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 ~ 1121)
1. 개요
북송의 인물로 자는 원공(元功). 밀주 고밀현 사람.2. 생애
어렸을 때 좋은 평판이 있었고 다른 사람을 돕는데 적극적이라 하루에 수천 금을 기부하기도 했다.1085년에 진사로 급제해 보계위가 되어 백향현에 부임했으며, 백성들의 송사를 처리하면서 처벌받은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았으며, 전운사 황식이 그의 이름을 듣고 승진시키 위해 불렀지만 국경을 넘는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황식이 화가 나서 백향현으로 직접 가서 문서를 검토하고 그의 죄상을 찾아 고발하려 했지만 아무런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다.
황식이 손님으로 맞아들이면서 유능한 관리라며 다른 관리들에게 후몽을 추천했으며, 양읍협으로 옮겼다가 감찰어사가 되고 전중시어사로 승진했다. 숭녕 연간에 별이 변하는 것을 보고 휘종이 국정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이에 대한 상소를 올렸고 후몽은 시어사로 승진했다.
장수 고영년이 강에서 죽자 분노한 휘종에게 진주로 가서 그들을 체포하고 심문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급사중에 임명되었으며, 진주로 갔고 사건을 보고하기 전에 어사중승에 임명했다. 후몽은 휘종을 설득해 그들의 죄를 묻지 않도록 했다.
형부상서로 옮겼고 형부를 호부로 고쳐 호부상서가 되었으며, 1110년 2월에는 동지추밀원사, 8월에는 상서좌승, 1116년 11월에는 중서시랑이 되었다. 어느날 휘종이 채경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후몽은 채경이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고대의 현명한 신하들조차 그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하자 휘종은 동의하면서 후몽에게 채경의 행동을 비밀리에 조사하게 했고 채경은 이를 듣고 후몽을 원망했다.
화폐 제도를 단독으로 발행했다고 채경에게 탄핵되어 1117년 10월에는 파직되어 박주에서 자정원학사가 되었으며, 1121년에 송강이 수도의 동쪽을 공격하자 송강을 포섭해 방랍의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휘종은 후몽을 동평부로 부임하게 해 송강을 설득하도록 했지만 부임하기 전에 사망했고 당시 나이는 68세로 개부의동삼사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3. 수호전에서
박주태수로 휘종이 나전으로부터 회서에서 왕경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상주를 듣고 왕경의 난에 대해 알았는데, 후몽은 동관과 채유에 패배한 것을 상주하면서 왕경 토벌을 위해 송강을 천거했다. 채경 등은 왕경의 군대가 강하다고 여겨 송강이 토벌을 실패하면 후몽을 나전과 함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일부러 행군참모로 천거해 왕경 토벌에 종군하도록 상소를 올렸다.후몽은 송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전호 토벌의 공을 표창하면서 왕경을 토벌하라는 내용의 조서를 전달했는데, 조서에서 날짜가 선화 5년인 1123년으로 나온다. 이는 소설에서 왕경 다음으로 토벌되는 방랍 토벌이 역사상으로는 1121년이라 시계열이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