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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0:06:33

호세 레네 이기타

콜롬비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이기타.jpg
이름 호세 레네 이기타 사파타
José René Higuita Zapata
출생 <colbgcolor=#fff,#191919>1966년 8월 27일 ([age(1966-08-27)]세)
안티오키아주 메데진 카스티야
국적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신체 175cm
소속 클럽 미요나리오스 FC (1985)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1986~1992)
레알 바야돌리드 (1992~1993)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1994~1997)
베라크루스 (1997~1998)
인디펜디엔테 메데인 (1999~2000)
레알 카르타헤나 (2000~2001)
아틀레티코 후니오르 (2001~2002)
데포르티보 페레이라 (2002~2003)
SD 아우카스 (2004)
바호 카우카 FC (2005)
과로스 (2007)
레오네스 FC (2008)
데포르티보 페레이라 (2008~2010)
국가대표 68경기 3골 (콜롬비아 / 1987~1999)
통산 득점 43골[1]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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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l Loco"
"미치광이"
동시대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와 비교되는 명선수 중 한 명이자, 마누엘 노이어의 등장과 함께 시대를 앞서서 골리의 포지션을 개척한 인물로 재평가받고 있다.

2. 선수 경력

1985년 미요나리오스 FC에서 데뷔해 16경기 7골을 터뜨리며 골 넣는 골키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1986년 아틀레티코 나시오날로 이적하여 1992년, 그리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181경기 2골을 기록하며 1989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990년 코파 인테라메리카나 우승, 1989년 인터콘티넨털컵 준우승, 콜롬비아 1부 리그 2회 우승(1991년, 1994년), 1995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에 기여했다.

1992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하여 15경기 2골을 기록했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멕시코 1부 리그의 CD 베라크루스에서 30경기 2골을 기록한 뒤 1999년 고향팀인 인데펜디엔테 메데인에 입단하여 2000년까지 20경기 11골을 기록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레알 카르타헤나, 후니오르 FC, 데포르티보 페레이라, SD 아우카스, 구아로스 FC, 데포르티보 리오네그로 FC, 데포르티보 페레이라 등에서 105경기 16골을 기록했고, 프로 통산 380경기 41골이라는 골키퍼로서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뒤 은퇴했다.

대표팀에서는 1987년 A대표팀에 첫 발탁된 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서 조국 역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카메룬과 콜롬비아의 16강전에서 그는 중앙선까지 공을 몰고 나오다 카메룬의 공격수 로저 밀러에게 공을 빼앗겨 골을 허용한 적이 있다. 이 경기에서 콜롬비아는 카메룬에 1-2로 패배하면서 본인의 실수로 8강 진출을 좌절시켰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은 1993년 때 유괴 사건에 연루되어 7개월간 투옥되어 출전하지 못했다. 그가 유괴범인게 아니고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관련된 유괴사건에서 중재를 한 뒤 돈을 전달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서 체포된 것이다. 그는 억울하다고 했고 나중에 무혐의 판정을 받고 석방되었다.

1993년과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두 차례 4강 진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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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콜롬비아의 친선 경기에선 제이미 레드냅의 슛을 뒷발차기, 일명 스콜피온 킥으로 막아내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축구 팬들을 경악하게 했다.[2] 나중에 레드냅은 인터뷰를 통해 "사실은 반대쪽으로 패스하려다 잘못 차서 슛이 된 것인데 이기타가 막아내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고 아직도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 라고 전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이기타는 축구 역사에 남을 희대의 괴짜 골키퍼로 회자된다. 수비수에게 패스를 받았는데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3] 직접 드리블로 상대방 진영까지 가는 것은 기본이요, 마누엘 노이어와 마찬가지로 중앙까지 나와서 상대공격을 원천 차단하는 만큼 행동범위가 매우매우 넓었다.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은 스피드, 드리블, 킥 능력을 가지고 있어 팀이 어려울 때 해결사로 자주 나섰다. 팀의 패배가 다가왔을 때는 본인이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하면서 팀을 구원했고 페널티 라인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장이 쫄깃해지는데 혼자서 자신의 골대부터 상대편 골대까지 직접 드리블을 하면서 상대 선수들을 완전히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직접 슛을 쏴서 득점한 적도 있다. 이기타는 골키퍼인데도 불구하고 현역 선수생활 동안에 필드 골/페널티 킥/프리킥으로 40골 넘게 기록했다. 그야말로 골 넣는 골키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썬더일레븐의 원조

단순히 기행으로 유명했다면 오랜 기간 국가대표 골키퍼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175cm의 신장으로 골키퍼로서는 매우 불리한 신체조건이지만 위의 스콜피온 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본인의 신체 능력을 이용한 아크로바틱하고 독특한 선방 능력으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군림했다.

이기타는 유럽 빅리그에서 뛴 기간도 매우 짧고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제3국에서도 A매치를 중계해 줄 만큼 유명한 국가대표팀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적었지만 그럼에도 골넣는 골키퍼로 상당히 유명해서, 해외축구를 접하기 힘들었던 당시 한국에서도 김병지를 '한국의 이기타'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유명해진 이유는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 덕분이기도 하지만, 필드 플레이어로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175cm의 신장으로 강호인 콜롬비아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이기타가 실력도 뛰어난 골키퍼임을 알려준다. 전세계 단신 골키퍼 유망주들에게는 그야말로 훌륭한 롤모델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콜롬비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축구계에서 영원히 이름을 남긴 매우 유명한 레전드 골키퍼다.

4. 여담

2011년에는 안티오키아 주 메데진 인근의 과르네 지방 시장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201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VS 월드레전드 경기에 참여하여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현역들도 종종 실축을 하는데 50세인데도 현역 선수들 못지않게 완벽히 구석으로 차넣었다.


그의 전성기 시절 프리킥으로 득점하는 장면이다. 상대팀은 아르헨티나의 양대 명문구단으로 유명한 리버 플레이트. 웬만큼 프리킥을 잘 차는 필드 플레이어들도 어려워하는 방향인 오른쪽 상단의 야신존으로 절묘하게 골대를 맞고 들어가는 슛이 정말 일품이다. 그것도 골키퍼가 슛을 하는 프리킥인데도 정말 대단한 볼 컨트롤인데, 심지어 상대편 골키퍼는 꼼짝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함성소리가 지린다

축구공과 골키퍼 장갑으로 성기부분을 가린 나체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2021년 1월 딸이 그것을 재현했다.#

2021년 7월 30일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게 된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파일: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png


[1] 1985년~2010년까지의 득점, 역대 골키퍼 득점 순위 5위[2] 이기타의 다음 동작도 중요한데, 안전하게 슛을 걷어내고 착지한 뒤 재빨리 일어나서 다시 수비 자세를 잡는 것도 압권이다.[3] 그 때는 수비수의 백패스를 골키퍼가 바로 잡는 것이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