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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25 22:55:28

한풀

1. 개요2. 역사3. 기술 체계4. 기술 체계의 상호 연관성5. 논란6. 심무도와의 관계7. 여담8.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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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5년 김정윤(1936~ )에 의해 만들어진 무술이다. 순우리말로 ‘큰 기운’, ‘신의 기운’, ‘바른 기운’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1] 무형 기술인 영검수련과 유형기술인 기술수련으로 나뉜다.

서점에 교본도 나돌고 있다. 과거 용산과 세검정에 도장을 열었으나 현재 문을 닫았다. 다만 김정윤의 제자들이 클럽이나 동호회 형식으로 한풀의 맥을 잇고 있다.

2. 역사

한풀 바로가기 http://www.hanpul.org

1958년 김정윤이 합기유술의 대가 덕암 최용술(崔龍述, 1899년~1986년)에게 유술(柔術)을 배우게 된 것이 시작이다.[2] 6년 간의 수련 과정에서 김정윤은 우리 무예가 대부분 사라진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1965년 한풀을 창시했다. 한풀은 이후 최용술의 기술을 체계화 및 재정립을 거쳐 독자적인 무예로 거듭났다.[3]

한풀의 기술은 최용술에 의해 전해진 유술[4]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방대한 최용술의 유술을 일정한 원리를 찾아내 정리하면서 불필요하다 여긴 기술은 버리고 반드시 필요하다 여긴 기술은 대폭 보강하였고, 이 과정에서 한풀이 탄생하였다.

한풀은 단순히 최용술의 야와라(柔)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무술[5]로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래서인지 한풀에서는 새로운 창제를 중시한다. 때문에 최용술의 유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용술관과는 다르게 한풀은 김정윤이 최용술과의 연을 마감하면서 기술적으로 새롭게 변화를 추구했다.

3. 기술 체계

한풀은 본수, 12기본기법, 기수 총 3가지의 카테고리의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풀은 크게 타격기와 유술기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고류 유술에서의 타격은 일종의 견제타로 이권치기나 철퇴치기와 같이 빠르거나 또는 위력적인 한 방을 자주 쓴다. 그러나 한풀은 손파람이라는 수법이 있는데 이는 곧 장법을 뜻한다. 손바닥을 이용하는 팔괘장과 달리 다리를 중점적으로 이용해서 체중이동을 하고 상체만 돌리는 게 아니라 발목도 돌려서 회전력을 이용해 위력을 더 크게 만든다.

또한 뿔주박(검지를 뾰족하게 세운 주먹)이나 치살(팔꿈치), 팔뚝썰(전완의 척골 부위), 다리수(발차기), 솜주박(일종의 메주먹, 철퇴치기나 벽추와 용법이 비슷하다), 날주박(네 손가락을 모두 세운 주먹) 등의 울수(호신술)가 있다.

유술기에는 꺾과시가 있다. 이는 꺾고 비튼다 하여서 꺾과시라고 부른다. 관절을 비트는 것은 과시, 관절을 수직으로 꺾는 것은 꺾시라고 한다. 손목, 손가락, 팔꿈치, 어깨, 목, 척추, 무릎, 발 등 관절부위에 모두 응용가능하다. 안과시(안쪽으로 과시), 밧과시(바깥쪽으로 과시), 겨꺾시(겨드랑이에 팔을 고정하고 꺾을 때) 등의 용법이 있다. 이는 최용술 선생이 배워온 대동류의 유술이며, 다만 '합기'는 여기서 전제하고 있지 않다. 이 꺾과시에는 태질이라는 것과 동시에 응용이 가능한데, 택견의 태기질과 비슷하다. 상대를 땅에 메치는 기술은 모두 태질이며 다리수나 팔뚝썰, 손파람 등의 타격도 같이 응용 가능하다.

4. 기술 체계의 상호 연관성

한풀은 맨손으로 하는 기술(손파람)과 무기를 들고 하는 기술(가야갈), 무기를 던지는 기술(팔매)로 나뉜다. 이 세가지 기술을 본수라고 한다. 한풀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수는 손파람이다. 손파람 원리로 가야갈이 구성되기 때문에 손파람을 제대로 수련하면 가야갈은 3분의 1의 수련시간을 할애하여도 수련을 마칠 수 있다. 팔매는 손파람과 원리는 같으나 손파람을배우는 만큼의 시간이 소요된다. 본수(손파람, 가야갈, 팔매)는 12기본기법에 의해 펼쳐진다. 손파람의 경우 상대를 공격하는기술인 지르기, 후리기, 방어하는기술인 비켜나기, 걷어내기, 채기, 받아내기, 몸풀어나기, 공격과방어를 동시 수행할 수 있는 태질, 공격과 방어를 위해 필요한 동작이자 기술인 걸음새, 구르기, 뜀새로 나뉜다. 몸맨두리는공방을 위한 기본 자세를 일컫는다.

5. 논란

김정윤은 고대 무예였던 데코이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다케다 소카쿠에 의해 대동류 합기유술이 되었고, 이를 곧 최용술 옹이 다시 배워 한국으로 가져온 것을[6] 다시 본인이 한풀로 바꾼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한풀은 고대 한반도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무예이므로 모든 이들이 배우면서 '검'이 될 수 있는 영적인 무예 즉 영검무예라고 주장한다.[7]

여기까지는 다른 합기도 단체들이 주장하는 신라 기원설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나, 한풀은 여기에 덧붙여 한풀의 기술적 시원(始原)이 택견[8]이라고 주장한다. 1985년 김정윤이 송덕기를 만나 택견을 방대한 기록[9]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김정윤은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 1857~1943년)에서 최용술로 이어진 대동무가 우리나라 고유 무술인 택견과 기술적으로 일치함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합기도 측의 신라 기원설만큼이나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한풀의 역사가 김정윤의 고대역사설을 떼놓고 보면 사실상 한국 합기도의 최초 지도자인 최용술로 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용술이 대동류의 맥을 이은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지금 대동류의 역사도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다케다 소가쿠 이전으로 넘어가지를 못한다.

게다가 한풀 자체가 김정윤이 최용술로부터 유술을 배워서 스스로 정립한 것이며, 실제적으로 한풀로서 지도를 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다. 즉 객관적으로 보면 김정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한풀은 최용술의 대동류 유술을 체계화시키고 기술을 추가 변형한 것이다. 제삼자의 눈에는 김정윤이 "고대 한국의 무술이 일본에 넘어가 데코이로 정착하고 이후 대동류가 되었는데, 마침 그런 식으로 발전한 게 한국의 택견이다. 그런데 대동류와 택견의 비전기술이 똑같다니! 이것은 고대 한반도의 무술 덕분이다! 고로 대동류도 우리 거, 택견도 우리 거!" 이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뇌피셜과는 별개로 김정윤이 송덕기 옹 생전에 택견에 대한 사진, 영상자료를 남겼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풀의 정식 사이트와 카페, 블로그도 있는데 택견의 송덕기 옹과 대동류의 최용술 옹이 남긴 육성을 제공하고 있다. 송덕기 옹을 불러 택견의 기록을 남겼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김정윤은 무술 특히 전통무술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이는 실력과 열정이 뒷받쳐주지 않으면 힘든 부분이다.

6. 심무도와의 관계

심무도는 한풀과 이상하게 모습이 똑같은데, 김창석 선생이 한풀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김정윤과 김창석 선생은 서로 의붓 형제 사이로서 김정윤이 김창석에게 무예를 전수했는데, 이후 김창석 선생이 따로 나와 무예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장법(손파람), 양각권(한풀에서는 뿔주박), 부월권(날주박) 등 뿐만 아니라 자세 또한 한풀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심무도에서도 열심히 수련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마다 무술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니 너무 매도할 것은 없다. 다만 현재 심무도는 다음 카페에 아무런 활동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만 활동을 안하는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7. 여담

과거 전북 남원에서 한풀을 이어갈 가승(사범)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는 일산[10]에서 신상득[11] 가승이 전수하고 있었는데, 김정윤 선생과 신상득 가승의 갈등이 있은 후 한풀을 그만 가르치고 이후 '파람'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를 선포했다. 신상득 가승도 한풀의 정식 가승이 된 것은 확실했으나 문제는 김정윤 선생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한풀을 널리 알리겠다고 나서자 그 스스로가 신상득 가승의 지위를 박탈시켰다. 한풀이라는 것은 자신이 만들었으며 다른 누구도 멋대로 써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이유였다.[12]

단순히 기술의 완성도나 위력으로 보자면 위력적인 면이 돋보이고 기본과 응용을 잘 체계화시킨 것으로 보아 완성도가 높은 무술이나, 지리산에서 지도를 한다는 점과 고대의 영검무예라는 고상한 컨셉 문제 때문에 대중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신상득의 파람 역시 대중화는 쉽게 되지 않고 있으나 무술을 응용한 운동법이나 스트레칭 등을 이용해 회사에 세미나를 열어 건강법을 전수하려는 노력이나 군대나 특수부대에게 확실한 제압술을 전수하려는 계획을 보면 여전히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풀은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13]

다만 최근의 행보로 보아 김정윤의 나이도 있고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만든 한풀을 어떻게든 보존시키기 위해 울수만 따로 뽑아서 배울 수도 있게 했다. 즉 한풀의 기술만 배워서 호신술로 쓰든지, 도장을 열던지, 배운 무술에 적용하든지 하라는 식인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풀 측에 의하면 현재 김정윤은 지리산 운봉고원에서 한풀 원전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8. 참고 문헌

* 김정윤 『大東武(대동무)』

밝터 바로가기 http://www.barktur.com


[1] 1965년 한글학자 최현배 박사와 한갑수 박사의 감수를 받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2] 김정윤은 최용술 옹의 수제자라고 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고 최용술도 김정윤에게 "장군아." 라는 식으로 별칭을 불러주며 같이 수련을 했다고 한다. 김정윤은 최용술의 감수를 받아 최용술의 인생사와 대동류 합기유술에 대해서 기록한 '합기술'을 편찬하기도 했다.[3] 한풀 측에서는 이 과정을 유형기술 완성기, 무형기술 완성기, 영검수련기라고 부른다. 여기서 영검수련은 검이 되기 위한 수련을 의미하며, 이는 유형기술 수련과 무형기술 수련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4] 한풀 내에서는 이를 대동무(大東武)라고 부르며, 이 이름은 김정윤이 붙였다. 대동류(大東流)에서 류(流) 자를 무(武) 자로 바꿨다.[5] 한풀 측에서는 이것을 이라고 부른다.[6] 환귀본주(還歸本主)라고 한다.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소리이다.[7] 여기서 말하는 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한배검'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즉 '칼'이라는 의미가 아닌 신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풀에서는 이런 영검, 검 등의 말을 종교적으로 연관 짓지는 않는다. 대신 수 만년 전부터 한겨레가 써온 순 한국어라고 말한다. 물론 한풀측의 일방적 주장이다.[8] 한풀 측에서는 태이라고 부른다.[9] 무려 3300피트에 달한다고 한다. 미터로 따지면 1005.84m.[10] 2016년 원마운트에 개관하였으나, 현재는 한풀 시절부터 이용해왔던 일산 호수공원에서 지도중인 것으로 확인된다.[11] 세계일보 기자로, 최용술 도주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랑의 환국'의 저자.[12] 양자가 결별하게 된 경위에 관해서는 김정윤 - 신상득 양자 간 입장의 차이가 있다.[13] 여담으로 몇 년 전에는 더 심했다고 한다. 기술 배우는 것도 그 금액이 어마어마할 정도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