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퍼비스 리 파스코 (Pervis Lee Pasco) |
생년월일 | 1980년 5월 22일 ([age(1980-05-22)]세) |
국적 | 미국 |
출신 학교 | 캔자스 주립대학교 |
신체 사이즈 | 200cm, 115kg[1] |
포지션 | 센터 |
KBL 소속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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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농구선수.KBL 시절 성실함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폭행 물의를 일으킨 바람에 처음으로 영구제명을 당한 선수였다.
2. KBL 이전
16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클리어워터 고등학교 시절에는 커리어 하이 42득점을 기록하며 지구 챔피언 우승에도 거머쥐었으며, 이후 캔자스 주립대에서 득점과 리바운드로 앞세워 나가며 신인상과 컨퍼런스 후보 멤버에도 뽑혔다.이후 이탈리아와 터키 등에서 활동하다가, 2006년 9월 1일 창원 LG 세이커스가 파스코를 영입함으로써 KBL 첫 무대를 밟게 되었다.
3. KBL 시절
첫 경기인 2006년 10월 21일 삼성전에서 9득점 8리바운드 2어시스트 3블록으로 LG빠들에게 화려하게 선을 보였다.2006년 12월 30일, 정규리그 인천 전자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4쿼터 8분 49초를 남기고 전자랜드의 외인 키마니 프렌드가 레이업 슛을 시도할때 파스코가 따라가며 블락을 시도하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키마니와 같이 넘어졌다. 그 과정에서 파울을 범한 키마니가 파스코에게 주먹을 먼저 휘둘러 충돌이 빚어졌지만 양팀 선수들은 코트에서 두 선수를 진정시키며 사태는 악화되지 않았는데, 맞은 파스코는 계속 진정이 되지 않자 억울하다는 듯이 심판에게 항의했고, 반대로 키마니는 말린 선수들을 뿌리치고 파스코에게 다가가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심판은 두 선수에게 퇴장이 내려졌고 재정위원회에서 파스코에게는 3경기 출전정지 처분과 300만원의 벌금을, 키마니에게는 1경기 출전정지와 30만원의 제제금을 각각 부과했다.
그러나 KBL 경기 중에서도 진정으로 가장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경기는 4개월 뒤인 2007년 4월 12일에 진행되었던 4강 플레이오프 3차전 부산 KTF와의 경기로, 애런 맥기가 출장정지 징계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자 KTF는 장영재에게 파스코 전담 수비를 맡겼는데, 실상은 전담 수비라기보다는 거친 파울로 파스코의 멘탈을 흔들어 놓는 역할을 맡았다. 파스코가 볼을 지닌 가운데 장영재가 거친 파울을 범하자 신경전[2]이 벌어진 과정에서 팔로 장영재의 목과 가슴을 밀치며 곧바로 심판으로부터 퇴장 명령이 내려진 뒤 그새 분을 못 참은 파스코는 심판을 밀치는 2차 사고까지 쳤고, 결국 직원들에게 끌려가 코트를 떠나야만 했다. 다음 날 LG 구단은 플레이오프 기간이었음에도 파스코를 전격 퇴단시키는 강경 조치를 취했고, 한국농구연맹은 긴급 재정위원회를 개최해 파스코에게 KBL 사상 처음으로 영구제명을 내리면서 한국 농구 무대에서 떠나게 되었고[3], 이후 각 나라들를 전전하다가 2014-15 시즌, 칠레를 마지막으로 현역을 은퇴했다. 한편 후에 이에 대해 찰스 민랜드와 현주엽은 퍼비스 파스코가 잘못한 건 맞지만 외국인 선수에 대해 거친 파울을 용인하는 분위기에 대해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4. 관련 문서
[1] KBL이 측정한 결과[2] 사실 장영재도 과도한 수비로 파스코를 계속 터치했고, 파울 선언 이후에 파스코에게 "뭐 X발!"이라고 욕을 한 것이 잡혀 욕을 먹었다.[3]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심판들의 답이 없는 행각이 자주 벌어지며 파스코의 행위가 오히려 재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