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a (갈라)는 일본의 록밴드이다.
일본 위키백과 소개.
개인 블로그의 소개.간단히 적혀져 있다.(일본어)
1. 개요
갈라는 1995년에 싱글 "Eternity"로 데뷔해 리더이자 보컬인 아사다 쿄야[2]와 베이시스트 시노다 타츠야를 중심으로 창립되었으며, 1997년에 MOON CHILD와 비슷한 포맷의 감성밴드를 결성시키려는 에이벡스로부터 데뷔 제의를 정식으로 받고 98년에 데뷔하였다. 이들의 라이벌로 꼽히는 밴드로는 Polydor Japan[3]의 All I Need와 라스티어(Lastier)정도가 있다.덧붙여서 팀명인 Galla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부인인 갈라 여사로부터 따와 지었다고.
2. 활동
2.1. 연보
- 1995년 12월 31일, 일본 요코하마의 Club24에서 아사다 쿄야, 다나카 유우, 오하시 타카아키, 시노다 타츠야 4인이 한정반 데뷔싱글 'Eternity'를 발표하며 공연한 것을 통해 언더 데뷔.
- 1996년 1월, Zi:Kill의 드러머 EBY에게 발탁되어 토이즈팩토리에서 연습생활 시작.
- 1996년 4월 25일, 토이즈팩토리의 컴필레이션 앨범 'Emergency Express 96'에서 FANATIC◆CRISIS, Plastic Tree 등과 함께 참여.
- 1997년 일자불명, 다나카 유우가 모 기타회사로부터 기타를 헌정받음.
- 1997년 3월, 반다이 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Syncical Syndrome' 녹음 참여.
- 1997년 6월 21일, EBY 프로듀싱으로 반다이 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Syncical Syndrome'에 Electrical Love, Go Ahead, Go Around 2곡 수록. NEARMISS, marqree 등과 함께 참여. 같은 날 개최된 라이브에서 프로덕션 프로듀서에게 에이벡스 이적제의 받음.
- 1997년 일자 불명, 사쿠마 마사히데의 캐스팅으로 토이즈팩토리 연습생 생활 종료. 에이벡스로 멤버 전원 이적.
- 1998년 3월 일자 불명, 데뷔싱글 '죄의 처벌' 샘플CD 배포 시작.
- 1998년 6월 10일, 데뷔싱글 '죄의 처벌' 공식 발매로 메이저 데뷔. 같은 날 CYBER에서 메이저 데뷔공연 매진 기록.
- 1998년 8월에는 이시카와 현에서 매년 개최되는 1 만명 규모의 이벤트 "KIT POP HILL '98"에 SHAZNA, La'cryma Christi, CASCADE, All I Need, 섹스 머신건즈들과 함께 출연.
- 1998년 9월 9일 2nd Single 「기적의 장미 (키세키노하나) '를 발표했다. 오리콘차트 100위 기록.
- 1998년 12월 18일, KISS '98 GO! GO! avex POP NIGHT Vol.2에 참전. hitomi, MOON CHILD, Favorite Blue와 함께 참여.
- 1999년 1월 13일 1st Album "WORDS FROM MIND '를 발표했다. 오리콘차트 91위 기록.
- 1999년 2월 26일부터 니가타 Z-1을 시작으로 첫 전국 투어 16 개 공연을 펼친다.
- 1999년 4월 3일, SHOCK WAVE CIRCUIT '99 ~봄의 폭풍(~春の嵐~)~에 섹스 머신건즈, Transtic Nerve, Endless들과 함께 출전.
- 1999년 5월 12일, 미츠야 사이다의 CM 송으로 기용 된 4th Single 「훼로미스토 '를 발표.
- 1999년 7월 2일, 도쿄 아카사카 Blitz에서 L' luvia, La'Mule, LU + CA와 함께 합동 라이브. L'luvia와 함께 주요 아티스트로 공연.
- 1999년 7월 13일 히가시 메이에서 시작된 투어 "Proud Message" 스타트.
- 1999년 8월 11일, 닛폰 테레비계 "빙빙 나인티나인 엔딩 테마 「나쯔노카케라」발매.
- 1999년 8월 14일, 커팅엣지 레이블에 소속되었던 아티스트들이 Zepp Tokyo에서 공연했던 cutt your edge TOUR 99에 Janne Da Arc, Kyo, OBLIVION DUST, zilch 등과 함게 참가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오프너로 공연.
- 2000년 9월 25일, Y2K 롯폰기에서 개최된 Danger Cross에 The Night Breeze Zinia, VIRTUE, NEED와 함께 합동 라이브. 이날은 헤드라이너로 공연.
- 2000년 10월 4일, 라스트 싱글 'Hearts' 발매.
- 2000년 11월 12일 Y2K 롯폰기에서 이뤄진 라스트 라이브를 끝으로 해체 후 에이벡스와 계약 종료.
- 2012년 12월 요츠 Doppo의 KOHAK 라이브에서 아사다 쿄야, 다나카 유유, 시노다 타츠야 3인이 임시로 재결성 선언.
- 2013년 1월부터 재결성 기념 투어 및 라디오 방송출연 실시.
- 2014년 1월 1일 재해체.
2.2. 아마추어 시절
1995년, 스쿨밴드 멤버들로 데뷔한[4] Galla는 결성과 함께 학교 대내외로 자신들 나름대로의 활동을 펼치고 그 결과 데뷔싱글 "Eternity"의 발매를 앞두지만, 멤버 G(실명불명)와 토시마 준야(드럼)의 다툼으로 이 둘이 탈퇴하여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된다.[5]그리하여 아사다와 시노다는 주변 학교를 돌며 새 멤버들을 물색하였고, 그 결과 주변 학교 일대에서 수준급 연주자들로 이름난 드러머 오하시 타카아키와 기타리스트 다나카 유우가 들어온다.[6][7]
그 후 1996년 1월, Galla는 길거리공연을 시작으로 다시 시작하다가 Toy's Factory 소속의 프로듀서였던 EBY가 공연을 보고 자신의 회사에서 나오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Emergency Express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고,다음달에 Galla는 Emergency Express 1996의 수록곡 'You...'를 통해 첫 데뷔를 하게 되며,이 곡은 아직까지도 Galla의 명곡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때 Galla는 결성 후 첫 라이브 콘서트 참여를 하게 되고,이 공연을 계기로 객원멤버였던 다나카 유우가 공식적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 후 1년뒤인 1997년, Galla는 연이어 반다이 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Cynical Syndrom'에 곡을 제공하였다. 또한 같은해 6월에 cynical syndrome 참여밴드들의 합동공연에서는 라이브 콘서트에서 갓 데뷔한 신인답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좋은 모습을 대중속에 각인 시켜놓았으며, 또한 All I Need의 정규 1집 앨범인 'Beauty Maniac'을 발매하는 데에 Galla 멤버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던 도중 에이벡스의 프로듀서이자 J-Rock의 대부로 불리는 거장 사쿠마 마사히데[8]가 Galla에게 정식 데뷔요청을 부탁하였고, 그에 따라 Galla는 엔터테인먼트 계약은 에이벡스, 음반은 커팅엣지(Cutting Age)가 담당하도록 계약이 되었다.
2.3. 메이저 데뷔 직후
Galla는 6개월 간의 트레이닝을 끝으로 1998년 6월 10일에 '罪に罰を(죄를 처벌)'을 통해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에이벡스의 계획대로 나름의 인기를 끌었다.[9]데뷔싱글인 '죄를 처벌'은 7백장 안팍의 적은 매상을 보이며 판매고는 신통치 않았으나 13,000명이 동원된 POP HILL 98' 콘서트에서 좋은 라이브를 보여주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 후 Galla는 POP HILL 98' 콘서트 때의 입소문을 이어 이니셜D의 1기 엔딩으로 잘 알려진 '奇蹟の薔薇(기적의 장미)'를 98년 9월 9일에 발매하여 메이져 밴드로의 발돋움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 후 12월에는 소규모 클럽에서 연 300명 초청의 스페셜 쇼케이스를 생방송하여
2.3.1. 싱글 3집 이후
밝은 분위기의 후속곡인 'シグナル[11]'를 통해 Galla는 인기를 이어가려고 하였으나, Galla는 전작 기적의 장미에 비견할만한 인기를 몰고오진 못해 잠시동안 침체기에 빠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적의 장미에 비해서였고, 애수 성향이 짙은 곡의 구성이 제법 매니아들에게 호응을 얻어 Galla의 곡들 중 제법 인지도가 있다.
그 후 Galla는 활동을 잠시 접고 정규 1집 WORDS FORM MIND를 통해 음악성을 한층 끌어올리게 되나, 유로비트를 필두로 전자음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1999년, 일본 음악시장의 중심에 선 에이벡스가 제대로 된 서포트를 해주지 못해 앨범 구매자 한정 라이브 쇼케이스[12]와 전국 투어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Words From Mind에서 Galla는 그간의 부진을 씻는 데 성공하였고, 오리콘 차트에 안착하는 등의 괄목상대할 성과를 올린다.
또한 Galla는 99년 5월에 발매한 펑크 락 기반의 'フェロミスト(훼로미스트)'를 통해 재기에 성공[13], 여름에 걸맞은 듯한 시원한 사운드의 'ナツノカケラ(나츠노 카케라)'[14] 를 통해 락계에 다시 성공적으로 복귀를 하였으며, 이니셜D의 2기 엔딩인 'キミがいる(네가 있어)'를 발매하였다.[15]
그 후 1999년 11월에는 미국에서 유행하던 뉴메탈 사운드와 자신들의 프로그래시브 사운드를 접목시킨 정규 2집 'PARA-LIFE'를 발매하고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나, 기타리스트 다나카 유우의 가정사정으로 2000년 11월에 해산한다는 예고를 남겼으며, 2000년 10월에 HEARTS를 마지막으로 조용히 해체된다.
2.4. 재결합
그 후 Galla는 10년 동안 묻혀있었으나, 2012 년 12월에 다나카 유우의 밴드 KOHAK이 요츠 Doppo에서 연 원 맨 라이브에서 멤버 모두가 우연히 모인 것을 계기로 개인사정으로 불참한 드러머 오하시 타카아키를 제외하고 베이스 담당이었던 시노다 타츠야와 보컬 아사다 교야, 다나카 유우 3인이서 12년만에 Galla의 악곡을 연주하여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재결합을 발표했다. 그 후 3월에 재결성 라이브를 3부작으로 구성해, 12월 즉석콘서트에 빠진 오하시 타카아키까지 불러들여 재결성을 한 뒤 3부작 콘서트 'Chapter 3'를 개최하고 2014년 1월 1일에 재해체를 발표하였다.3. 해체
3.1. 2000년 1차 해체 당시
Galla는 99년 12월에 발매한 신보 "PARA-LIFE"의 전국순회 콘서트를 하기 위해 2000년 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해체의 기미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밴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같은해 9월 돌연 해체를 발표한다.3.1.1. 왜 해체됐나?
3.1.1.1. 다나카 유우의 가정사정?
보통의 라이트한 Galla의 팬들은 다나카 유우의 가정사정으로 더이상 다나카가 기타를 잡을수 없게 되고, 금전적인 손상으로 밴드를 그만두자 남은 멤버들도 덩달아 같이 그만두어 해체되었다고 생각한다.[16]그러나 다나카는 1994년부터 'Z56Studio'를 설립해 스튜디오 대관이나 녹음비같은 벌이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는 별로 없던 상황이었고, 가정도 그렇게까지 금전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었다.3.1.1.2. 멤버들간의 불화?
겉으로는 좋은 친구사이였던것 같지만, 보컬 아사다와 기타리스트 다나카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1집 Words From Mind가 시작될 즈음 다나카는 사쿠마 마사히데의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을 벗어나 자신이 새로 프로듀싱을 하길 원했지만, 아사다는 그와 정 반대로 사쿠마의 프로듀싱을 지지하는 쪽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아사다와 다나카가 번갈아가며 사이트에 방송하는 인터넷 라디오였던 "Galla On Air"에서 '모씨는 사쿠마씨의 프로듀스가 마음에 들지 않죠'라고 우회성 비난발언을 해 다나카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다나카는 ' 모씨는 음악적으로는 너무 순종적이고,밴드 내에서는 고집만 피우는게 Yoshiki같아졌어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라고 응수하여 아사다와 다나카 두 사람 간의 불화가 시작되었고, 이에 베이시스트인 시노다까지 가세하며 ' 이럴 거면 난 내길을 간다 '라고 했었다 한다. 그 당시 일본 인디락이나 비쥬얼락 팬들은 '아사다의 독단이 잘나가던 밴드를 해체시켰다'라는 불화설을 해체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3.1.1.3. 에이벡스의 무언의 방출?
1999년, 에이벡스에서 Galla의 뒤를 이어 Janne Da Arc가 데뷔하면서 Galla보다 괜찮은 성적을 내자, 데뷔 초와는 달리 부진하는 Galla를 에이벡스가 내친 게 아니냐는 주장 또한 있다. 일부 팬들은 Galla를 내치지 않았으면 잔다르크도 활동중단한 지금 에이벡스가 밴드로도 활동영역을 계속 뻗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할 정도.하지만 당시 에이벡스가 정말로 Galla를 내치려고 했던 정황이나 증거는 없어 알 수는 없다. 멤버들 간의 사이가 안좋아 해체되었다고 한 위의 주장을 오히려 많이 찾아볼 수 있을 정도.
3.2. 재결합 이후
재결합 이후에도 다나카나 아사다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아사다는 Galla 이야기를 할 때는 다나카를 불가피하게라도 이야기를 했었지만, 음악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다나카는 자신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97년, Galla의 인디 시절일때 한 기타회사로부터 기타를 헌정받았죠. 그 때 나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최소한 기타에 내 이름이 부족하지 않게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글을 제외하고는 아사다와 시노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재결합의 전초전이었던 즉석공연 당시에도 시노다는 '옛날악곡은 안하면 좋겠는데...'라는 발언을 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불화에서 자유로웠던 이가 있다면 드러머인 오하시 정도.[17]
다행히 2015년에 Galla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하시와 다나카가 도쿄에서 모인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오하시가 시노다를 불러 다나카와 시노다가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는 등 상당한 관계개선이 있었던 것을 페이스북으로 전해, 올드 팬들은 조심스레 재재결합을 바랐다. 다만 아사다는 스케쥴을 핑계로 자리에 참석하지는 않았고, 다나카는 페이스북에 20주년 모임 후기글을 올리면서 Galla 때 찍었던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때 아사다의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하여
다행히도 현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풀어진건지 멤버 4명 모두가 원만한 관계를 되찾는 데 성공하였다. 여담이지만 재결합 이후 있었던 기념 콘서트 실황을 DVD로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4. 스타일
4.1. 곡풍
4.1.1. 아마추어 시절
데뷔 초이자 아마추어 시기였던 Gala 시절에는 요즘 인디밴드들이 자랑하는 특유의 밝은 사운드와 얼터너리브 락을 합치는 식의 간단한 조합을 통해 곡을 만들었고, 그 당시의 너무 많은 인디씬의 하드 락 밴드에 질려버린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어필이 되었다. 위의 글에서 소개한 You...(Emergency Express 1996 수록)가 대표적인 사례.4.1.2. 메이져 데뷔 후
아마추어때 부터 고집해오던 밝고 가벼운 사운드에 얼터너리브 락을 합치는 방식을 고집하였고,메인 프로듀서였던 사쿠마 마사히데도 그들의 음악성을 존중하며 편곡을 해 프로그레시브한 느낌도 넣어 제법 프로다운 느낌으로 이미지 변신을 해 히트한다.그 후 1998년 11월에 발매한 싱글2집 시그널의 수록곡 '미래소년'을 시작으로 자신들이 구사하는 장르 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넣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 1월 발매된 정규1집 'Words From Mind'에서부터는 애수 락 사운드와 프로그레시브를 도입하여 음악성으로 크나큰 찬사를 받는다. 이 수록곡들 중에서는 어둡고 애수성이 강한 락 발라드 곡 ~마리아 ~ Under The Water[18],인디밴드의 밝고 활기찬 느낌의 Applause, 어반 필 충만한 펑크 록인 Psycho Brain 등의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포진되어 있다.
또한 2집인 Para-Life는 결정적으로 메인 작곡가가 사쿠마에서 나카야마 츠요시로 바뀌어 사운드가 상당히 바뀌었고, 음악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많은 변화를 꾀한 앨범이었지만 레이브 비트와 강렬한 락 사운드가 합쳐진 'FLAG', 그리고
4.2. 각각의 장단점
인디밴드로 시작한 밴드들과는 달리, 강력한 얼터너리브사운드가 장점이었다. 이것은 아마추어 였을때는 크나큰 강점이었지만 메이져 데뷔 후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가 많아 Galla가 묻히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라스티어나 All I Need는 중간에 노선을 바꾸는 등의, 시대에 편승한 음악들도 많이 내놓다보니 Galla보다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Galla가 얼터너리브 사운드만 고집한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마다 그대가 있어같은 정통 어쿠스틱 락 사운드도 많이 보여주곤 했다.또한 이 밴드의 장점을 꼽자면, 빠른 속주 능력을 들 수가 있는데, 공연실황 영상을 보면은 기타리스트 다나카 유우가 잉베이 말름스틴의 무대매너를 오마주한 듯한 퍼포먼스가 많고, 메탈리카나 건즈 엔 로지스 등의 기타 퍼포먼스를 차용한 퍼포먼스가 많다. 그리고 보컬인 아사다 쿄야의 신비로운 목소리 또한 마니아층을 두텁게 형성한 주역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스쿨밴드 시절부터 쌓아올린 라이브 능력또한 수준급이다.
4.3. 복장
문서 내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흑복계로 분류되었다. 멤버들이 대체로 검은색 계열의 흑색 의상들을 자주 입었다 보니 팬들은 저승사자(...) 드립을 치기도 하였다.5. 멤버
5.1. 아사다 쿄야
(2000년 싱글 7집 Hearts 활동 중
(최근.
공식 사이트공식 블로그
아사다 쿄야(麻田響也 → 麻田キョウヤ), 1973년 12월 11일생.
보컬ᆞ프론트맨 담당으로 효고현 고베시 나가타 구 출신이다. 현재는 이름 부분을 가타카나로 개명하고 뮤지컬 배우 겸 라디오 DJ로 활동하고 있다. 허스키한 미성이 특징이며, 보컬 스킬 또한 상당히 출중해 뮤지컬 배우로는 일본 내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있다. 2017년 기점으로 뮤지컬은 데뷔 10주년.
2000년 Galla 해체 이후에는 이런저런 회사일을 하면서 지내다, 우연한 기회에 에이벡스 시절의 매니저와 재회해 Music Psyclops 프로젝트로 솔로 데뷔한다. 이 시기에는 Galla 시절의 락 색채가 짙은 음악보다는 주로 발라드ᆞ재즈 곡들을 내놓았으며, 한때는 본명인 "아사다 쿄야"로 가면라이더 블레이드의 수록곡인 "Never Too Late"를 부르기도 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쿠로유메의 히토키, MOON CHILD의 아키야마 히로노리의 라이브 서포트를 받는 등 나름대로 정력적인 활동을 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였으며, 아메바 블로그가 생긴 이후로는 자료를 아메바 쪽으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업데이트는 3일씩 하거나 적어도 1주일씩 하는 편으로, Galla 때의 팬들과 덧글로 소통하다 보면 옛 에피소드들을 얘기해 주곤 한다. 참고로 멤버들 중 유일하게 미혼.[19]
그러다 2006년 인생 처음으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 Galla 시절의 매니저가 뮤지컬 제의를 하면서 2007년 같은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한다. 현재는 뮤지컬과 연극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가수활동은 잠시 중단하였고, KISS 고베 FM에서 라디오 방송 "아사다 쿄우야의 Friday Night Driving"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30분마다 진행하고 있다.
5.2. 다나카 유우
(1999년 Galla 정규2집 'Para-Life 쇼케이스 실황 중
(2014년. 오른쪽이 유지이다.
다나카 유지(田中雄二), 1973년 10월 30일 생.
기타 담당으로 도쿄도 코토 구 출신이나, Kohak의 공식 사이트에서는 미타카 시 출신이라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이 밝힌 바로는 미타카 시 출신이 맞다고. Galla 해체 후에는 낙심하여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현지에서 음악 공부를 하다 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뉴욕에 갔다 9.11 테러의 현장에 휘말려 혼란한 상황을 목격했었다고.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으며, 현재는 밴드 "KOHAK"과 솔로 프로젝트 "OUT OF MIND"[20]등 자유 활동 중이며, 1주일 간격으로 페이스북을 업데이트한다. Galla가 공식 데뷔를 하기 전인 1997년에 한 기타 회사로부터 기타를 헌정받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며, 그루브한 비트와 속주가 특기이다. 그러나 Kohak으로 다시 활동하면서 어쿠스틱 기타로 전향해 버린지라 안타깝게도 전자기타 속주는 한동안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Analog Hack Earth 공식 페이스북
공식 사운드 클라우드
KOHAK이 잠정 휴식을 하자, 그 사이 Analog Hack The Earth라는 펑크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발탁되었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 속주가 예전만하지는 못해졌지만, 연륜이 묻다 보니 그루브한 느낌의 연주는 실력이 향상되었다.
Analog Hack The Earth 첫 공연실황
또한 자신이 과거에 속해 있었던 밴드 'Secret'의 보컬 안도 토시히코가 밝힌 바에 따르면, 과거 오하시와 같이 'Secret'에서 같이 활동했다고 한다. 덧붙여 멤버들의 나이까지 모두 밝혀졌는데, 멤버 전원이 1973년생이다.
일본의 민진당 지지자이다. 특히 타시로 카오루[21] 민진당 전 참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3. 시노다 타츠야
(1998년 죄의 처벌 뮤직비디오 촬영 때. 오른쪽이 시노다이다.)
(현재.
시노다 타츠야(篠田達也), 1973년 11월 3일[22]생.
베이스 담당이며, 도쿄 도 기요세 시 출신이다.
슬하에 아들 둘이 있으며, Galla 해체 후에 오하시 타카아키와 길거리 공연을 하며
Muff에서 오하시는 2005년 탈퇴하였지만 시노다는 2011년에 임시해산때 까지 계속 Muff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다만 Muff가 활동을 재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이 안맞다는 이유로 Muff를 그만두었고, 현재는 WANDS의 전 멤버 우에스기 쇼가 결성한 밴드 猫騙(네코다마시)와 T4R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hide with Spread Beaver의 키보디스트 출신인 DIE와 함께 Minimum Rockets에 가입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세션 지원 음악가로도 활동 중이며, 세션 지원 음악가로는 의외로 명성이 높아서 간혹가다 유명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에서 현장의 셋리스트 베이스 담당으로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 멤버들 중에서는 아사다와 더불어 가장 활동이 뚜렷한 멤버.
5.4. 오하시 타카아키
(1999년 Galla 정규 2집 Para-Life 쇼케이스 때.)
오하시 타카아키 (大橋孝明), 1973년 11월 30일 생.
드럼 담당으로, 아이치 현 야토미시 출신이나, Galla 공식 사이트에서는 아이치 현 나고야시 출신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본인 말로는 나고야에서 태어나 야토미에서 학교생활을 했다고.
Galla 시절에는 멤버들 중 외모가 준수하여 카메라 분량은 드러머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받는 등 제법 푸쉬를 받았다. 연하의 아내와 결혼을 했으며, 아쉽게도 슬하에 자녀는 없다.
Galla 해체후에 시노다와 All I Need의 마르와 같이"'Muff"를 결성하였으나, 본인은 2005년에 은퇴하고 현재는 현지 나고야에서 악기 판매와 음악 교실 사업에 종사 중이다. Muff 활동 당시 인디 락 뮤지션 후지사키 켄이치의 솔로밴드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Galla의 재결성 쇼케이스때 힘들었던 과거 회상을 하며 울기도 하였다. 또한 인품이 좋아 주변에 외로운 친구가 있었으면 같이 술을 마시어주기도 했었다는 일화가 있다.
드럼 실력은 고등학교때 일대 고교에서 일류로 통해 속주대결을 즐겨 했었을 정도로 프리스타일로 쌓은 경력이 상당하며, 그 실력은 2집의 수록곡 FLAG에서 확인할 수 있다.[23]
또한 Galla 결성 전 몸을 담았던 밴드 'Secret'에서 다나카와 같이 활동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6. 디스코그라피
6.1. 참여앨범
- Emergency Express 1996 (1996, Toy's Factory)
특이점: GALA 명의 사용, 첫 오버그라운드 데뷔앨범
- Cynical Syndrom (1997, Bandai Music)
특이점: 대규모 라이브 콘서트 참여, 에이벡스ᆞ커팅에이지와 엔터테이너,아티스트 메이저 데뷔 계약체결,GALA 명의 마지막 사용앨범
- Avex 10th Anniversary Presents 十年百曲 ~J-Pop Hit Tracks~ (1998, Avex Tracks)
특이점: 없음
- Initial D Best Song Collection 1998-2004 (2004, Avex Mode)
특이점: 해체 후 발매앨범
- Initial D Final Best Collection (2014, Avex Tune)
특이점: 재결성ᆞ재해체 후 발매앨범
6.2. 정규앨범
- WORDS FROM MIND (1999 1/13,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앨범 구매자 한정 라이브 쇼케이스 공개
- PARA-LIFE (1999 12/8, Cutting Age)
특이점: 8현 16도시 순회 콘서트
6.3. 싱글
- Eternity (1995 8/10, Studio Z56)
프로듀서: 다나카 유지,시노다 타츠야
특이점: 첫 데뷔곡
- 罪に罰を (1998 6/10,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메이저 데뷔곡, Galla 명의 첫 사용앨범
- 奇蹟の薔薇 (1998 9/9,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이니셜D 애니메이션 1기 싱글
- シグナル (1998 11/6,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없음
- フェロミスト (1999 5/12, Cutting Age)
작사: 아사다 쿄야
작곡: 시노다 타츠야
어레인지: 사쿠마 마사히데, Galla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화장품 광고 CF, 사이다 광고 CF
- ナツノカケラ (1999 8/11, Cutting Age)
작사: 아사다 쿄야
작곡: 다나카 유지, 시노다 타츠야
어레인지: 사쿠마 마사히데, Galla
특이점: 뮤직비디오 공개, NTV 신년기획《빙빙99'》엔딩곡
- キミがいる (1999 11/10,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이니셜D 애니메이션 2기 엔딩
- HEARTS (2000 10/4, Cutting Age)
프로듀서: 사쿠마 마사히데
특이점: Galla 마지막 음반
[1] 이들 중 가장 매니악하면서도 가장 흥행력이 따라주지 못했던 밴드다. 멤버 기량이나 실력은 두 밴드 못지 않으나 데뷔 시기가 시기다 보니 에이벡스의 푸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게 중론.[2] 麻田響也,현재 뮤지컬 배우겸 라디오 DJ로 활동 중이며 아사다 교야(본명과는 한자가 다름)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3] 후에 유니버설 뮤직으로 흡수됨.[4] 정작 데뷔싱글이 흔적도 없다(...)[5] 이후 토시마는 비주얼계 밴드 Drug On The Way, 빅밴드 성향의 밴드 Air Cargo Nine에서 활동한다.[6] 이 둘은 이미 92년도 부터 밴드 "Secret"의 멤버로 만나 사적으로 친하던 사이였다.[7] 여담으로 이 때 아사다와 시노다가 미공개로 만든 습작 CD가 있었는데, 이 CD에 들어있는 5개의 곡 중 파노라마의 너머에와 Eternity를 제외한 미발표곡 3곡이 있다.[8] 90년대 일본 J-Rock 시장의 대부로 불릴 정도로 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P-MODEL(79~80 한정), BOØWY, 라르크 앙 시엘, GLAY 등의 거물 밴드를 데뷔ᆞ프로듀스시켰다. 그러나 2010년에 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중 사촌 조카딸인 노기자카46의 이쿠타 에리카에게 합동공연 부탁을 받고 라이브를 치른 뒤, 2014년에 사망했다.[9] 뮤직비디오와 멤버들의 인터뷰 영상이 CD버전에는 부록으로 수록이 된 모양이나,CD판은 거의 팔리지 않아(...) 그 자취를 찾기 힘들다. 좀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인터넷 아카이브를 통해 갈라의 옛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10] 물론 지역방송인 듯.유로비트에 쩌리가 되어버렸다[11] 일본어 표기 시그널,한국어 표기는 신호.[12] 이때 싱글 3집 훼로미스트에 수록된 極上ノカマセ犬가 공개되었다.[13] 훼로미스트는 같은 해 8월에 미츠야 사이다의 CM송으로 쓰여 유명해지게 된다.[14] 발매 전인 1999년 1월에 NTV 신년 기획이었던 '빙빙 99'의 엔딩곡으로 쓰여 인지도가 상당했다. 그 후 여름에 Galla가 나츠노 카게라를 정식으로 발매한 것.[15] 이때부터 Galla의 메인 작곡가는 사쿠마 마사히데가 아닌 타츠야와 유지, 그리고 사쿠마 마사히데의 보조 스태프로 있었던 나카야마 츠요시로 교체된다.[16] 사이트에서의 공식발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17] 다나카도 오하시에 대해서는 '그 친구는 우리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았다. 그친구는 Galla가 해체되고 나서부터 금전적으로 빛이란 빛은 엄청나게 쪼달렸는데, 이 부분에서는 꾹 참고 계속 내색하지 않은 오하시에게 우리가 사과를 해야 한다'라고 발언할 정도.[18] CD판에만 수록된 히든 트랙으로, 카세트 판에는 용량문제와 가격 인하를 위해 수록되지 못하였다.[19] 원래 1996년경 결혼하였으나 2000년에 이혼했다라는 말도 있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일단 부정했다.[20] 안타깝게도 Out Of Mind는 실패하게 됐지만, 이 때 만난 스태프들과 Kohak을 차리는 등 음악적으로 발전을 꾀하게 된다.[21] 본래는 기관사와 무명배우를 겸직했으나, JR 히가시니혼 노조에 가입하면서부터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2013년에는 민진당 의원들과 함께 인종차별 헤이트스피치 금지조항을 발의했고, 한인 학교에도 고교 무상화 제도 확대적용을 요구하는 원내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석하였다. 민주당 시절과 달리 한일관계에 미지근한 인원도 있는 민진당의 말기를 생각하면 지한파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현재는 입헌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며, JR 동일본 노조 부위원장으로 당선돼 중앙정치에서 벗어나 활동하고 있다.[22] 본인이 생일을 밝히지 않아 멤버들의 기억에 의거.[23] 아사다가 아메바 블로그로 갈아타기 전의 개인 블로그에서 한 일화를 소개했었다. FLAG의 전주 부분인 전자비트를 재미삼아 치는 일이 있었는데, 속도가 빨라 다나카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보조 드러머였던 한국인 드러머 이원일이 "난 안되겠어" 하고 포기하자, 오하시가 그자리에서 전자비트의 반이나 되는 부분을 깨끗하게 클리어했다는 흠좀무한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