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히포크라테스학파에서 정리하여 갈레노스에 의해 중세까지 지배적인 학문이었던 생리학가설. 4원소설을 근원으로 두고 있어서 엠페도클레스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문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 성인에 의해 갑자기 생겨났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전에 세간에 떠돌던 의학정보들을 모아모아 4체액설을 정립했다는 것이 합당하다.히포크라테스학파는 의학은 하나의 학문이자 과학이라는 관점을 공유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질병에 대한 자연철학적 접근을 시도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체액설이다. 당시에는 대부분 질병이 신이 내린 징벌이나, 악행에 대한 벌로 보고 굿이나 무당을 불러 치료(?)했는데, 이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4체액설은 그 의의가 크다.
이에 따르면, 각각 4원소에 대응되는 혈액(blood→air)[1], 점액(phlegm→water)[2], 황담액(yellow bile→fire)[3], 흑담액(black bile→earth)[4]의 네 가지 체액이 인체를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 이 체액들의 불균형이 일어나게 되면 질병이 야기된다.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 체액이 월등히 우세한 기질로 태어난다고 믿었던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성격 검사부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를 거치는 동안 4체액은 번갈아가면서 체액이 증가하게 되는데, 따뜻한 성질의 혈액은 봄에, 습한 성질을 가진 황담액은 여름에, 건조한 성질의 흑담액은 가을에, 차가운 성질인 점액은 겨울에 우세를 점하며, 이로 인한 질병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에 근거하여 질병을 다혈질(sanguine temperament), 담즙질(choleric temperament), 흑담즙질(melancholic temperament), 점액질(phlegmatic temperament)로 분류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질병의 성질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였다.[5]
하지만 이 치료법이라는 게 참 끔찍했는데, 체액을 빼내는게 중요했던만큼 일부러 구토, 이뇨, 설사 등을 일으키는게 치료법이랍시고 자행되었다. 구토제로선 독극물인 비소가 애용되었고,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6] 특히 사혈은 거의 무안단물급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는데 두통, 질병, 심지어 정신병에도 사혈로서 대응을 했다.(...) 당연히 효과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만약 사혈한 곳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이미 환자는 저세상에... 거기에 이 뽑아낸 피를 아무데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곧 흑사병이 전유럽에 퍼지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학파 내에서 지배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몇몇 논고에서는 담액과 점액만을 인정하였으며, 다른 논고에서는 이 체액설 자체를 다루지 않기도 하였다.
4체액설이 지배적인 학설이 된 것은 갈레노스의 업적이 크며,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슬람권의 이븐 시나 등의 의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어왔다.
갈레노스의 4체액설은 히포크라테스학파의 4체액설을 계승하여 하나의 방대한 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인체의 기본 성분이 4체액이라는 관점 하에 네가지 체액이 결합하여 조직들을 만들고, 조직들이 결합하여 기관들을 형성하며, 이 기관들이 엮어져서 신체를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네이버캐스트에서 이 4체액설에 관해 정리해둔 글이 있다. 참고해 보도록 하자.
2. 후대 학자들의 비판
4체액설에 대한 비판은 고대에도 있어왔다. 에라시스트라토스는 4체액설을 부정하고 병은 장기의 이상에 의해 생겨난다는 고체병리설을 주장했다.3. 현대
현대의 4체액설은 4기질론 혹은 DISC 기질론으로 계승되어 인간 개개인의 타고난 성격의 기질을 분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의학으로서의 4체액설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명칭만 따온 정도다. 다만 사람의 성격기질을 12가지만으로 분류할 수 있냐는 비판적 견해가 있으며 그리 힘이 있는 추세까지는 아니다.현대의 유사과학인 혈액형 성격설은 4체액설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체액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논지가 같고, 체액의 종류가 4가지이며, A형 = 우울질, B형 = 다혈질, O형 = 담즙질, AB형 = 점액질과 대충 대응한다. 다만 O형에 다혈질의 특징도 들어 있는 등 완전히 대응하지는 않는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늑대와 향신료에서 크래프트 로렌스가 호로의 몸상태를 염려해 밍밍한 사과주를 주면서 "인간은 4가지 종류의 상태가 있다"며 "사람의 몸은 차고, 뜨겁고, 건조하고, 습한 상태가 있고 이는 음식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당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4체액설을 차용한 내용인 것이 확실.
[1] 뜨겁고 습함.[2] 차갑고 습함.[3] 뜨겁고 건조함.[4] 차갑고 건조함.[5] 다혈질은 쾌활하고 낙천적인 사람, 담즙질은 화가 많은 사람, 흑담즙질은 우울한 사람, 점액질은 냉정하고 무관심(혹은 무기력)한 사람으로 여겨졌다.[6] 당시에도 비소가 극독인걸 알고는 있었지만 '적당량' 사용한다면 오히려 약이라며 괘념하지 않고 썼다. 무지함이 낳은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