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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1:53:42

HD.1

1. 개요2. 하청 생산에서 모방 개발로3. 실전

1. 개요

앙리오 HD.1(Hanriot HD.1)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프랑스에서 개발된 단좌 전투기였다. 프랑스 육군항공대에서는 같은 시기에 등장한 스패드 VII를 주력기로 운용해 제식 전투기로는 쓰이지 않았으나, 벨기에이탈리아에 공급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이탈리아군은 이 전투기에 의존도가 높아서 1,200대 이상이라는 전체 생산수 중에서 831대가 이탈리아에서 면허생산된 기체들이었다.

2. 하청 생산에서 모방 개발로

기구가 유일한 비행 수단이던 시절부터 레이싱카와 모터 보트 같은 탈것들에 몰두하던 르네 앙리오(René Hanriot : 1867~1925)는 곧 비행기란 새로운 발명품에 눈을 렸다. 그가 1907년에 설립한 앙리오(Aéroplanes Hanriot et Cie.) 사는 1911년부터 복좌 관측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나 정식으로 채용되지는 않았다. 앙리오 사가 기술적으로 진일보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뉴포르(Nieuport) 사의 주임 엔지니어 알프레드 파니(Alfred Pagny)를 영입한 뒤로, 그때부터 일련의 선구적인 단엽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기란 복엽기가 주류였던 탓에 앙리오가 만들어낸 단엽기들은 백안시되며 납품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일단 업체를 꾸려나기 위해서는 일감이 필요했던 앙리오는 영국의 솝위스(Sopwith Aircraft)로부터 솝위스 1½ 스트러터(Sopwith 1½ strutter)의 생산 물량을 하청받아 생산했는데, 이런 상황을 벗어나게 해준 제품이 바로 신형 단좌전투기 HD.1이었다.

HD.1은 분명히 솝위스 항공기의 특징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튼튼하지만 가볍고 간결한 라인과 낮은 익면하중을 갖고 있었다. 특히 동체 위에서 상단 날개를 떠받치는 지주는 솝위스 1½ 스트러터의 명칭의 유래가 된 긴 지주와 짧은 지주를 조합시켜 정면에서 보면 W자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HD.1은 완전히 복제품은 아니었다. 본가인 솝위스가 같은 시기에 제작한 솝위스 캐멀과는 달리 독자적인 특징으로 하단 날개는 완벽한 수평에 상단 날개만 상반각을 줘서 탑승자의 시야를 약간이나마 개선했다.

110마력의 르 론(Le Rhône 9J)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이 전투기는 특별히 속도가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동성이 높아 훈련이 덜 된 신참 조종사들에겐 안전하고 날리기 쉬운 비행기였다. 다만 같은 시기에 보다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들과 경쟁할 수 있는 상승 및 고공 성능을 내려면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기관총을 1정만 장비해야 했다. 하지만 임무에 따라 성능의 핸디캡을 무릅쓰고 2정을 싣는 기체도 있었다. 빅커스 기관총은 기수 좌측에 장작되어 불시착 상황에서 조종사가 총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아도 됐다. 다만 HD.1을 대량으로 굴린 이탈리아 항공대(Corpo Aeronautico Militare) 같은 경우는 명중률을 특히 중요시해서 조종석 중앙에 장착하는 것을 선호했고, 나중에는 벨기에 항공대에서도 중앙으로 옮겼다.

이 전투기 중에서 극히 일부의 기체는 특별 장비로 관측 기구나 비행선 공격용으로 주익의 지주에 8발의 르 프리에르 로켓탄을 무장하기도 했다.

3. 실전

HD.1은 뉴폴 17을 대체할 신형기로 개발됐지만 프랑스 항공대는 스패드 VII를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잉여 기체가 되고 말았다. 몇 대는 프랑스 해군에 공급됐지만 그마나 일부는 미 해군에 넘겨졌다. 해군에 납품된 앙리오 기체들은 꼬리날개를 넓히고 플로트를 달아 수상기로 개조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수상기 형식인 HD.2로 생산되었다.

프랑스 본국의 초기 양산기 대부분은 벨기에 육군항공대(Aviation Militaire Belge)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약소국 벨기에는 당시 동맹국들에서 쓸모없는 전투기들을 떠맡기도 있던 상황이었던 탓에 동시대의 전투기들과 충분히 싸울 성능을 가진 HD.1은 벨기에군에서 매우 귀중한 항공 전력으로 취급받았다.

HD.1은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벨기에 항공대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됐다. 특히 벨기에가 낳은 최고의 에이스 파일럿 빌리 코펜스(Willy Coppens : 1892~1986)는 HD.1을 몬 모든 조종사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과를 거둔 인물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탑승기를 눈부신 푸른색으로 칠하고 르 플리에르 로켓탄을 기본으로 달고 출격했었다. 그의 격추수는 35대 중에서 32대는 관측 기구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벌룬 에이스'이기도 하다.

또, 소수의 HD.1은 이탈리아에 수출되어 이탈리아 국내에서 생산되는 견본이 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HD.1은 뉴폴 뿐만 아니라 이미 공여되었던 스패드까지 밀어내며 주력기로 이용되었다. 이탈리아군 조종사들에게 HD.1은 고속 중전투기 취급을 받던 스패드 XIII 이상으로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전투기로서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주력 전투기로 사용된 HD.1은 1918년 11월까지 전선에서 활동 중인 18개 전투비행중대 중에서 17개 중대가 장비하고 있었다.

전후에는 스위스 공군과 에콰도르, 파라과이도 약간의 HD.1을 받아들여 이용했다. 또 미 해군항공창(Naval Aircraft Factory)에서도 10대가 수상기 형식과 함께 제작되어 훈련기로 쓰였으며, 그중에서 2대는 기관총 2정을 달고 함상전투기 시험을 받기도 했다. 전쟁 동안 다수의 고성능 전투기를 발표한 영국도 HD.1에 관심을 보여, 영국 해군은 연구용으로 1대를 구입해 플로트를 단 수상기로 개조되었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이 전투기는 몇 대가 복원되거나 복제품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나, 비행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세계에서 단 1대 뿐이다. 과거 1차 대전에서 실제로 벨기에 조종사가 몰았던 그 기체는 뉴질랜드 마스터튼(Masterton)에 있는 클래식 항공기 복원 및 수리업체인 빈티지 에어크래프트(Vintage Aviator Limited) 사가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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