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지역은 정교회를 중심으로 민족 정체성이 공고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반감이 강한 지역 중 하나였다. 또한 다른 오스만 제국의 자치주와 마찬가지로 토착 지배층의 세가 강하였는데 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반도 지역은 예니체리가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던 중 1801년 예니체리 사령관들이 오스만 조정이 파견한 파샤를 죽이며 독립 정부를 수립한다. 이로 인해 전제 정치의 시기가 도래했고, 이 기간 동안 예니체리는 술탄이 세르비아인들에게 부여한 권리를 중단시켰다. 그들은 또한 세금을 인상하고, 강제 노동을 부과하고, 폭정을 펼쳤다. 1804년, 예니체리는 술탄이 세르비아인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공격할 것을 두려워했고, 이로 인해 많은 세르비아 지도자들을 암살했다. 결국 세르비아 지역의 유지들은 평의회를 소집하고 평의회는 오스만 군관 출신의 카라조르제를 반란의 지도자로 선출했고, 반란군은 빠르게 예니체리를 분쇄하여 산작 전역의 마을을 점령하며 명목상 술탄을 위해 역적 예니체리를 토벌하기 위해 봉기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셀림 3세는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여 이 지역의 모든 파샬리크에게 그들을 분쇄하라고 명령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진군했고, 1805-06년 대승을 거둔 후 정부와 의회를 수립하여 토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강제 노동을 폐지하고, 세금을 감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