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02-11 12:26:29

표의숙

파일:표의숙.jpg
성명 표의숙(表義淑)
생몰 1921년 7월 18일 ~ 2008년 1월 3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부 경제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보훈병원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표의숙은 1921년 7월 18일 평안남도 평양부 경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일본대학(日本大學) 정치과를 졸업한 후 1944년 1월에 일본군 평양사단 내 48공병부대에 강제 입대했다. 당시 평양사단 내 각부대 학병들은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하며 일제를 상대로 집단 항쟁을 계획했다. 이때 그는 48공병부대 소속으로 학병 항쟁에 참가했다.

그들은 평양사단 병영 폭파를 계획하고 일단 부대를 탈출한 뒤 한국-만주 국경지대와 부전고원 등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가 때를 틈타 평양사단 병영을 폭파하기로 했다. 거사 날짜는 1944년 10월 1일로 정해졌지만, 날짜가 임박해지면서 각 부대간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자 부득이 거사일을 한 달 뒤인 11월 1일로 연기했다. 그러던 중 이러한 계획을 탐지한 한인 헌병보조원이 이 사실을 일본군 헌병대에게 밀고했고, 학병동지인 김완룡(金完龍)이 일본군 상관을 구타한 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평양사단의 학병항쟁계획이 드러났다.

결국 동지들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된 표의숙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이후 서울로 이주해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서울 보훈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표의숙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200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6.25 전쟁 당시 국군 포로로서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43년만에 생환한 예비역 중위 조창호(趙昌浩)가 그의 이종사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