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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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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신라 초기 6촌2.2. 신라시대2.3. 고려 이후

1. 개요

新羅 六部

신라 6부. 신라 건국을 주도한 양부, 사량부, 점량부, 본피부, 한기부, 습비부의 6부족 세력을 말한다.

사로 6촌(斯盧六村)이라고도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로 6촌은 신라 6부의 전신이다.

6부의 이름은 기록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2. 역사

2.1. 신라 초기 6촌

그 시작은 신라 건국 이전에, 멸망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모여서 6개의 마을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 6촌의 촌장들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해 신라가 시작되었고 6촌은 6부가 되어 신라 사회의 귀족계층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사로 6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A. 알천양산촌 → 6부 중 급량부 혹은 양부, 탁부
경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경주 일원으로 보는 견해에서 경주시내, 월성(月城)부근, 경주 남쪽, 남산(南山) 서북쪽 등으로 약간 차이가 있다.

B. 돌산고허촌 → 6부 중 사량부 혹은 사탁부
경상북도 일원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대체로 상주로 보고, 경주 일원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남천(南川)의 서쪽이나, 서악동 일대로 보고 있다.

C. 무산대수촌 → 6부 중 점량부 혹은 잠탁
경상북도 일원으로 보는 경우, 제천과 예천, 또는 의성과 제천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경주 일원으로 보는 경우, 모량리나 건천 일대로 파악한다.

D. 취산진지촌 → 6부 중 본피부
경상북도 일원으로 보는 경우, 성주 또는 영해, 울진으로 보고, 경주 일대로 보는 견해에서는 인왕리, 또는 조양동, 또는 월성과 황룡사 부근으로 보기도 한다.

E. 금산가리촌 → 6부 중 한기부
경상북도 일원으로 보는 경우, 김천·성주로 보거나, 개령·성주로 보고, 경주 일대로 보는 견해에서는 소금강산 또는 명활산(明活山) 부근, 천북면 일대 등으로 본다.

F. 명활산 고야촌 → 6부 중 습비부
경상북도 일원으로 보는 경우, 경주·영천 지역이나, 경산·영천 지역으로 보고, 경주 일대로 보는 경우, 명활산이나, 보문리 일대, 또는 황성리 일대로 보기도 한다.

이를 지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파일:경주 사로6촌.png

파일:경북 사로6촌.png

2.2. 신라시대

신라 초기에는 자치권을 가지면서 왕과 함께 국가를 운영했다. 서라벌 중앙인들은 'x부의 누구'라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갑진년(524년) 정월 15일에 탁부(喙部)의 모즉지 매금왕(牟卽智寐錦王), 사탁부(沙喙部)의 사부지 갈문왕(徙夫智葛文王), 본파부(本波部)의 무부지(巫夫智) ▨[1]간지(▨干支), 잠탁부(岑喙部)의 미흔지(美昕智) 간지, 사탁부의 이점지(而粘[2]智) 태아간지(太阿干支), 길선지(吉先智) 아간지(阿干支), 일독부지(一毒夫智) 일길간지(一吉干支), 탁부의 물력지(勿力智) 일길간지(一吉干支)[3], 신육지(愼肉智) 거벌간지(居伐干支), 일부지(一夫智) 태나마(太奈麻), 일이지(一尒智) 태나마, 모심지(牟心智) 나마(奈麻), 사탁부의 십사지(十斯智) 나마, 실이지(悉尒智) 나마 등이 교시하신 일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그러다 소지 마립간 때를 시작으로 점차 자치권은 희미해지고 서라벌의 일부분이라는 행정적 성격의 6부로 개편돼 수도 금성의 행정구역으로 바뀌었다.

다만 신라 6부의 실재성에 대해선 여러 논란이 있다. 사로국 문서 참고.

2.3. 고려 이후

신라 말에 이르면 이미 행정구역의 개념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초기까지는 940년 왕건의 명령으로 이름만 바뀌고 한동안 이어졌다.

[1] 최광식은 잡(迊)으로 판독하였다. 잡찬(迊湌, 잡간지)는 신라의 17관등 중 3등의 관직이었다. 한편 이것이 한 글자(▨)가 아니라 두 글자(▨▨)라고 판독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이렇다면 순서로 볼 때 제4등인 피진간지(佊珎干支, 파진찬)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2] 이 글자도 이견이 많다. 拈이나 𢲸으로 판독하기도 하고, 아예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보기도 한다.[3] 거칠부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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