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14대 외무부 장관 히우 브랑쿠 남작 José Maria da Silva Paranhos Júnior Barão do Rio Branco | |
<colbgcolor=#009B3A><colcolor=#FFD700> 출생 | 1845년 4월 20일 |
브라질 제국 리우데자네이루 | |
사망 | 1912년 2월 10일 (향년 66세) |
브라질 합중 공화국 리우데자네이루 | |
재임기간 | 제14대 브라질 외무부 장관 |
1902년 12월 3일 ~ 1912년 2월 10일 | |
경력 | 리버풀 주재 브라질 총영사 ,(1876~1893), 주독 브라질 대사 ,(1901~1902), 브라질 제14대 외무부 장관 ,(1902~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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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외교관이자 '브라질 외교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인물이다.2. 생애
본명은 주제 파라뉴스 주니오르이다. 브라질 제국의회 의원이자 후에 브라질 총리[1]까지 오르는 주제 파라뉴스 세니오르 히우 브랑쿠 자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페르남부쿠 연방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1872년 7월, 브라질 신문사인 A Nação[2]의 편집장이 되었다. 브라질 제국이 폐지되기 하루 전날, 페드루 2세로 부터 히우 브랑쿠 남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이후, 1876년 주 리버풀 브라질 총영사, 1889년 파리 이민국 국장, 1900년 주 베를린 브라질 총영사, 1901년 주독 브라질 대사 등을 역임하다가 1902년 12월, 브라질 외무부 장관을 맡게 된다.
외무부 장관 시절, 히우 브랑쿠의 가장 큰 업적은 현재 브라질의 국경을 확립한 것이다. 우선, 1890년부터 남부 지역의 산타카타리나주와 파라나주를 두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영토 분쟁을 벌리고 있었는데 현상 유지의 원칙(Uti possidetis)에 의거한 브라질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며 1895년 미국의 중재로 합의가 되었다. 1900년, 북부 국경지역의 아마파주 지역을 두고 프랑스와의 소송에서 승리하여 지금의 아마파주와 프랑스령 기아나의 국경이 확립되었다.[3] 1903년 11월엔 볼리비아와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맺어 아크리주를 둔 양국의 분쟁을 종결시키고 브라질로 영토를 편입시켰다. 그의 장관 임기 동안 브라질은 약 90만km의 국경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4][5]
그 외, 1908년엔 팡 지 아수카르의 케이블카 설치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1912년 초, 신장병으로 장관직 사임을 청했지만 에르메스 다 폰세카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하지만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