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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고기룡(高基龍) |
생몰 | 1878년 9월 5일 ~ 1947년 12월 29일 |
출생지 | 경상도 울산도호부 온남면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
사망지 | 경상남도 울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2. 생애
그는 1919년 4월 4일과 5일에 걸쳐 울산 병영에서 독립만세시위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청년들을 모아 온양면 남창리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거행할 것을 결의했다. 이윽고 4월 8일 남창리 장날에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이른 아침에 장터로 가서 거사를 준비했고, 거사 시각인 오후 4시가 되자 동지들과 함께 장터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눠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에 장터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군중이 호응하면서 남창리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이에 일제 경찰은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 인물들을 체포했다. 하지만 고기룡 등은 경찰의 포위망을 피하고 커다란 광목지에 '대한독립만세'라 쓴 깃발을 앞세워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울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7년 12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고기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