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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궁 平城宮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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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고대 나라의 역사 기념물 |
영어 |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 | |
일본어 | 古都奈良の文化財 | |
프랑스어 |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Nara | |
국가·위치 | 일본 나라현 나라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8년 | |
등재기준 | (ii)[1], (iii)[2], (iv)[3], (vi)[4] | |
지정번호 | 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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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平城宮 / へいじょうきゅう(헤이조큐), へいぜいきゅう(헤이제이큐)나라 시대 당시 일본의 황궁. 도다이지를 비롯한 나라시의 유적들과 함께 고대 나라의 역사 기념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 역사
710년 겐메이 덴노가 헤이조쿄로 천도했을 때 건설했다. 당시 일본은 수도를 변경하면 궁궐의 자재를 전부 철거하여 새로운 도읍지에 다시 옮겨 건설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아스카에서 헤이조쿄로 도읍을 옮길 때에도 이 전통에 따라 아스카에 있는 궁궐을 철거하여 그 부재로 궁궐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나라 시대가 70년 남짓한 매우 짧은 시대라서 평성궁은 일본의 황궁 중에서도 가장 짧은 시간 동안 황궁 역할을 했던 궁궐이 되었다. 나라 시대가 끝난 후에는 헤이안쿄의 헤이안 대내리를 건설하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 철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 특징
당대 이웃국가인 당나라, 신라, 발해처럼 주칠단청을 사용했다. 그리고 치미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창호지문은 고려중기에 발명됐기 때문에 여기에는 창호지문이 없고 오직 벽체, 금속으로 장식한 나무문만 있다.정전인 대극전에는 천황의 옥좌가 있는데 옥좌는 팔각형으로 만들어졌다.
4. 전각
4.1. 대극전(大極殿)
평성궁의 정전으로 궁궐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정면 9칸, 측면 4칸인 2층 건물이다.[5] 정전이지만 군주만 지나갈 수 있는 답도가 없다.
4.2. 주작문(朱雀門)
팔작지붕에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 2층 건물이다.
4.3. 동원정원(東院庭園)
연못과 정자가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 1층 건물이다.
5. 복원
1998년 주작문을 복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극전, 주작문, 동원정원 정자가 복원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근거가 상당히 부족한 가운데 많은 부분을 상상에 근거해 복원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고시라카와 천황의 명으로 만들어진『연중행사 에마키(年中行事絵巻)』라는 문헌에 대극전 모습이 수록된 그림을 기본자료로 사용했다. 연중행사 에마키에 수록된 회화는 '헤이조쿄'와는 다른 '헤이안쿄 정전의 1층 일부 기둥만 묘사한 수준이라, 전체적인 모습은 야쿠시지 등을 통해 추측해서 만들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주 사천왕사지처럼 궁궐 터 한가운데로 킨테츠 나라선 철길이 관통하고 있어 완전 복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인공위성 사진으로 보면 기찻길 남쪽에 남문이 있고 기찻길 북쪽에 대극전이 있는것을 알 수 있다.[6]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정전 크기가 정면 9칸 이상인 것은 전형적인 천자국 황궁 건축 양식이다.[6] 그래도 사천왕사지는 유적을 가로지르던 동해남부선 철도가 2021년 12월 28일에 이설되면서 이후 선로가 철거되면 복원이 가능하나 평성궁은 그것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