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0:25:55

학살(김남주)

1. 개요2. 전문
2.1. 학살 12.2. 학살 2
3. 기타

1. 개요

김남주(시인)의 시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5.18을 다룬 시들 중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2. 전문

2.1. 학살 1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광역시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2.2. 학살 2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
학살에 치를 떨며 들고 일어선 시민들은 지금
죽어 잿더미로 쌓여 있거나
감옥에서 철창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저편 아메리카에서는
학살의 원격 조정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나라 국경 지킨다는 군인들이 지금
학살의 거리를 누비면서 어깨총을 하고 있다
옥좌의 안보를 위해
시민의 재산을 지킨다는 경찰들은 지금
주택가에 난입하여 학살의 흔적을 지우기에 광분하고 있다
옥좌의 질서를 위해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검사라는 이름의 작자들은
권력의 담을 지켜주는 세퍼드가 되어 으르렁대고 있다
학살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선 시민들을 향해
판사라는 이름의 작자들은
학살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꼭두각시가 되어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의 주먹을 치켜든 시민을 향해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보아다오 파괴된 나의 도시를
보아다오 부러진 낫과 박살난 나의 창을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잘려나간 유방을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의 눈동자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 집행인들
보아다오 보아다오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는
밧줄이 되어 너희들의 목을 감을 것이며
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
그 하나하나는 총알이 되고
너희들이 저질러놓은 범죄
그 하나하나에서는 탄환이 튀어나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너희들의 심장에 닿을 것이다

3. 기타

전술했듯 꽤 유명한 시라, 5.18 관련 행사에서 낭독된 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2013년, 5.18 33주년 기념식에서 정동영이 낭독한 것이다.



1990년에 시인 본인이 직접 낭독한 녹음본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