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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4:51:29

헨리 J. 하인즈

<colbgcolor=#000><colcolor=#fff> 헨리 J. 하인즈
Henry J. Heinz
파일:1000119544.jpg
본명 헨리 존 하인즈
Henry John Heinz
출생 1844년 10월 1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밍엄
사망 1919년 5월 14일 (향년 74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직업 기업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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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5명
서명
파일:Signature_of_Henry_John_Heinz_(1844–1919).png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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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 케첩의 대명사이자 크래프트 하인즈의 전신인 하인즈사를 창립한 인물이다.

2. 생애

미국 펜실베니아주 버닝엄에서 아버지 존 h 하인즈와 어머니 안나 마가렛 슈미트 사이에 태어났다.

켈로그 가문의 레시피를 훔쳐 성공한 포스트, 단돈 2000 달러에 코카콜라를 구입한 캔들러 등 성공을 위해 갖은 술수가 난무하던 시기에 정정당당하게 본인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다.

하인즈는 피츠버그에서 작은 식품 포장 사업을 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친구 L.클라렌스 노블과 저급 고기에 케첩을 뿌려서 먹다가 저렴한 가격의 케첩의 만들어 팔면 수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토마토를 베이스로한 토마토 케첩을 만들어 친구와 함께 후일 굴지의 식품 대기업 “크래프트-하인즈”가 되는 “하인즈-노블”을 창사했다.

하인즈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리병과 당시 한창 확장세이던 철도를 이용해 먼 지역까지 제품을 납품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고추냉이나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 식초, 피클 등 여러 품목으로 확장해나갔다. 이에 그가 거주하던 메인 주에서 그의 성공을 시기한 이들이 하인즈의 유리병을 도용해 판매하는 사기 행위를 벌였는데, 하인즈는 이에 유리병 공장들의 생산량 전부를 사들이고, 쓰고 남은 병들은 모조리 파괴해 견제에 나섰다.

하인즈사의 유명세가 철도가 확장됨에 따라 각지에 퍼지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생산량)이 버겁게 되자 하인즈는 사운을 건 새로운 공장을 만들었고 후일 피츠버그 여행할때 관광지 중 하나이자 랜드마크인 하인즈 로프트가 만들어진다.

하인즈는 이 새공장에 거의 사운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회사에서 운용가능한 자본 대부분이 들어갔기에 사내 중진들은 너무 위험하다며 급격한 공장확장을 반대하였으나 하인즈는 오히려 이들을 설득해 찬성으로 선회시켰고 공사업체에서 보내주는 공장 설계도를 매일매일 확인하며 부족해보이는 부분을 지적하고 업체에서 수정한 설계도를 다시 받을정도로 꼼꼼하게 하였고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을 위해 모든 기업들 중 신문물인 전기를 이용한 공장이었다. 당연히 이전 공장과는 달리 바로 열차에 화물을 탑승시킬수 있는 철로에 램프에 의존하던게 아닌 전구 등을 쓰기 위한 배선장치, 자동화 벨트 시스템, 환풍구 시스템 등등 그야말로 당대 최신기술들을 집약한 공장인만큼 돈이 많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였기에 이 공장이 망하면 하인즈도 망하는 길이였다.

그렇게 신기술로 꽉꽉 눌러담은 신공장이 만들어지고 본사도 여기로 옮기면서 새롭게 태어난 하인즈는 그야말로 식품업계의 선두주자의 원동력이 되었다. 자동화 벨트 시스템 덕분에 기존보다 적은 직원들에게 마감이나 운송 등 역할분담을 고정시킬수 있었고 직원들은 작업이 손에 익혀지면서 더 빠른 속도로 마감처리가 가능했기에 생산속도는 매우 빨라졌고 전기덕에 환한 불빛 아래에서 24시간 내내 시프트제로 돌아가니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더 많아진데다가 환풍구 시스템 덕에 직원들 건강해칠 염려가 없어졌다. 신공장서 바로 열차 화물칸에 실어서 전국에 납품까지 가능했으니 혁신 그 자체였고 다른 회사들도 저 신기술로 가득담은 공장에 효율성을 알게되자 너도나도 전기시설을 갖춘 공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인즈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고민도 있었는데 당시 미국은 식품안전에 대한 법규가 없었다. 예를 들어 케쳡에 다량의 물타기로 저급 케쳡을 하인즈 비스무리하게 만들어서 납품시켜도 무죄였고 더 심하게는 사람이 섭취했다가 죽는 메탄올에 카라멜 색상을 입힌 뒤 이를 위스키라고 판매해도 무죄였으며 신문광고에는 발기부전과 같은 여러 병세에 효능있다고 속여 판 뒤 나중에 효능이 없다고 고소한다 한들 효능이 있는지 없는지 학술자료가 있을리가 만무했기에 법적공방에서도 무죄였다. 하인즈는 후일 자신들의 병을 따라해서 이런 짓을 벌여 신뢰도 추락을 감안하였기에 회사를 위해서 식품안전법 제정을 바랬고 때마침 예일대 법학과를 마친 자신의 손자에게 특명을 내려 식품안전법 제정에 힘쓰라며 로비활동을 지원했다. 그 결과 손자의 능숙한 설득 덕에 미국 정계에서 식품의약국 FDA를 창설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법안과 기구 덕에 상품을 홍보할때 정말 그 효능이 있는지에 대한 결과가 있어야 홍보가 가능하게 한 것과 식품 성분표기를 의무화가 되었다.

이후 하인즈는 사업을 손자에게 점차 넘겨주면서 하인즈 재단을 만들며 자선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피츠버그에서 사망하였다.

3. 여담

도널드 트럼프의 재당숙할아버지이며 존 하인즈의 증조할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