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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3:44:12

프랭크 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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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4794><colcolor=#fff> 프랭크 프레드릭 보먼
Frank Frederick Borman,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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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파일:external/bloximages.chicago2.vip.townnews.com/52baf080c6a5b.preview-620.jpg
노년의 모습
출생 1928년 3월 14일
인디애나주 개리
사망 2023년 11월 7일 (향년 95세)
학력 미국육군사관학교 (학사)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항공공학/M.S.)

1. 소개2. 커리어3. 이후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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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인류 최초로 달에 갔다온 아폴로 8호의 세 우주 비행사 중 필두멤버. 나머지 2인은 짐 러블윌리엄 앤더스이다.

2. 커리어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는데, 엘리트 파일럿의 이미지와는 달리 어릴 적에는 비염으로 심하게 고생했다고 한다. 이에 부모님은 아예 사시사철 따뜻한 애리조나주 투싼으로 이사를 감행하였다(...) 때문에 자신은 투싼을 고향으로 여긴다고.

파일:external/si.wsj.net/OB-VK724_1120go_J_20121120144715.jpg

웨스트포인트 생도 시절.

1946년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한 뒤 풋볼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보먼은 어릴 적부터 비행을 즐겼기 때문에 미합중국 공군에 임관하고 조종사 훈련을 수료했다. 1950년 임관한 후에는 필리핀에서 주로 활동했고, 1957년에는 Caltech에서 항공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공군사관학교에서 조교수로 활동하며 열역학유체역학을 가르쳤다. 이후 테스트 파일럿이 되었고, 이후 1962년 NASA 우주인단 2기에 뽑혔다.

첫 미션은 제미니 계획의 5번째 유인 미션인 제미니 7호였는데, 이 미션은 역사상 최초의 유인 우주선간 궤도상 랑데부 미션이었다. 이 미션에서 그는 짐 러블과 함께 제미니 6A호의 월리 시라, 토머스 스태퍼드와 우주에서 조우했다.

이후 1966년에는 아폴로 계획의 3차 유인 미션이자 LM의 지구 궤도상 테스트를 수행할 예정이었지만, 거스 그리섬,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아폴로 1호 화재 참사로 희생되며 모든 계획이 중단되었고, 우주비행사들 중 유일하게 진상조사위원회에 뽑혔다. 이 당시 상원 청문회에 불려다니며 온갖 스트레스를 겪고 NASA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감당해내야 했지만, 끝끝내 우주비행사들의 의지와 고인들이 자신들에게 생긴 사고로 달을 향한 도전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될거라 생각한다는 강한 소신을 어필하며 NASA를 위기에서 지켜냈다.

실제 당시 청문회 영상(위 영상은 1분짜리 축약 영상이고 지구에서 달까지 2화에서 정말 감동적인 발언을 묘사해놓았다. 보먼역을 맡은 데이비드 앤드루스의 엄청난 싱크로율은 덤)
이후 아폴로의 발사 일정이 심각하게 촉박해지는데 달 착륙선 개발도 지체되자 급조된 사령선 단독 달 궤도 비행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아폴로 8호. 이 미션이 워낙 중요했던지라 NASA 측에서는 당초 보먼이 배정받았던 팀원 중 디스크에 걸린 마이클 콜린스의 대타로 보먼과 함께 제미니 미션을 수행했던 러블을 투입하며 심혈을 기울였다.[1]

보먼은 이 미션 도중 구토를 하며 관계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다행히 몸상태를 회복하며 임무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후 달 뒷면으로 갔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Earthrise(지구돋이)를 목격하였다.



지구에서 달까지에 묘사된 장면.

이후 보먼과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은 킹 제임스 성경창세기 1장을 읽으며 1968년의 크리스마스를 역사에 길이 남게 했다.

이후 아폴로 8호는 미션의 가장 큰 핫이슈였던 지구 방향으로 분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엔진이 제대로 동작하며 성공적으로 지구에 돌아왔다. 이 덕에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이후 달 착륙선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며 아폴로 11호의 역사적인 달 착륙을 통해 소련을 이기는 데 성공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을 받아서 함께 관전했다. 이후 달 착륙 임무를 다시 제안받기도 했지만, 보먼 본인은 고사하고 은퇴하였다. 아내가 자신의 험난한 파일럿 생활을 바라보며 알코올 중독에 걸리며 요양원 신세를 졌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 미국 정부는 그에게 우주 명예 훈장을 수여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3. 이후

닉슨 대통령은 아폴로 8호 이후 보먼을 NASA에서 다시 우주에 올려보내는 대신 대외활동에 썼다. 베트남 전쟁기 미군 포로들의 귀환을 목적으로 북베트남에 파견되기도 했고, 여러 평화운동에서도 활동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뒤 이스턴 항공에서 임원이 되어 회장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근래 들어서는 뉴멕시코주에서 거주하며 오래된 항공기들의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

4. 기타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데이비드 앤드류스가 연기했다. 주름살이 좀 많은 것 외에는 싱크로율이 꽤 높은 편. 아내 수잔이 겪었던 마음고생도 잘 묘사되어 있다.

참고로 2023년 11월까지 보먼을 포함한 아폴로 8호크루 전원 생존하였다. 그리고 유독 이혼율이 높은 우주비행사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크루가 이혼하지않고 2023년 11월까지 결혼생활을 유지중인 우주인으로도 역대급이고 가정적으로도 대단한 멤버들이다.

[1] 콜린스는 대신 지상연락관으로 8호와 교신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로 달에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