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고순진(高舜鎭) |
이명 | 고낙진(高洛鎭) |
자 / 호 | 의경(義卿) / 만취(晩翠) |
본관 | 제주 고씨[1] |
생몰 | 1863년 4월 15일 ~ 1938년 6월 15일 |
출생지 | 전라도 흥덕현 일남면 송암리 (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
사망지 | 전라북도 고창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고예진은 그의 동생이다.2. 생애
고순진은 1863년 4월 15일 전라도 흥덕현 일남면 송암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에서 고시청(高時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고여흥(高汝興)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최익현의 문인이며, 외부주사(外部主事) 및 1902년 8월 혜민원주사(惠民院主事)#에 임용되기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생 고예진에게 격문 2백 매를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게 했으며, 최익현 의병장의 부대에 조총을 제공하고 군자금을 내기도 했다. 1919년 3월에는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한국유림들의 파리장서(巴里長書) 서명운동에 참여해 유림대표 137명 중 한 사람으로서 서명했다. 이후 고창군에 은거하였으며, 사재를 덜어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加平里)에 스승 최익현의 덕을 추모하는 도동사(道東祀)를 세우기도 했다. 1938년 6월 15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고순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장흥백파 19세 진(鎭)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