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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59:12

하용제

성명 하용제(河龍濟)
은거(殷巨)
약헌(約軒)
생몰 1854년 6월 29일 ~ 1919년 11월 8일
출생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본관 진양 하씨
사망지 경상남도 산청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하용제는 1854년 6월 29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서 하겸락(河兼洛)과 문화 유씨(文化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살 때 부친의 명으로 곽종석의 문하에서 사서(四書) 및 춘추좌씨전 등을 배우며 학문에 정진했고, 1872년 무과에 급제한 뒤 1884년 의정부공사관에 임명되었고, 이후 1892년까지 훈련원주부판관첨정(訓鍊院主簿判官僉正), 선전관총어영초관(宣傳官總禦營哨官), 의정부공사관(議政府公事官), 대흥군수(大興郡守), 삼척진영장(三陟鎭營將), 격포진첨사(格浦鎭僉使) 등을 역임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미망인(未亡人)'으로 자처하며 산야에 은거해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했다. 그러던 1919년 3월 김창숙 등이 주도한 독립청원서 서명운동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며칠간 감금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간신히 풀려났다. 이후 하동로, 황종화(黃鍾和), 하남식(河南植) 등이 주도한 경남단(慶南團)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자금을 기부했지만 고문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1919년 11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하용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