본의 일반계 고교는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진학반과 졸업 후 바로 취업코스를 택하는 취학반으로 나뉜다.[2] 동양 문화권은 오래 전부터 처음 취업한 곳이 평생직장이라는 사고가 강하다. 중간에 이직을 한다고 하면 기존 직장에서 뭔가 문제가 있어서 내쳐진거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게 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이게 많이 약해졌지만 일본은 여전한 편이다. 하물며 사건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