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孫隰朋
? ~ 기원전 644년
1. 개요
제환공(齊桓公) 대의 명신. 관중(管仲), 포숙과 더불어 제나라의 내치를 담당했고, 진(秦)나라의 군주인 진목공과 함께 진(晉)나라의 공자 이오(夷吾)를 세우니 그가 바로 진혜공(晉惠公)이다. 관중이 죽으면서 그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관중의 말대로 습붕도 곧 죽었고 포숙이 후임이 되었다. 제장공의 증손이라고 한다. 흔히 습붕으로 알려져 있다.2. 생애
관중의 추천을 받아 제환공에게 등용된다.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환공의 패업을 도왔다.한비자 설림상에 의하면, 그는 제환공, 관중과 함께 고죽국을 칠 때 종군해 대군이 산중에서 마실 물이 바닥났다. 그리하여 곤란한 처지에 빠졌는데, 습붕은 개미굴에 물이 있으니 개미굴을 찾게 했고 과연 개미굴에 수원지를 발견해 갈증을 해소했다고 한다.[1]
제환공 35년(기원전 651년), 진헌공(晉獻公)이 죽은 후 이극(里克)이 해제와 탁자를 죽이자 제환공의 명으로 진목공과 함께 진혜공을 세웠다.
제환공 39년(기원전 645년), 관중이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제환공 40년(기원전 644년), 습붕은 관중의 뒤를 따르듯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