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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5 21:00:10

하산(좌승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원나라의 재상. 회회(回回), 즉 위구르 출신으로 『원사』에서 이슬람 인명 하산음차한 합산(合散), 아산(阿散) 등 이름으로 등장한다. 재상으로 10여년간 우·좌승상직을 역임했지만 개인 열전은 따로 없다.

2. 생애

무종 즉위년인 대덕 11년(1307) 중서성평장정사에서 요양행성평장정사로 전임됐던 하산은 지대 2년(1309) 겨울 10월 정축일에 좌승상[1] 행중서성평장정사로 임명됐다. 이듬해인 지대 3년(1310) 2월 상의요양행성사가 됐고, 지대 4년(1311) 11월 요양성평장정사에서 다시 중서평장정사로 임명됐다. 인종이 즉위한 뒤 황경 원년(1312) 5월 중서좌승상으로 승진했다. 연우 원년(1314) 2월 임오일에 중서우승상 감수국사로 승진했으나 같은 해 9월 기사일에 테무데르(鐵木迭兒)가 중서우승상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시 좌승상이 됐다.

연우 2년(1315) 11월에 객성이 혜성으로 변해 자미성을 범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불길한 상황에도 인종이 코실라를 주왕(周王)으로 책봉하고 금인을 하사하자 좌승상 하산 등은
彗星之異, 由臣等不才所致, 願避賢路.
혜성의 이변은 신 등의 재능이 부족함이 원인으로 일어난 것이니, 현로(賢路, 관직 임용)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인종은
此朕之愆, 豈卿等所致, 其復乃職. 苟政有過差, 勿憚於改. 凡可以安百姓者, 當悉言之, 庶上下交修, 天變可弭也.
이는 짐의 부덕함으로 어찌 경들 때문으로 돌리겠는가. 다만 정치에 지나침이 있었으니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무릇 백성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모두 말하여 위아래가 서로 고치고 하늘의 이변을 그칠 수 있기를 바란다.
라고 답했다.

연우 4년(1317) 6월 테무데르가 파직되자 하산이 다시 우승상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8월 하산이 주달하기를 마쳤는데 인종이 하산을 비롯한 신하들이 매일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하산은
臣等第奉行詔旨而已
저희들은 다만 폐하의 뜻을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라고 답했는데, 인종이 그를 꾸짖었다.
卿等何嘗奉行朕旨, 雖祖宗遺訓, 朝廷法令, 皆不遵守. 夫法者, 所以辨上下, 定民志, 自古及今, 未有法不立而天下治者. 使人君制法, 宰相能守而勿失, 則下民知所畏避, 綱紀可正, 風俗可厚. 其或法弛民慢, 怨言並興, 欲求治安, 豈不難哉.
그대들은 어찌하여 일찍이 짐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데 조종의 유훈과 조정의 법령을 모두 따르지 않았는가. 무릇 법이란 상하를 분별함으로서 백성의 뜻을 정하는 것이니,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법을 세우지 않고 천하를 다스린 이가 없었다. 만일 임금이 법을 지으면 재상이 능히 따르고 그르치지 않아야지 곧 백성들도 두려워 피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풍속을 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혹 법을 엄하게 지키지 않으면 백성들도 느슨해져 원망하는 말이 함께 일어날 것이니, 치안을 얻고자 하는데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9월 병인일에는 자신이 몽골인이 아니므로 승상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했다.
故事, 丞相必用蒙古勳臣. 合散回回人, 不厭人望.
고사에 승상은 반드시 몽골인 훈신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위구르인이므로 기대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인종은 제서를 내려 선휘사 백답사(伯答沙)가 대신 중서우승상이 되게 했고, 하산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영종 즉위년인 연우 7년(1320) 2월 테무데르와 함께 사천행성평장정사 조세정(趙世延)을 체포해 대도로 불러올 것을 요청했다. 조세정은 간통한 혐의로 이후 탄핵됐다. 한편 이 시기 테무데르 등이 황후의 명령이라 속이고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는 일이 있었다. 휘원정사 시레문(失列門)이 조정 신하들의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사농경 욀제이부카(完者不花)는 하산이 챙기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종은 욀제이부카의 말에 '일찍이 경이 선박세를 걷으라고 청했는데 하산이 그만두게 한 일이 있다.'라며 사적인 감정으로 고한 욀제이부카를 역으로 폄출시켰다.

같은 해 4월에 하산은 중서좌승상에서 영북행성평장정사로 강등됐고, 배주(拜住)가 중서우승상으로 새로 임명됐다. 그리고 다음 달인 5월, 영북행성평장정사 하산과 중서평장정사 흑려(黑驢), 어사대부 탈특합(脫忒哈), 치정원사 시레문 등이 영종의 폐위를 논의했다는 고변이 있었다. 배주가 영종에게 국문할 것을 요청했고, 영종은 고민 끝에 모두 죽이고 가산을 적몰하라 명령했다. 하산을 비롯해 카바얀(賀伯顏), 시레문 등의 재산과 집, 토지는 테무데르 등 대신들에게 나눠졌고, 영종의 측근 배주에게는 별도로 금은과 교초가 내려졌다.


[1] 요양행성의 좌승상을 가리킨다. 1320년 폐지되기 전까지 여러 행중서성에도 승상직을 뒀다. 한편 당시 중서성 좌승상 관직은 같은 달 정묘일에 캉글리 토크토아가 지추밀원사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됐고, 하산의 요양행성좌승상 임명 며칠 전인 계유일에 투글루크(秃忽鲁, 또는 秃鲁)가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