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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9 14:55:54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
Gaius Julius Vindex
파일: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 이름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
(Gaius Julius Vindex)
출생 37년
사망 68년
반란 대상 네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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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반란자. 네로 황제의 몰락의 신호탄이 된 인물이다.

2. 생애

갈리아 아퀴타니아 부족의 귀족 계급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가 48년에 갈리아 출신의 귀족들이 원로원에 들어가는 걸 허용한 직후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빈덱스 역시 원로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68년경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총독에 부임했다. 원로원 의원의 자제는 보통 서른 살에 총독직을 맡았으므로, 빈덱스가 루그두넨시스 속주의 본거지 리옹에 도착했을 때 31살이었을 것이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빈덱스는 "강한 몸에 영리한 지능을 갖췄으며, 전쟁에 능숙했고, 과감했으며, 자유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과 광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 로마에 몇년간 있었고, 네로 황제가 그리스 문화에 지나치게 열중하고 방탕과 사치를 심하게 부리며, 수많은 인사들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하는 걸 지켜보며 반감을 품었다. 그는 황제를 타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갈리아 부족 대표들을 초청한 뒤 이 문제를 논의했다.
빈덱스는 수많은 강제적인 세금 부과로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네로에게 고통받을 갈리아인들을 소집했다. 그는 연단에 올라 네로 황제에 대항하는 길고 상세한 연설을 했다.

"그는 로마 세계를 망쳤소. 그는 원로원의 모든 꽃을 파괴했소. 그는 방탕하며 어머니를 죽였소. 그는 통치권을 형식적으로도 발휘할 수 없소. 많은 살인, 도둑질, 그리고 학대는 종종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저질렀지만, 네로가 저지른 행위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있겠소? 나는 그를 봤고, 내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을 봤소. (중략) 나는 원형 극장에서, 즉 오케스트라에서, 때때로 리라를 들고 헐렁한 튜닉과 버스킨을 입고, 일반 신발과 가면을 쓴 그 남자를 보았소. 나는 종종 그가 노래하고, 연극하고, 비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들었소. 나는 그가 쇠사슬에 묶이고 악당처럼 날뛰고, 아기를 낳을 때 출산의 고통에 신음하는 것처럼, 그렇소, 신화의 모든 상황을 모방하는 것을 보았소.

누가 그런 사람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고 칭하겠소? 절대! 누구도 그런 신성한 호칭을 남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오. 아우구스투스클라우디우스가 그 호칭을 썼는데, 반면 이 사람은 티에스테스, 오이디푸스, 알크메온, 오레스테스라고 불리는 게 가장 적절하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그를 끝까지 거역하고, 여러분 자신과 로마인을 구하시오. 온 세상을 해방하시오!"
디오 카시우스, <로마 역사>

68년 4월, 빈덱스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의 총독인 갈바를 추대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서신을 보내 자기 뜻을 알렸다. 이후 병사들을 소집하고 네로의 명령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필로스트라투스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에 따르면, 그는 병사들 앞에서 "네로는 군주라기보다는 하프 연주자이며, 하프 연주자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광기와 탐욕과 잔혹함과 방종에 사로잡혔다."라고 연설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죽인 최악의 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런 괴물을 낳은 죄악이 크니 당연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최근에 창설된 이탈리카 1군단을 리옹으로 파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투입되기 전에, 라인 강 상류의 군단이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의 지휘하에 반란군을 먼저 공격했다. 루푸스의 군대는 반란에 가담한 베손티오(오늘날의 브장송)을 포위했고, 빈덱스는 베손티오를 구하러 달려왔다. 두 군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서신을 주고받았다. 빈덱스는 네로를 타도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청했지만, 루푸스는 거부했다. 이에 빈덱스는 베손티오로 접근했고, 루푸스의 병사들은 즉시 반격했다.

이렇게 벌어진 전투에서, 빈덱스의 반란군은 괴멸되었다. 빈덱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네로에게 반감이 있던 건 라인 군단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은 루푸스에게 황제가 되어달라고 요구했다. 루푸스는 이를 거절했지만, 라인 군단은 더 이상 네로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빈덱스에게 추대받은 갈바는 이 틈을 타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인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의 협력을 받아 히스파니아 전역을 장악하고, 원로원에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라고 요구하였으며, 근위대에 사람을 보내 뇌물을 찔러주며 네로 타도에 협력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원로원과 근위대 모두 네로에게 등을 돌렸고, 결국 네로는 68년 6월 9일 자결했다. 갈바는 로마에 입성한 뒤 빈덱스를 기념하는 동전을 주조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