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라의 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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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 관등명 | ||||||||
장관 | 9주 | 5소경 | 차관 | 군 | 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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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찬(薩飡), 사돌간(沙咄干), 사간(沙干,) 사척간(沙尺干)이라고도 한다.
일성 이사금 말년에 최초로 이 관등이 등장하는데, 급찬과 같이 사로 6부 중 하나인 사량부(沙梁部)와 음운상 공통이 보이기에 그와 연관이 있지 않나 추정되기도 한다.[1]
삼국통일 이후 고구려의 귀족을 신라에 받아들이며 대응하는 신분 등급을 설정할 때 고구려 후기 기준 제4관등인 대상(大相)을 사찬으로 취급해 적용했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856년(문성왕 18)에 만들어진 「규흥사종명(窺興寺鐘銘)」에 3중사간(三重沙干)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을 보아 아찬(4중아찬), 대나마(9중대나마), 나마(7중나마)처럼 중위제가 적용된 관등 중 하나로 보인다. 아찬과 대나마가 6두품과 5두품의 진급 상한선이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진인 반면 사찬은 삼국통일 후 지방민에 대한 특진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2] 신라가 삼국통일전쟁 당시부터 몇 차례 단행된 문무관 전원에 대한 1관등 승진조처와 관련되었다고 여겨지는데, 관작 1급 특진은 661년(문무왕 1) 9월과 668년 10월 22일에 각각 백제와 고구려 정복 달성을 기념한 논공행상으로 있었고, 또 702년(성덕왕 1) 9월과 785년(원성왕 1) 2월에도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후고구려의 궁예에게 귀부하기 전에 신라 송악군을 다스리는 성주로서 사찬 관등을 받았다.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 師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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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삼국시대 위나라 말과 서진의 인물 謝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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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 4chan을 한국어로 읽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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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5. 뮤지컬 사의 찬미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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