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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01:46:42

검교태위겸시중판백제군사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해동사면도통지휘병마제치등사백제왕식읍이천오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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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후백제 · 검교태위 · 신라 서면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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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해석3. 특징4. 같이 보기

1. 개요

檢校太尉 兼 侍中 判百濟軍事 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 行全州刺史 海東 四面都統 指揮兵馬制置等事 百濟王 食邑二千五百戶
검교태위 겸 시중 판백제군사 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 행전주자사 해동 사면도통 지휘병마제치등사 백제왕 식읍이천오백호

후백제의 왕 견훤925년 중국 후당장종에게 책봉 받은 관작들로 892년에 자칭한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47자 보다도 더 길다. 총 52자다.

2. 해석


풀이하면 후당의 검교태위 및 시중이며, 백제군 장관, 지절도독주군사, 자사대행, 도통, 제치사, 백제국왕인 것.

3. 특징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와 비교해보면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백제왕이 있다.

이전 관작은 신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왕을 붙이는 것을 피하여[1] 신라의 공(公)이었으나 이젠 백제의 왕(王)이 되었다.

따라서 아직 후백제를 창건하기 전인 892년에는 신라의 지방호족에 불과하였지만 900년 후백제를 개국한 이후인 925년에는 어디에도 신라란 단어가 없으며 당당하게 백제란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거기에 신라서면도통이었던 도통직이 해동사면도통으로 바다 건너 천하를 지배하는 도통이 되었으며 제치사도 일반적인 제치사가 아니라 제치등사가 되었다. 최고급 직위인 삼공 태위와 중서성 시중을 하사받아 넣었으며[2] 식읍도 이천 호에서 이천오백 호로 더 늘어나서 올라간 위상을 반영하여 관작의 격이 더 높아졌다.

다만 아무리 봐도 '도통'이란 칭호는 총사령관이란 뜻인데, 신라왕 밑 '공'이라면 모를까 이미 '백제왕'인 그로서는 굳이 차지할 필요도 없는 호칭이었다. 신라군 총사령관을 끝내 못해본 아쉬움이 견훤의 인생에서 나름 컸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3]

4. 같이 보기



[1] 신라 왕의 신하이면서 왕이라는 칭호를 쓰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신라에는 신라왕 아래 갈문왕, 보덕국왕, 탐라국왕, 우산국왕과 같은 왕 아래 제후왕이 있던 나라다. 이는 고려도 마찬가지인데, 고려왕 아래에 낙랑왕, 실직군왕, 필영대왕, 문영대왕, 정간왕, 양헌왕같은 제후왕이 있었다.[2] 검교직은 작위처럼 하사하는 명예직으로 실권은 없다. 명예 태위와 시중이라는 뜻이며 후당의 관리로서 실무를 보는것은 아니다.[3] 사실 일반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군인들 특유의 총사령관직에 대한 집착인데, 그 노태우도 사실은 대통령보다 육군참모총장을 간절히 원했지만 노태우의 정치력이 필요한 전두환이 그걸 들어주지 않고 중장 계급에서 예편시켜버렸다. 견훤은 불과 20대 후반에 원스타인 '비장'이 되었을 때부터 5두품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올라 경이적인 성취를 이룬 상태였는데도 이미 그 시점부터 내심 '도통'을 평생 꿈꾸었던 것이다. 일찍부터 스스로의 능력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 것인데, 평생 이룬 성과만 보면 그 평가가 딱히 틀리지도 않았음이 더 대단하다. 보통 사람이 이랬으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욕먹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