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사 참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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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bfff><colcolor=black> 시라쿠사 제2대 참주 히에로 1세 Ἱέρων Α΄ | |
출생 | 미상 |
시칠리아 | |
사망 | 기원전 467년 |
시칠리아 에트나 | |
지위 | 시라쿠사 참주 |
국가 | 시라쿠사 |
가족 | 데이노메네스(아버지) 겔론 1세(형제) 트라시볼로스(형제) 폴리젤로스(형제) 데이노메네스(아들) |
시라쿠사의 참주 | |
재위 | 기원전 478년 ~ 기원전 467년 |
전임 | 겔론 1세 |
후임 | 트라시볼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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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라쿠사 제2대 참주.2. 생애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버지는 데이노메네스였으며 조상은 델로스 출신이다. 또한 그의 집안은 린디아 정착민들을 따라 시칠리아 남부의 젤라 시를 건설하는 데 참여했다. 또다른 조상인 텔린스는 겔라에서 발생한 내전을 치토닉(Chthonic: 지하 세계) 신들의 도움으로 끝낼 수 있었고, 이후 그의 후손들은 이 신들의 제사장 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겔론 1세, 트라시볼로스, 폴리젤로스라는 세 형제가 있었다.484년 겔라에서 시라쿠사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 형 겔론 1세에 의해 겔라 참주로 선임되었고, 형의 편에서 여러 전투를 치렀다. 기원전 478년 임종을 눈 앞에 둔 형으로부터 시라쿠사의 참주이자 모든 영토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겔라의 총독이 된 폴리젤로스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카긴타의 통치자이자 겔론의 장인이었던 티론에게 망명했다. 양자는 전쟁을 벌이는 듯했지만, 기원전 477년 시인 시모니데스의 개입으로 화해했다. 같은 해 레지아의 참주 아낙실라스의 공격을 받고 있던 남부 이탈리아의 에피제피리아 참주 로크로스에게 지원군을 보냈다.
기원전 476년 낙소스와 카타니아 주민들을 레온티노스로 옮기고 카타니아를 에트나로 개명했으며, 5,000명의 시라쿠사인과 5,000명의 펠로폰네소스인 용병을 그곳에 정착시켰다. 이후 에트나와 도리스 제도를 아들 데이노메네스에게 맡겼다. 기원전 474년 에트루리아인들을 해전에서 격파해 키미 주민들을 구했으며, 이를 기념하여 에트루리아 투구를 올림피아 신전에 헌정했다. 이후 티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트라시디오스를 격파하고 아카긴타의 참주에서 폐위시켰다.
시라쿠사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큰 번영을 누렸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금화와 은화가 발행되었으며, 시모니데스, 크세노파네스, 에피카르무스, 아이스퀼로스, 핀다로스, 바킬리데스 등 당대 최고의 시인, 음악가, 예술가들이 초빙받아 그의 궁정에 머물렀다. 그러나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그를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하며, 온화하고 순수했던 형 겔론과 대조했다. 그에 따르면, 히에로는 간첩 조직을 결성하여 정적들의 약점을 찾아내어 숙청했다고 한다.
기원전 467년 에트나에서 사망했고, 동생 트라시볼로스가 참주를 이어받았다. 그의 무덤은 훗날 망명에서 돌아와서 에트나를 카타니아로 되돌린 주민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