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세군도 Fidel Segundo | |
본명 | 피델 벤투라 세군도 Fidel Ventura Segundo |
출생 | 1894년 4월 24일 |
필리핀 도독령 북일로코스주 라오아그 | |
사망 | 1945년 1월 6일 (향년 50세) |
필리핀 제2공화국 마닐라 | |
복무 | 필리핀 자치령 육군 |
최종 계급 | 준장 |
복무 기간 | 1917 ~ 1945 |
학력 | 마닐라 고등학교 필리핀 대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
참전 | 태평양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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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필리핀의 군인.2. 생애
북일로코스주 라오아그에서 태어났고 마닐라 고등학교를 졸업후 필리핀 대학교에 진학했다. 1913년 미국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고 1917년 졸업 후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1차 대전 기간동안 전시계급 소령까지 올랐고 필리핀 척후대[1] 스탓슨 요새 포대장으로 있었다. 1920년부터 21년까지 항공반 관측장교를 역임하고 1926년 기병학교 OBC를 수료했다.이후 제24포병연대에서 지휘관을 역임했으며 1926년 대위, 1932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29년부터 36년까지 필리핀 대학교 군사학교관을 지냈다. 1936년 대령으로 진급하고 필리핀통합사관학교장을 지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준장으로 진급해 필리핀자치령 제1사단장이 되었고 필리핀 전역 당시 루손섬 남부를 방어했다. 하지만 바탄이 함락당하고 일본군에게 항복했으며 바탄 죽음의 행진에도 참가했다. 가석방되었으나 필리핀 게릴라에 참가해 고문관을 지냈다. 1944년 12월 19일 마닐라에서 아들인 주니어와 함께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몇 주간 고문을 받고 1945년 1월 6일 총살형되어 암매장되었다.
사후 미국에서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비센테 림, 시메온 데헤수스와 함께 태평양 전쟁 당시 사망한 3명의 필리핀 장성이다.
[1] 필리핀 자치령군이 만들어졌어도 척후대는 미군의 지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