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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1 04:39:03

펠로피다스

<colcolor=#ffffff> 펠로피다스
Πελοπίδας | Pelopidas
파일:Epaminondas defending Pelopidas(crop).jpg
<colbgcolor=#055eb0> 출생 미상
테베
사망 기원전 364년 (향년 62세)
테살리아
직업 정치인, 군인
참여 전투 레욱트라 전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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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 테베의 정치가이자 장군.

2. 생애

히포클로스의 아들 펠로피다스는 테베의 명문 집안 출신이었다. 젊은 나이에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자신은 재산의 주인이지 재산의 노예가 아니라며, 그 재산으로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 그런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펠로피다스의 도움과 은혜를 고맙게 여겼지만 오직 에파미논다스만은 그에게 한 푼의 신세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에파미논다스는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난한 친구였다. 펠로피다스는 그의 고집을 알고 그를 따라 헌 옷을 걸치고 그처럼 식사하고 무술을 닦으며 고생을 함께 했다. 이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들의 우정은 만티네이아 전쟁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은 테베의 동맹국이던 스파르타에서 보낸 증원 부대에 함께 참가하여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쟁 중에 스파르타 부대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서 많은 병사들이 도망치는 일이 생겼다. 이로 인해 펠로피다스가 정면에 일곱 군데나 상처를 입고 쓰러지자, 에파미논다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의 생명을 지켰다. 그 때 마침 스파르타 왕 아게시폴리스가 달려와서 다행히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펠로피다스는 테베의 평민파에 속해 있었는데, 귀족파에 속해 있는 귀족들이 스파르타 장군 포이비다스를 끌어들여 평민파 지도자를 죽였다. 졸지에 정치범이 된 펠로피다스와 평민파 당원들은 아테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귀족들은 불안했는지 자객을 보내 평민파들을 하나둘씩 암살하기 시작했다. 이에 펠로피다스는 망명자들을 모아서 테베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자고 설득했다.

펠로피다스는 동지들의 찬성을 얻자 곧바로 테베에 남아 있는 동지들에게 비밀리에 자신들의 게획을 알렸다.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테베의 일류명사 카론은 동지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그의 집을 제공했으며, 필리다스는 적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서 고위급 장군의 비서관이 되었다. 또 에파미논다스는 오랜 전부터 청년들과 많은 모임을 갖고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드디어 거사 날짜가 결정되었다. 테베로 몰래 들어온 12명의 명문가 청년 결사대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사냥꾼 차림으로 테베에 있는 카론의 집에 모였다. 그러나 카론의 친구인 히포스테니다스는 막상 그 일이 닥치자, 그들이 하는 일이 너무 큰 모험이라는 것을 알고 겁을 잔뜩 먹었다. 그래서 그는 몰래 집으로 돌아가서 심부름꾼을 시켜 동지들에게, 아직은 때가 이르니 다시 좋은 기회를 기다리자는 말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심부름꾼이 말을 타려고 하는데 말안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말안장을 이웃 사람에게 빌려준 것이었다. 이 일로 부부는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언쟁이 심해지자, 부인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이런 심부름은 가려는 사람이나 시킨 사람이나 분명 좋지 않은 일을 당할 테니 두고 보세요!" 심부름꾼은 말다툼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데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히포스테니다스의 말은 전해지지 않았고,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펠로피다스와 그의 동지들은 각자 흩어져 해가 저물기 전에 시내로 숨어 들어갔다. 그 날은 찬바람이 불고 눈까지 휘날렸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일행은 카론의 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적의 기밀을 빼내려고 들어간 비서관 필리다스는 그 날 귀족파 지도자인 아르키아스를 초대하고 잔치를 벌려 술에 취하게 했다. 그런데 아르키아스에게 카론의 집에 의심스러운 자들이 숨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에 아르키아스는 카론을 불렀다. 카론은 크게 망설였다. 자신이 죽는 것은 개의치 않으나 자신의 실수 때문에 친구들이 의미없는 죽음을 당할까봐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집을 나서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펠로피다스에게 맡기면서, 만일 자신이 배반했다고 생각되면 이 아이를 가차없이 죽이라고 했다. 카론의 말을 듣고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두들 그를 나무랐다. 큰 어려움이 닥쳤다고 해서 그를 의심하는 비겁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카론은 동지들 각자에게 인사를 나눈 다음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채 밖으로 나와 아르키아스를 만나러 갔다. 아르키아스는 카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으나, 다행히 아르키아스는 사건의 진상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카론은 근거없는 소문에 마음을 쓰지 말라고 달래면서 자신이 조사해 보겠다고 아르키아스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또 다른 어려움을 던져주었다. 마침 아테네 최고 제관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이 음모에 대한 폭로가 상세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이 긴급한 일이라고 편지를 곧바로 읽어달라고 했으나, 술에 취한 아르키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긴급한 일이라면 내일로 미루어야겠군."

이윽고 펠로피다스와 친구들은 아르키아스와 그 일당들을 습격하여 죽이고는, 시민들을 모아 테베의 해방을 이루자고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그리고 그 다음날, 펠로피다스는 시민들을 무장시켜, 테베 외곽에 주둔하고 있던 스파르타 군 1500명를 쫓아냈다. 이 사건이 특히 의의가 갚은 것은 12명의 인원으로 오직 대담성과 기술을 통해 자기들보다 강한 적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여러 폴리스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힘에 대한 신뢰를 잃은 스파르타의 패권은 한순간에 끝장이 나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자체 군사력만큼은 아직 녹슬지 않았기 때문에, 스파르타가 군사를 동원하여 테베를 칠려고 하자 이에 놀란 아테네 사람들은 테베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하고 아테네에 남아 있던 테베 망명자들을 다 쫓아냈다. 테베의 사정은 아주 위태로워졌다. 그러자 이제 장군이 된 펠로피다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이간질시키는 계책을 쓰기로 했다. 펠로피다스는 말 잘하는 장사꾼을 시켜 스파르타 장군 스포드리아스에게 아테네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아테네의 항구 피리우스를 빼앗자는 계획을 흘렸다. 그리고 이 정보를 아테네에게도 알려줬다. 이 술수에 넘어간 스포드리아스가 군대를 이끌고 밤중에 아테네 영토를 침범했으나, 기습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던 아테네는 이를 손쉽게 막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결국 아테네는 테베와 굳은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고, 아테네를 따르는 여러 폴리스들도 이에 참여했다.

한편 테베와 스파르타는 계속해서 작은 충돌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이 충돌들은 테베 인들을 훈련시켜 전쟁을 익히게 하는 데 매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충돌이 심해짐에 따라 테베 인들은 전투에 익숙해져 경험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스파르타의 한 장군은 스파르타의 왕에게 "겁이 나서 싸우지도 못하던 테베 인들에게 전쟁 연습을 시켜 주셨으니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테베의 병사들에게 전쟁을 가르쳐 준 사람은 펠로피다스였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을 공격하게 하여 병사들을 적절하게 훈련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펠로피다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장군으로 뽑힌 해부터 줄곧 신성군단[1]의 사령관과 총사령관으로 평생토록 일했다.

펠로피다스는 테기라이 전투에서 소수 병력을 이끌고 스파르타 군과 맞섰다. 산골짜기의 험한 길로 스파르타 군이 오는 것을 본 병사 한 명이 펠로피다스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적들의 손 안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펠로피다스는 당당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손에 적이 들어온 것이다." 그러고는 치열하게 싸워서 승리를 거뒀다. 원래 스파르타의 용맹은 싸우기도 전에 상대를 눌러 버렸고 같은 병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전투로 인해 스파르타의 신화는 산산조각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다른 모든 나라들과 평화를 약속한 다음 갑자기 테베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클레옴브로토스 왕이 1만 명의 보병과 1천명의 기병을 이끌고 보이오티아로 진입했을 때 테베는 이 지상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다. 테베인에게 이런 큰 공포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펠로피다스는 나라의 사람들을 다독여 그들과 맞서기로 결정하고, 이윽고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 군을 맞딱뜨렸다. 전투가 시작되자 에파미논다스는 밀집 부대를 왼쪽으로 비스듬히 이끌었다. 스파르타는 대응하기 위해 대열의 모양을 바꾸었으나, 대열을 정비하는 틈을 타 펠로피다스는 3백명의 군사를 이끌고 돌격했다. 스파르타 군은 용기와 훈련도 소용없이 무수한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큰 패전을 당하고 말았다. 이 날 이후로 테베는 그리스 동맹군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다. 동맹군들은 기꺼이 테베의 지휘에 복종했다.

테베가 패권을 쥐고 나서 펠로피다스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양편을 화해시킨 뒤 참주 알렉산드로스[2]의 동생 필리포스와 귀족의 자제 30명을 데리고 테베로 돌아왔다. 이 사건은 다른 그리스인들에게 테베 인의 용맹과 정직함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펠로피다스는 페라이의 알렉산드로스가 도시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펠로피다스가 도착하자 참주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거느리고 성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펠로피다스와 그의 친구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죄를 변명하러 나온 것이라 짐작하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그들은 이미 알렉산드로스가 방자하고 잔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테베의 권위와 명성이 있던 탓에 감히 난폭한 짓은 못하리라 안심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무장하지도 않고 군대를 거느리지도 않은 채 다가온 그들을 곧바로 체포했다.

이 사건이 테베 인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크게 분개하여 군대를 보냈다. 에파미논다스는 전쟁을 서두르지 않았는데, 혹시 위기에 몰린 알렉산드로스가 자포자기하여 펠로피다스를 죽여 버리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에파미논다스를 만난 알렉산드로스는 두려움에 떨며 펠로피다스를 순순히 내어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알렉산드로스는 본성을 드러내어 약탈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자, 펠로피다스는 군대를 이끌고 알렉산드로스와 일전을 벌이기로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이 갑절이나 많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펠로피다스의 군대가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 격렬한 전투 중에 마침 펠로피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딱 마주쳤다. 적의 오른쪽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용병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를 보자 펠로피다스의 분노는 세찬 불길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어떤 위험도, 총지휘관이라는 무거운 책임도 잊은 채 알렉산드로스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감히 펠로피다스와 맞서 싸울 용기가 없어 뒤로 물러서더니 호위병들 속으로 숨어 버렸다. 무수히 많은 적들이 펠로피다스의 창에 찔려 죽거나 달아났지만, 어느새 너무 깊숙이 적의 진형으로 와 있었다. 후방의 적들이 그를 향해 소나기 같은 화살을 퍼부어댔다. 그렇게 펠로피다스는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펠로피다스의 눈부신 활약으로 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그를 본 테베 병사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병사들은 그를 아버지, 해방자, 스승이라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폴리스에서 그의 장례를 치르겠다고 얘기했으나, 결국 테살리아 장로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장사를 지내겠다고 테베 인들에게 부탁했다. 테베 인들은 그들의 절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장례는 매우 엄숙하게 치러졌다. 그 후로도 펠로피다스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깊은 사랑 속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래 기억되었다.
[1] 신성군단은 친한 동지들로 이루어졌는데, 심지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동성애)일 경우, 싸움터에서도 돕고 서로의 눈에 비겁한 자로 비추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2] 페라이의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더 대왕과는 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