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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06 08:11:10

도독

1. 개요2. 한국사3. 중국사4. 일본사5. 베트남사6. 관련 항목

1. 개요



한자문화권에서 규모의 중소급 지역을 다스리는 군 지휘권이 있는 지방관을 말한다. 중소국가급의 크기의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보다는 낮은 취급을 받았다.

서양사의 유사한 개념의 관직을 급에 맞추어 총독 혹은 도독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영어에서는 총독을 Governor-general, 도독을 Governor로 부른다.(보통은 지사(관직)로 번역되는 단어다.) 스페인어에서 도독에 해당하는 말은 Capitán general(captain general), 포르투갈어에서는 Capitão mor(captain major)이다. 그리고 이 관직자가 군무-정무를 하는 군정청 관부를 도독부라고 한다. 스페인 제국에서 스페인어로는 Capitanía general로 부르며, 이걸 영어번역하면 Captaincy General이다.

나무위키에서는 스페인의 필리핀, 쿠바 식민통치기구를 필리핀 도독령, 쿠바 도독령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지만 영어 원어가 Governor인 지브롤터나 구 영국령 홍콩 등 영국 속령의 수장은 원어가 Governor-General인 영연방 왕국의 국왕의 대리인과 구분 없이 '총독'으로 번역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영국령 홍콩 총독이라고 번역한 그 동안의 관례가 있는데 이제 와서 홍콩 도독으로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한국사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골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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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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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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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관직. 신라 조정에서 전국으로 파견되어 9주를 다스리는 지방관이다. 고려 북계동계병마사, 조선시대의 관찰사, 대한민국도지사+야전군사령관급에 대응한다.

상대(上代)에는 군주(軍主)였고, 실직주 군주 이사부나 신주 군주 김무력, 압량주 군주 김유신 등이 나타난다. 661년(문무왕 1년)에 총관(總官)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785년(원성왕 1년)에 도독으로 명칭을 바꿨다. 단 원성왕 이전부터 도독 명칭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미 문무왕 때 9주 장관은 도독이고, 총관은 임시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원래 군주는 군권을 통솔하는 군사적 성격이 강했지만 삼국통일 이후 전쟁이 사라지면서 도독은 군사적 성격은 줄어들고 현대도지사처럼 단순한 행정 관리로 변화한다. 중앙에서 임명해 파견하는 임기제 공무원과 같았고 김헌창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특별히 거기에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고 무진주 도독, 청주(菁州) 도독, 웅천주 도독으로 돌아가며 부임하다가 웅천주 도독일 때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신라 말 후삼국시대가 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그 당시 재임하고 있던 몇몇 지역의 도독들은 자신의 근무지에서 성주(城主), 장군이라 자칭하고 호족, 군벌화되기도 했다.[1]

3. 중국사

삼국시대 이래 설치된 군정권, 군령권 관직. 본래 위문제목(牧)을 대신하여 각 주()의 군사와 자사(刺史)의 관원을 통활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으로 원래 시작은 군 사령관이었지만 이후 지방 행정까지 다스리는 군정 관직이 된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한 관명이 아니라 산관(散官)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가 도독의 전성기인데 자사를 겸직[2]하고 지절[3]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계속 터지는데, 황제의 허가를 받아서 움직이기엔 시간상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현장 사령관인 도독에게 전권을 몰아줬던 시대이다. 위진남북조 때에는 장군은 군계급이고 도독은 보직이었기에 도독은 장군을 겸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북벌을 막기 위해 대장군으로서 사지절을 갖고 옹주도독, 양주도독을 겸했다. 수나라 때에는 도독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나라 초기에는 존재했으나 중기부터 절도사로 대체되었다. 송나라 때에는 전쟁기간에만 총사령관에게 부여되는 시한부 직책이었고 행정권도 즉결처형권도 없었다. 원나라 때에는 군사행정을 담당하던 직위로서 군지휘권이 없었다. 명나라 때에도 지휘권없이 군사행정을 담당하던 직위였는데 명말에는 명예직으로 바뀌었다. 청나라에서는 명예직으로 존재했다. 중국 바깥 대한민국, 일본, 베트남 등 이민족의 국왕에게도 형식상의 도독 칭호를 내리기도 했다. 청말 중화민국 군벌 시대성(省)의 군정 장관으로 부활하였다가 중화민국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최종적으로 사라진다.

4. 일본사

다자이후를 중국명으로 도독부라 불렀다. 일본 제국에서 러일전쟁 승전 후 남만주관동도독부를 설치했다. 조선을 식민통치하면서 통감부를 조선도독부로 개편하려다가 확대 개편한 통치기구가 조선총독부.

5. 베트남사

옛 베트남에서 무관직으로써 현대 베트남군에서 해군 장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6. 관련 항목



[1] 이는 후삼국 호족 중 일부 유형이다. 장교 출신 견훤, 산적세력 출신 양길궁예, 대대로 지역 토착세력이던 왕건가문 등 다른 케이스도 많다.[2] 도독의 군량요청을 자사가 거부하면 패전할 수 밖에 없었기에 황제는 도독에게 자사까지 겸직시켰다[3] 즉결처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