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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어 邳州영어 Pizhou
장쑤성 쉬저우시의 현급시. 장쑤성에 속하긴 하지만 그 최북단에 위치하여 산둥성 린이시 및 짜오좡과도 가깝다.[1] 비옥한 화중 평야에 위치했고, 관할 인구 200만 중 도시 자체 인구는 약 70만명이다. 삼국지에 언급된 옛 지명인 하비 (下邳)로 유명하며, 근대까지 팽성 (쉬저우) 및 소패 (페이현)과 함께 일대의 주요 도시였다. 하지만 현대 들어 중원에 가까운 쉬저우 일대 대신 연안 도시들이 급성장하며 피저우 일대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편이다.[2]
대운하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써 삼국시대의 하비 전투, 중세의 송금전쟁, 중일전쟁기 타이얼좡 전투[3], 국공내전기 화이하이 전역 등 여러 차례 전장이 되기도 했다. 한편, 삼국시대의 하비성은 현재 시가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고비진 (古邳镇)에 있었다가 송나라 전후로 황하가 유역을 변경하면서 벌어진 홍수로 파괴된 후 현재의 위치로 시가지가 옮겨진 것이다. 룽하이 철로 상의 피저우역과 롄쉬철로 상의 피저우둥역이 있다. 출신 인물로 명대 비파 연주가 탕응중, 민국기 학자 유인항이 있다.
2. 역사
계중이 일대에 비나라를 건국한 것에서 지명이 유래했고, 팽나라를 거처 서나라 령이 되었다. 서나라는 전성기에 인근 다이좡진에 수도를 두었다. 주나라와 초나라의 공격으로 약해진 서나라는 기원전 506년 오나라에게 멸망되었고, 전국시대 들어서는 제나라가 일대를 차지했다. 기원전 369년에는 제나라의 명재상 추기가 하비에 봉해졌고, 진나라의 통일 후에는 동해군 (東海郡) 하비현 (下邳縣)이 설치되었다.2.1. 한대
한나라 대에는 하비국 (下邳國)이다 군으로 환원되었고 하비현에 서주자사부가 위치하는 등 정치적으로 중시되었다. 후한 말에는 자사부가 팽성과 하비를 오가다가 도겸 대에 팽성으로 고정되었다. 유비에 이어 자사가 된 여포는 조조의 공격을 받자 하비로 철수했으나, 조조군의 수공 작전에 당하여 항복하고 처형되었다. 이후 유비가 재차 서주를 장악했으나 조조가 재침하였고, 유비의 의형제 관우가 하비에 주둔하며 유비의 부인들을 지키다가 항복하였다.2.2. 중근세
서주를 완전 정복한 조조는 하비에 자사부를 두었으나, 조위 건국 후 재차 팽성으로 고정되었다. 서진 시기 하비국이 재설치되었다가 북위 시기에 서주 하비군으로 돌아왔다. 북주 대에 들어 하비군은 비주 (邳州)로 개편되었고, 수나라 대에는 재차 하비군으로 환원되었다. 당나라 시기에는 사주 (泗州)에 편성되었고, 북송 시기에는 경동동로(京東東路) 회양군(淮陽軍)에 속했다.금나라 시기에는 산동동로 비주에 속했고, 금나라 말엽 몽골-금 전쟁기에는 비교적 안정인 후방인 하비로 산동의 치소를 옮기기도 하였다. 원나라 대에는 하남강북행성 (河南江北行省) 귀덕부 (歸德府) 비주에 속했고, 명나라 대에는 남직례 (南直隸)[4] 회안부 (淮安府) 비주였다. 청나라 들어서는 강소성 (江苏省) 서주부 비주[5]에 편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