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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코스타/클럽 경력/ACF 피오렌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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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코스타
1994-2001
파일:FJZUlA_WQAUjD4e.jpg
▲ 2001년 코파 이탈리아 우승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ACF 피오렌티나 (세리에 A)
등번호 10
기록
파일:세리에 A 로고.svg
215경기
38득점 32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14경기
2득점 2도움
파일:UEFA컵 로고 (1997-2005).svg
3경기
파일:코파 이탈리아.png
36경기
10득점 11도움
파일:Supercoppa_logo.png
1경기
파일:UEFA 컵위너스컵 로고.svg 8경기
2도움
합산 성적
277경기
50득점 47도움
1. 개요2. 이적3. 1994-95 시즌4. 1995-96 시즌5. 1996-97 시즌6. 1997-98 시즌7. 1998-99 시즌8. 1999-00 시즌9. 2000-01 시즌
9.1. 이적 사가
10. 총평

[clearfix]

1. 개요

후이 코스타ACF 피오렌티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재정 문제를 겪던 벤피카는 94년 피오렌티나의 1200만 에스쿠도[1]의 오퍼를 거절하지 못했고, 후이 코스타는 결국 피오렌티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3. 1994-95 시즌

이적 후 첫 시즌인 94-95 시즌 전반기 훌륭한 시즌을 보내며 3위를 유지하며 우승 싸움을 지속하는듯 했지만 후반기에 팀이 무너지며 리그를 10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후이 코스타는 리그 9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팀은 막강한 공격력에 비해 빈약한 수비력으로 무너졌다. 그래도 후이 코스타는 훌륭한 활약을 보였고 바로 팀의 주전을 차지했다.

1994-95 시즌: 35경기(선발 34경기) 9골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1 30 1 9 0
코파 이탈리아 4 4 0 0 0
<rowcolor=#E31F16> 합계 35 34 1 9 0

4. 1995-96 시즌

95-96 시즌 결국 팀은 지난 시즌에 빈약했던 수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으며 챔스권 싸움에 뛰어들었다. 팀은 4등으로 리그를 마무리 했지만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올라 아탈란타를 상대로 결국 우승에 성공하며 컵위너스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1995-96 시즌: 41경기(선발 40경기) 6골 3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4 33 1 4 1
코파 이탈리아 7 7 0 2 2
<rowcolor=#E31F16> 합계 41 40 1 6 3

5. 1996-97 시즌

96-97 시즌 시작 전 수페르코파 우승으로 시즌을 기분좋게 시작하는듯 했으나 유럽 대항전을 병행하는 것인지 리그에서 다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며 9위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컵위너스컵 결승까지 진출하며 우승을 노렸지만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으로 끝나게 된다. 후이 코스타도 시즌 말미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한 달 가량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 때 피오렌티나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1996-97 시즌: 37경기(선발 37경기) 2골 6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8 28 0 2 3
컵위너스컵 8 8 0 0 2
코파 이탈리아 1 1 0 0 1
<rowcolor=#E31F16> 합계 37 37 0 2 6

6. 1997-98 시즌

97-98 시즌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에드문두가 영입되면서 본격적인 바티스투타, 에드문두, 후이 코스타 공격 조합이 완성 되었으며 이 셋은 막강한 파괴력을 보여주었으나 이 당시 감독이었던 말레사니 감독이 구단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리그 5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을 이뤄냈으나 팀을 떠나게 되었다.

1997-98 시즌: 37경기(선발 35경기) 5골 7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2 32 0 3 7
코파 이탈리아 5 3 2 2 0
<rowcolor=#E31F16> 합계 37 35 2 5 7

7. 1998-99 시즌

98-99 시즌 트라파토니 감독이 부임하며 본격적인 강팀 반열에 오르며 세리에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세리에 21라운드 까지 리그 1위를 달리며 30년만에 리그를 우승하는듯 했으나 영혼의 파트너 바티스투타가 부상당하고 같은 공격 조합이었던 에드문두의 이탈로 팀의 공격을 홀로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남은 15경기에서 3승만을 기록하며 리그 3위로 마무리 하게 된다. 거기다가 다시 한번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올랐으나 파르마에게 석패하며 준우승으로 상당히 아쉬운 시즌이었다.

1998-99 시즌: 40경기(선발 40경기) 14골 11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1 31 0 10 8
UEFA컵 1 1 0 0 0
코파 이탈리아 8 8 0 4 3
<rowcolor=#E31F16> 합계 40 40 0 14 11

8. 1999-00 시즌

99-00 시즌 중요했던 순간에 팀을 이탈했던 에드문두를 방출하고 새로 엔리코 키에사를 영입하며 다시 한번 리그 우승에 도전했으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리그를 7위로 마무리 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라운드에는 진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같은 조에 배정받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발렌시아에게 밀리며 3위로 탈락하게 된다. 결국 트라파토니 감독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며 작별한다.

1999-00 시즌: 48경기(선발 46경기) 6골 9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0 29 1 4 6
챔피언스 리그 12 12 0 1 2
코파 이탈리아 4 3 1 0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1 0
<rowcolor=#E31F16> 합계 48 46 2 6 9

9. 2000-01 시즌

00-01 시즌 영혼의 파트너였던 바티스투타가 팀 재정난, 우승 열망등으로 인해 로마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새로이 파티흐 테림 감독이 부임한다. 바티스투타의 새로운 대체자로 누누 고메스를 영입하며 새로 고메스, 키에사, 후이 코스타 공격조합이 형성되었고 파티흐 테림의 공격축구에 핵심이 되며 코스타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화끈했던 공격 축구라 팬들이 보는 맛은 있었지만 리그는 9위로 마무리하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다시 한번 진출한다. 결승에서도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2000-01 시즌: 48경기(선발 46경기) 6골 9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9 28 1 6 7
UEFA컵 2 2 0 0 0
코파 이탈리아 7 7 0 2 2
<rowcolor=#E31F16> 합계 48 46 2 6 9

9.1. 이적 사가

결국 비토리오 체치의 방만한 구단 경영으로 인해 빚더미에 쌓이게 된 피오렌티나는 파산을 하게 되며 선수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가버리게 되었고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며 구단 스타 선수들을 판매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자 그의 팬이었던 AC 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4200만 유로를 피오렌티나에게 제시하며 결국 후이 코스타는 피오렌티나를 떠나며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다.

10. 총평

파일:후이 코스타&가브리엘 바티스투타.png
자신의 영혼의 파트너였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함께
후이 코스타가 피오렌티나에 몸담았던 1990년대 당시 세리에 A는 7공주라 불리는 강호 7팀이 있었고 리그 수준은 2위 라리가와 3위 분데스리가, 4위 EPL이 대적도 못할 만큼 강한 리그였고, 각 팀마다 손꼽히는 미드필더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팀 및 리그에서도 유일하게 프리 롤 역할을 하면서 중원 및 전방까지 씹어먹으며 후이 코스타는 시즌 베스트 11에 여러번 선정되고 이적시장마다 이적루머가 뜰 정도였다. 당시 비교된 선수로는 AC 밀란즈보니미르 보반, 유벤투스지네딘 지단, SS 라치오파벨 네드베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등이 있다. 하지만 2001년 거품이 꺼지면서 피오렌티나는 파산하기에 이르고 후이 코스타의 광팬이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3천만 파운드(42M 유로)[2]의 사재를 지불하면서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이때의 활약만 놓고 실력이나 호사가의 입담에서나 지네딘 지단, 프란체스코 토티,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더불어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중 한 명이였다. 지금도 피오렌티나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로 추앙을 받고 있다.

[1] 포르투갈의 예전 화폐단위.[2] 당시 이적시장 규모로 보면 미친 수준이다. 2022년 지금이야 3000만 파운드야 유망주 영입하는데루크 쇼, 윌프리드 자하×2 지급하는 수준이지만 안드리 셰브첸코가 첼시에 입성하는데 든 이적료가 3000만 파운드로 호비뉴이전 리그 최고액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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