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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06:21:31

황준석(권투선수)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복싱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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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황준석(권투선수).png
황준석(黃俊錫, Hwang Jun Suk)
출생 1961년 4월 10일 ([age(1961-04-10)]세), 전남 고흥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170cm
종목 복싱
전적 47전 42승 (29KO) 5패
수상 OPBF[1] 전 웰터급 챔피언
대한민국의 前 권투 선수.

웰터급, 수퍼웰터급에서 활약했으며 OPBF (아시아-태평양 복싱기구) 웰터급 챔피언을 지냈다.

80년대 한국 권투계에서 박종팔, 백인철 등과 함께 화끈한 경기로 인기가 높은 미들급 영역의 간판 스타였다. 위 둘과는 기본 체격 차이 때문인지 체급 차이가 살짝 있었지만 그래도 백인철과는 수퍼 웰터급에서 한 차례 맞대결한다. 백인철과는 동갑내기이기도 하다. 그밖에 이승순, 황충재 등과도 라이벌리를 형성해 치열한 경기를 펼친 바 있다.

당시 운동선수들 답지 않게 풍성한 헤어스타일로도 주목을 받았다.

복싱 은퇴 후에는 광고계에서 종사했다고 알려진다.

2. 플레이 스타일

황씨 성을 가진 운동선수중 저돌적인 면이 있는 선수들이 흔히 그러하듯 황준석도 "황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이미지에 맞게 화끈한 인파이팅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특히 파워가 실린 훅으로 유명했다.

대신 스피드에 약점이 있어 치고 빠지는 스타일의 선수들에게 크게 고전하기도 했다. 이게 알려진 파괴력에 비해 KO승이 많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었을 수도 있다. [2]

반면 맷집은 괜찮았는지 KO패가 라이벌 이승순에게 당한 한 번 뿐이다 [3]. 세계 챔피언도 거머쥐고 커리어 전체에서 90%가 넘는 KO율을 자랑했던 백인철조차도 그를 녹아웃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도 다른 한국 복서들처럼 서구권 원정경기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패배한 경기는 모두 판정이었고 KO패가 없다.

3. 복싱 커리어

총 전적 47전 42승 (29KO) 5패.

1979년 웰터급 한국 신인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데뷔 6전만에 일본 원정경기도 갖는 등 일찌감치 국제경기 경험도 쌓는다. 그리고 내친 김에 데뷔 1년도 되기 전에 한국 웰터급 챔피언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1982년 황충재를 TKO로 꺾으며 웰터급 OPBF 챔피언에 오른다. 이후 5회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하며 세계 타이틀전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983년, 슈거 레이 레너드가 망막 수술을 위해 물러나면서 공석이 된 WBA 웰터급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도널드 커리와 맞붙었지만 판정패하며 결국 커리어 첫 패배를 기록했다. 미국 원정 타이틀전은 한국 복싱 선수들에게는 무덤이나 다름없었는데 황준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도널드 커리는 당시 WBA 랭킹 1위였던데다 (황준석은 3위) 훗날 다체급을 석권하고 IBF-WBA-WBC 통합 챔피언에 오르는 등 최상급 커리어를 이어나간 선수였기에 딱히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 때가 황준석이 세계무대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였다.


커리전.[4] 황준석이 7회 다운을 빼앗는 등 크게 선전했다. 저 다운이 도널드 커리의 프로 경력 첫 다운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드가 좋은 커리에게 유효타를 날리는 데에 애를 먹는 모습이다. 커리쪽은 거리를 두면서 황준석의 빈틈을 잘 공략하면서도 황준석의 훅만은 크게 의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계속 OPBF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렸고, 1984년 다시 미국 원정에 나서서 세계 타이틀 전초전 격으로 파나마의 카를로스 트루히요와 맞붙었지만 여기서도 또 지고 만다. (트루히요는 이후 WBC 타이틀매치에 나서지만 TKO로 패한다.) 이후 또다시 미국 원정에서 논타이틀 매치를 벌여 전 WBA 웰터급 챔피언인 멕시코의 피피노 쿠에바스를 판정으로 제압했지만 이미 커리어가 확 꺾인 선수였기 때문인지 타이틀전 기회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후 OPBF타이틀을 좀 더 방어하다가, 수퍼 웰터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 백인철에게 도전했지만 판정으로 지고 만다.


백인철 전.

또한 이후 경기에서 OPBF 웰터급 타이틀마저도 이승순에게 넘겨주며 2연패에 빠졌다.

이후 은퇴도 패배도 하지 않기는 했지만 프로모션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경기를 갖는 빈도가 뜸해지고 유명 선수와도 경기를 잘 갖지 못해 세계무대 도전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1991년 5월, 마침내 당시 WBA 수퍼웰터급 챔피언인 프랑스의 질베르 델레에게 지명되어 타이틀매치를 가질 수 있었다. 황준석은 적지에서 투혼을 발휘하여 판정까지 잘 버텼지만 이번에도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델레전.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황준석은 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만 30세 시절. 매우 이른 은퇴였으나, 그동안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타이틀 도전 기회가 잘 오지 않아 심리적으로 지쳐있었고 어렵게 잡은 기회도 살려내지 못했기에 더 이상 미련을 두기 힘들었다고 한다.
[1] 동양-태평양 복싱기구[2] 황준석의 KO율이 동시대의 돌주먹들인 백인철, 박종팔 보다 낮은 이유는, 데뷔전부터 KO 퍼레이드를 펼친 양 선수들과 달리 황준석은 커리어 초반 복싱 실력이 무르익기 전에 판정승이 많아서 그렇다. 실제로 데뷔 후 12전까지의 황준석의 전적은 12승 무패 3KO였지만, 이후 신홍일과의 한국 웰터급 타이틀 4차방어를 KO로 마무리한 이후 도널드 커리와의 WBA 웰터급 세계타이틀전에서 판정패하기까지는 9연속 KO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황준석의 OPBF 웰터급 동양타이틀전의 전적은 14승(13KO) 1패다. 1패는 이승순과의 라이벌전에서 TKO패하면서 타이틀을 상실한 것이다.[3] 이승순에게 당한 KO패도 링에서 다운당한 것이 아니라 경기 도중 황준석의 앞니가 밀려나서 중간에 기권하여 TKO패한 것이다.[4] 영상 초반에 황준석 측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시기상 김득구의 사망이 얼마 되지 않았으며 (김득구의 사망은 1982년 11월이고 본 경기는 이듬해 2월에 열렸다) 같은 한국인 선수이기에 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걸로 보인다. 해당 리스크 또한 삶의 일부이자 경기의 일부이며 그가 남긴 자부심이 황준석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의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