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조사를 통해 먼저 발견된 임당 1호분 금귀걸이 중 하나의 모습.사진 출처 : 압독국 지배자 1,500년 잠 깨다...경산 무덤 확인
이후 2015년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었다가 환수된 임당 1호분 금귀걸이.사진 출처 : 경북매일 - 경산 임당동 고분 등 도굴 7명 검거, 사진 출처 : 경북일보 - 대구·경북 고분관리 구멍 숭숭
1. 개요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임당동 고분군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임당 1호분에서 발견한 4세기~5세기 경 신라시대의 금귀걸이 10여점.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등 다양한 곳에 분산 소장되어 있다.2. 내용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에 위치한 임당동 고분군 내의 제1호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유물로, 제작 시기는 4세기~5세기(서기 300~400년대)로 확인되었다.
임당동 고분군은 3만 5,517㎡의 대지 면적에 걸쳐 고신라의 암반굴착덧널무덤·독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경산 부적리(夫迪里) 고분군, 경산 조영동(造永洞) 고분군과 이어져 있다. 본래 대한민국의 사적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인접한 조영동 고분군과 통합되어 새로이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원래는 자금적으로 열악한 한국 고고학 사정에 의해 학술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던 곳이었으나, 1982년 2월 임당동 2호분이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 및 장신구·은제허리띠·곱은옥(曲玉)·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당국에 적발되면서 대중들에게 임당동 고분군의 중요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임당동 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후 압량 7A호분에서 경산 임당동 금동관이 출토되는 등 총 2,0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을 출토하였다.
대구 내당동 금귀걸이, 대구 비산동 금귀걸이, 의성 탑리 금귀걸이와 함께 전시된 모습.사진 출처 : 국립대구박물관 공식 블로그 - 대구 내당동, 경산 임당동, 대구 비산동, 의성 탑리 금귀걸이
임당동 1호분의 경우 원래는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0여점의 금귀걸이를 포함한 다양한 유물들을 발굴했었는데, 이 3개월간의 발굴을 끝으로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고 고분을 그대로 방치해버렸다. 결국 위의 뉴스 영상에서 나오듯이 2015년 경, 기존에 미쳐 확인 못했던 유물들을 도굴꾼들이 지속적으로 털어 일본으로 밀반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2년에 맨 처음 국가적인 발굴을 시작했던 것도 도굴꾼들에 의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황.
경찰이 급히 도굴꾼들이 아직 팔지 못한 금귀걸이, 칼, 허리띠 등 7건 38점을 긴급 회수하였으나 영상에 나온 바와 같이 그나마 남아 회수된 이 유물들도 파손상태가 심하다. 경찰은 심문을 통해 이 도굴꾼들이 임당동 1호 고분 외에도 부적리 4호 고분 등 다양한 고분을 도굴하여 수많은 유물들을 일본에 반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 소재를 확인하고 있다. 도굴꾼의 증언에 의하면 임당1호분에서 더 많은 신라시대 금귀걸이들을 상당수 찾아내어 불법 반출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600~1,700여년 전 경산 지역의 신라인들이 사용하던 황금 위세품들로, 당시 경북 경산 지역의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