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0-09 19:41:49

힐데프란트

파일:external/wiki.totalwar.com/Langobards_flag.png
랑고바르드 국왕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알보인 클레프 아우타리 아길루프 아달랄트
아리알트 로타리 로달트 아리페르트 1세 페르타리트
고데페르트
그리말트 가리발트 페르타리트 알라히스 쿠닝페르트
리우페르트 라긴페르트 아리페르트 2세 안스프란트 리우프란트
힐데프란트 라치스 아이스툴프 데시데리우스 }}}}}}}}}}}}
랑고바르드 21대 국왕
Hildeprand | 힐데프란트
파일:힐데프란트.jpg
제호 한국어 힐데프란트
라틴어 Hildeprand
생몰 년도 미상 ~ 744년 8월?
재위 기간 744년 1월 ~ 8월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21대 국왕.

2. 행적

아스티 공작 시기프란트의 아들이자 리우프란트 왕의 조카로, 732년 비센차 공작 페레데오와 함께 라벤나를 기습하여 공략함으로써 라벤나 총독부를 일시적으로 무너뜨리는 공적을 세웠다. 737년 리우프란트가 중병에 걸리자, 랑고바르드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리우프란트가 회복되자 도로 취소했다. 파울 부제에 따르면, 리우프란트는 회복된 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조카를 왕으로 세우려 했다는 것에 격분했지만, 자신에게 아들이 없으니 평화로운 승계를 보장하려면 이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묵인했다고 한다. 739년 발칸 반도에서 파견된 동로마 함대가 교황 그레고리오 3세의 호소에 응한 베네치아 함대와 손을 잡고 라벤나로 진격해 탈환에 성공했다. 페레데오는 전사했고, 그는 생포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744년 1월 리우프란트 왕이 사망한 뒤 파비아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무장한 군대 앞에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동로마 제국과 교황에 대한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해 8월 프리올리 공작 라치스를 앞세운 반란군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가 이때 죽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