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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08:19:18

한백무림서/연표


1. 개요2. 연표

1. 개요

무협소설 한백무림서의 개략적인 연표.

작가 한백림이 연표를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암제의 승천을 기준으로 팬카페의 회원이 역산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의 시점을 계절로 언급하기 때문에 겨울에 해가 넘어가는 것을 반영하기 힘들다.[1] 하지만 작가가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으므로, 대략적인 전개를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또한 연재 중에 설정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므로[2] 이후 변경되는 부분은 수정을 통해 적용하다.

2. 연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380년(홍무 13년)
1381년(홍무 14년)
1384년(홍무 17년)
1388년(홍무 21년)
1391년(홍무 24년)
1398년(홍무 31년)
1399년(건문 원년 → 홍무 32년) - 천잠비룡포 본편 개시
1400년(건문 2년 → 홍무 33년)

1402년(건문 4년 → 홍무 35년[8])
1403년(영락 원년)
1404년(영락 2년)
1405년(영락 3년)
1406년(영락 4년)
1407년(영락 5년)
1408년(영락 6년) - 무당마검, 무적혈도제[14] 본편 개시
1409년(영락 7년)
1410년(영락8년)
1411년(영락 9년)
1412년(영락 10년)
1413년(영락 11년)
1414년(영락 12년) - 화산질풍검 본편 개시[24]
1415년(영락 13년)[26]
1416년(영락 14년) - 무당마검 본편 종료 / 제천회 십익 전원 영입
1417년(영락 15년) - 화산질풍검 본편 종료
1418년(영락 16년)
1421년(영락 19년)
1422년(영락 20년) - 천잠비룡포 본편 종료
1424년(영락 22년)
시간대 불명

[1] 그 예로 화산질풍검에서 같은 해 겨울이므로 군산대혈전 직후에 육극신과 비무가 있었다고 여겨졌지만 후에 작가가 군산대혈전은 2월, 육극신 비무는 12월이라고 못박았다.[2] 대표적인 것이 청풍의 수련기간. 무공 인플레가 심하다는 평가에 작가가수련 기간을 대폭 늘렸다.[3] 작가 피셜 1380년 or 1381년 출생이라고 밝힘.[4] 무적혈도제 4화에서.[5] 광극을 열고 가늠한 단운룡이 파악한 바로 육신의 나이가 단운룡과 동년배다. 현대 염라마신도 섭리가 자신을 안배함과 동시에 대적할 단운룡을 안배했다고 판단하다.[6] 천잠비룡포 1화 1장 보의(1)에서 단운룡이 열 살이 안되었을 때라고 언급된다.[7] 천잠비룡포 5화 1장 보의(5)에서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는 오기륭의 질문에 열한 살이라고 대답하다. 오기륭은 서른다섯에서 서른여섯쯤이라고 대답하다.[8] 영락제 즉위 후, 건문 연호를 폐함.[9] 화산질풍검 2화에서 청풍의 나이 십삼세라고 언급된다.[10] 천잠비룡포 147화 17장 비밀(2)에서.[11] 천잠비룡포 90화 9장 사부(8)에서.[12] 화산질풍검 4화~7화에서 청풍의 나이 십육세라고 언급된다. 서영령의 나이는 십이세라고 언급된다.[13] 천잠비룡포 459화 52장 비룡포(9)에서.[14] 시점 전환이 잦은 편이지만 주요 시간대로 보자면 태원난전을 시작으로 천위의 무림행이 묘사된다[15] 천잠비룡포 90화 9장 사부(8)에서.[16] 천잠비룡포 90장 9화 사부(8)에서 단운룡 약관 이십 세라고 언급되다.[17] 실제 역사로는 1409년 함락, 1410년 수도 금릉으로 압송 후, 참수.[18] 천잠비룡포 266화 32장 이별(4)에서, 재작년 여름 장강에서 암제 승천 이후부터 소연신을 못봤다는 수상화 및 청련각 기녀들의 증언이 있었다.[19] 1차 친정으로 추정된다.[20] 운남의 회한평 전투와 같은 날에 일어났다.[21] 천잠비룡포에는 진계황으로 되어 있으나, 훈음은 진계확. 오타.[22] 실제 역사로는 1413년 함락, 1414년 명나라 연경으로 압송 중 자결함.[23] 한백무림서에서 이듬해 일어난 전투가 더 유명하다고 언급한다.[24] 선현진인이 육극신에 패사하는 사건부터 잡을 수도 있으나 작중 초반 배경이 되는 사건 정도로 밀도가 낮다. 물론 비중은 높지만.[25] 명경이 남왜 쪽으로 간 진무각 사형제들을 도우러 갔을 때 소림이 공륜을 잡은 것은 작년이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시기상 큰 차이 없이 일어난 2차 금문군도 전투는 12년에서 13년 초기로 예상된다.[26] 설정이 변경됐다. 원래 명경은 은거했다가 1415년 1월 1일에 연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진인의 실종을 알고 출전했다. 하지만 청풍의 수련기간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이벤트가 1416년으로 밀렸다.[27] 2차 철기맹전.[28] 최종 영입이다.[29] 운룡보다 조금 빠르다.[30] 화산질풍검 181화에서.[31] 군산대혈전이 지나고도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하였으므로 이 해로 추정된다.[32] 이 때부터 북망산에서 벌어진 염라 척살까지의 대륙 전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통틀어서 신마대전이라고 부른다.[33] 명경은 천잠보의를 얻고, 백무한은 십보무적의 한계를 돌파했으며, 단운룡은 광신을 얻었다. 연관된 십익 셋이 모두 강해진 이벤트.[34] 화산질풍검에서는 서자강과의 대면 직후 육극신과 비무한 것처럼 서술되었으나 이후 팬카페에서 작가가 직접 공백기가 있다고 밝혔다. 군산대혈전이 늦겨울인 영락 15년 2월에 있었으며 육극신과의 비무는 섣달 그믐.[35] 섣달 그믐은 12월 31일.[36] 성혈교, 신마맹, 단심맹, 숭무련, 비검맹, 흑림[37] 화산질풍검 에필로그에서 임무를 받아 부재중이었는데 이 임무로 보인다.[38] 신마맹의 전략병기급인 염라가 사천당가, 종남파, 남궁세가 등을 초토화 시키고 일교오황이 중원 전역을 침공했던 이 시기가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후술된다. 염라의 사망으로 신마대전이 종결되자 신마맹은 옥황의 지배하에 오롯이 들어갔고 팔황 전체가 정체불명의 침공 세력이 아닌 정파 무림에 대한 대치 세력화가 진행되면서 일반 민초들에게는 오히려 안정적인 시대가 된다.[39] 소림과 구양이 있는 하남성이 신마맹의 거점이다. 소림과 구양세가 모두 신마맹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떡밥이 있지만 둘 다 신마맹과 적대했다.[40] 실제 역사에서는 정화의 6차 원정은 영락 20년 8월 18일(1422년 9월 2일)에 태풍으로 귀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원정은 1~5차 때 각국에서 데려온 사신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여러 분함대들이 흩어져 항행하였으므로 그 중 한 분함대의 신세를 졌다고 볼 수 있다.[41] 전대, 현대 포함[42] 9월 9일[43] 천잠비룡포 293화 36장 공성(1)에서.[44] 비무상황 육홍에 대한 한백 인물평에 언급된다. 그러나 천잠비룡포 종료 시점까지 언급이 없다. 아마도 신마대전이 종식된 후에 열렸지 싶다.[45] 4월 5일[46] 적어도 염라가 척살된 이후 시점이다. 빨라도 영락 19년.[47] 에필로그에서 언급되는데 이 사건이 아마도 육극신과 비무 그리고 승뢰 구출 사이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 귀도에게 주작검의 빚을 갚는 일을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