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29년부터 1947년까지 활동한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급진주의, 사회자유주의 기반 중도좌파 정당으로,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다.2. 역사
1922년 로마 진군으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된 후, 1926년에 국가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활동이 금지되자, 이탈리아 왕국의 의회민주주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파시스트 정권 초기에 반파시즘 운동을 주도한 조직은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이었으나, 해당 정당들은 지나치게 사회주의 성향이 강해 온건한 반파시즘 운동가들까지 끌어들이진 못했다.
그리라여 중도좌파 계열 반파시즘 운동가들이 1929년에 결집하여 새로운 반파시즘 저항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때 사용한 명칭은 정의와 자유(Giustizia e Liberta)였다.
이후 정의와 자유의 조직원들은 중도좌파 계열 반파시즘 지하조직으로서 무솔리니에 대항하는 운동을 지속했고, 2차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에는 주세페 마치니의 행동당에서 이름을 따와 행동당이 되었다.
그리고 1943년 무솔리니가 실각하여 국가 파시스트당이 해산되자, 마침내 행동당은 합법정당이 되었고, 페루초 파리(Ferruccio Parri) 의장이 거국내각에 입각했다.
그러나 독일 국방군이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RSI)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하고, 파시스트당 역시 공화 파시스트당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이탈리아 전선이 장기화되었다.
행동당은 이에 맞서기 위해 기독교민주당, 사회당, 공산당 등과 함께 민족해방위원회를 결성하여 파시즘에 맞선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1945년 RSI 멸망 및 무솔리니 처형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페루초 파리 의장은 연합군 군정 하에서 총리직에 올라 거국내각을 이끌었으나, 행동당의 조직력은 다른 연립여당들보다 미약해서 한계가 있었고 결국 취임 6개월만에 기민당의 알치데 데 가스페리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듬해인 1946년에 왕정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와 신헌법 제정을 위한 총선이 동시에 실시되자, 행동당은 창당 초기부터 당론이었던 공화국 수립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고, 덕분에 국민투표에서 왕정 폐지가 가결되어 이탈리아 왕국은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사회당, 공산당 등 다른 공화파 정당들에 비해 조직력이 미약했기에, 536석 중에서 겨우 7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총선 다음 해인 1947년에 행동당은 자진 해산을 선언하며 파란만장한 역사의 막을 내렸는데, 당의 주류 계파는 사회당에 입당하고 일부는 이탈리아 공화당에 입당하여 활동했다.
3. 여담
비록 행동당은 군소정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탈리아 공화국 초기에 사라졌지만, 2019년에 행동당에서 모티브를 따온 자유주의 정당인 행동이 창당되었다.다만 해당 정당은 본문의 행동당이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것과 달리, 단순히 중도로만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