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8:30:09
페루 독립 전쟁 Peruvian War of Independence Guerra de Independencia del Perú |
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 전쟁의 일부 |
날짜 | <colbgcolor=#fff,#191919>1809년 ~ 1826년 |
장소 | 페루, 볼리비아 수크레 지역 |
결과 | 페루의 독립 |
교전국 및 교전 세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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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파: 쿠스코 반란군 페루 보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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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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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
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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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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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독립주의 군부 독립연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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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파 군대 |
피해 |
총 20,000명 사망 페루에 거주하던 스페인 민간인 6,000명 사망 또는 추방 |
[clearfix]1809년 페루 남부 지역에서 스페인 제국에 대항하는 독립군들의 전투를 시작으로, 1811년 라파스에서 일어난 라파스 혁명과 와키 전투, 1824년 아야쿠초 전투, 1826년 카야오 함락으로 이어진 독립 전쟁.
페루는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유럽에 의존하던 탓에 엘리트 계층이 주로 거주하던 해안가 중심으로 수출입을 통한 경제적 성장을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사는 지방 지역은 소외되면서 원주민들에 대한 대우는 더욱 처참해져갔다. 원주민들은 새로운 시민권을 1861년 8월 27일 얻게 된지만, 20세기까지 원주민들은 대농장(haciendo)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원주민들의 불만을 일으키기 충분했고 이후 페루 내에서 일어나게 되는 여러 정치사회적 혼란의 근원이 된다. 원주민들과 정부 사이의 갈등,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학살 등은 21세기에도 이어져왔고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아야쿠초를 비롯한 여러 지방 도시에서는 1980년대부터 사회주의 게릴라 단체인 빛나는 길이 정부와의 마찰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