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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재총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은색의 상자를 물고 다니는 까마귀'와 관련된 이야기다. 관련된 설화로는 신라의 소지왕이 이 까마귀 덕분에 목숨을 구하여, 매년 까마귀를 위해 밥을 만들었는데,그 밥이 바로 '약밥'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2. 전승
2.1. 용재총화에 기록된 이야기
신라왕(新羅王)이 정월 15일에 천천정(天泉亭)4에 거둥하였더니, 까마귀가 은(銀)으로 만든 함을 왕 앞에 물어다 놓았는데, 함 속에는 글이 쓰여 있되 단단히 봉해져 있었고, 그 겉면에 쓰이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두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낫다.” 하시자, 대신이 의논하기를, “그렇지 않사옵니다. 한 사람이란 임금을 말하는 것이옵고, 두 사람이란 신하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하여, 드디어 열어 보았더니, 그 속에는 “궁중의 거문고 갑(匣)을 쏘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말을 달려 궁으로 들어가 거문고 갑을 보고 활을 힘껏 당겨서 쏘니, 갑 속에 사람이 있었다. 이는 바로 내원(內院)의 번수승(樊脩僧)이 왕비(王妃)와 사통하여 왕을 죽이려고 그 시기를 미리 정하였던 것인데, 왕비는 중과 더불어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왕은 까마귀의 은혜를 생각하여 해마다 이날에는 향반(香飯)을 만들어 까마귀를 먹였는데, 지금까지도 이를 지켜 명절의 아름다운 음식으로 삼고 있다. 그 만드는 법은 찹쌀을 쪄서 밥을 짓고, 곶감ㆍ마른 밤ㆍ대추ㆍ마른 고사리ㆍ오족용(烏足茸)을 가늘게 썰어서 맑은 꿀과 맑은 장(醬)을 섞어 다시 찐 다음 다시 잣과 호도 열매를 넣어 만드는데, 그 맛이 매우 좋아 이를 약밥[藥飯]이라 한다. 속언에는, “약밥은 까마귀가 일어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 하였으니 대체로 천천정(天泉亭)의 고사(故事)에서 연유한 것이다.2.2.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제21대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智王)] 즉위 10년 무진(서기 488)에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는데, 쥐가 사람말로 말하였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시오."
왕은 말을 탄 병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쫓아가도록 하였다. 병사가 남쪽으로 피촌(避村)8에 이르렀는데,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병사는 한참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길가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이때 어떤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편지를 주었다.
편지 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이 편지를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서민을 말하는 것이고, 한 사람이란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은 그렇다고 여기고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편지 속에는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은 궁으로 들어가서 거문고 집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 속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 하던 중이 궁주(宮主)와 몰래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습에 해마다 정월 첫 해일(亥日), 첫 자일(子日), 첫 오일(午日)이 되면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 까마귀의 제삿날)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 지냈는데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속어로는 달도(怛忉)라고 하는데, 슬퍼하고 근심스러워서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노인이 나와 편지를 바친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