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차 기자
자세한 내용은 한상기(기자) 문서 참고하십시오.2. 육종학자
1933년 8월 12일 ~충청남도 청양군 출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1971년에 나이지리아로 건너갔다.
70년대에 나이지리아의 주식인 카사바가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으로 생산량이 80% 가까이 감소해서 당시 현지 신문의 1면에 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1] 이때 한국에서 나이지리아로 건너간 한상기 박사가 브라질까지 직접 가서 카사바 원종의 씨앗을 가져와서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높은 슈퍼카사바[2] 개발에 성공했다. 현지 연구소에서는 개발은 성공했지만 보급은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니라 여겨 무관심했는데 한상기 박사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보급에 성공했으며[3] 나이지리아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41개국에 슈퍼카사바를 보급했다. 이 뿐만 아니라 얌, 바나나 같은 작물도 개량하였으며, 아프리카의 농업기술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자도 길러냈다[4]
이 공을 인정받아 1983년에 외국인 최초로 현지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요루바족의 대왕에게 정식 추장으로 봉작되기도 했다. 여기서 추장이라는 건 그냥 마을 이장 정도가 아니라 수만명을 다스리는 군수나 시장에 더 가까운 존재이며 한상기 박사가 분봉받은 이키레(Ikire)도 2022년 기준으로 인구가 22만 명[5]에 달한다.[6] 같이 받은 칭호는 '세리키 아그베(Seriki Agbe)'로, 농민의 왕이라는 뜻이다. (#1, #2, #3) 국립낙동강자원생물관 설명
1998년 미국 조지아 대학교의 원예학과 명예교수로 임명되었다.
대학교 졸업여행 때 자신을 농과대학으로 이끌어준 까마득한 학계 대선배 우장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우장춘은 한상기 박사가 대학원을 졸업한 해에 사망했다.
3. 정치인
자세한 내용은 한상기(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4. 교수
IT 전문가이자 전직 교수다. 삼성전자,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하였으며 벤처포트, 오피니티 등을 설립하였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및 세종대학교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센터 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 테크프론티어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KAIST 교수 재직 중 제자를 상습 성희롱을 일삼다가 사임하였다. 미투데이 및 트위터에서 인플루언서로 알려져 있으며(출처: '유명 트위터러' 카이스트 교수님이 성희롱?) 과거 트위터에서 다수 해당 사실이 실명으로 언급되어 있다.[1] 여기에 카사바를 재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줄기를 잘라 심는 도삽법이라서 병충해에 취약한 탓도 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다.[2] 이름답게 크기도 일반 카사바보다 매우 크다.[3] 품종 보급 체계가 없다시피 하던 나라였으니 한상기 박사과 연구소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뿌리거나, 병든 카사바 밭에 들어가 소매넣기를 하거나 했다고 한다.[4] 제자 중에 적지 않은 수가 르완다 내전, 콩고 내전 중으로 사망해서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5] 한상기가 분봉받았을 때는 약 10만 명 정도[6] 전근대적 관습이 남아 있는 사회 특성상 그 권력은 민주주의 사회의 군수를 뛰어넘는다. 일례로 이때 한 교수의 아내는 한상기 교수가 추장에 봉해지는 걸 반기지 않았는데 나이지리아의 추장들은 대개 막강한 권력을 통해 젊은 후처를 여럿 거느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상기 교수는 아내를 설득해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고 이로 인해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