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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02 23:05:22

진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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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의 15대 군주 진혜공(秦惠公)에 대한 내용은 진혜공(영성)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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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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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
말대

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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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80> 진(晉)나라 22대 국군
혜공
惠公
희(姬)
진(晉)
이오(夷吾)
아버지 진헌공(晉獻公) 궤제(詭諸)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37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50년 ~ 기원전 637년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즉위에 이은 배신2.3. 한원 전투와 사망
3. 평가

[clearfix]

1. 개요

진(晉)의 22대 군주. 진헌공의 아들. 진문공의 이복동생. 수습하기 위해 진목공의 도움으로 진나라의 국군이 되었지만 진(秦)에게 한 약속을 어겨 자주 다투었다.[1]

2. 생애

2.1. 즉위 이전

진 헌공은 애첩인 여희의 미모에 반해 그 사이에서 해제를 낳고 그를 태자로 삼기 위해 태자 신생과 공자 중이, 그리고 이 문서의 주인공 공자 이오를 도성에서 내보냈다. 신생은 곡옥, 중이는 포(浦), 이오는 굴(屈)로 파견된다.

진 헌공 21년(기원전 655년), 여희의 계략에 넘어간 진헌공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의심하여 태자 신생을 자결케 했다. 그리고 2년 뒤 여희는 중이와 이오를 두려워하여 공자 중이와 공자 이오 또한 신생의 암살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모함한다. 중이는 적(狄)나라로 도망가고 이오는 항전하려 했으나 형세가 이롭지 못해 양(梁)나라로 달아난다. 중이가 달아난 적나라가 아니라 양나라로 달아난 이유는 진과 양이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중이와 같이 적나라 땅으로 달아났다가 암살 혐의가 사실이라는 혐의가 짙어질 것을 우려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오는 양나라 군주의 딸과 결혼해 훗날 진회공이 되는 어(圉)[2]와 딸 하나[3]를 낳았다.

한편 진나라에서는 헌공이 죽고 해제가 뒤를 이었으나 신하 이극(里克)에게 살해당하고 뒤이어 여희와 순식이 옹립한 탁자도 이극에게 살해당한다. 이극과 진목공은 혼란에 빠진 진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오를 불러들여 진나라의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진혜공이다. 이 과정에서 이오는 진목공에게 자신이 진나라의 군주가 되면 진나라가 황하 서쪽에 갖고 있는 성 5개를 준다고 약속했다.[4]

2.2. 즉위에 이은 배신

진혜공 원년(기원전 650년), 비정을 진(秦)나라에 보내 하서의 다섯 성을 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즉위시키는 데 기여한 공신인 이극에게 줄 분수 이북 땅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빼앗는 개막장 짓을 했다. 당연히 공신들에게도 상을 일체 주지 않았다.

같은 해 4월 주양왕이 주공 기보와 왕자 당을 사신으로 보내 제의 대부 습붕, 진의 대부와 함께 이오를 진나라 군주로 승인했다. 그리고 기예[5]의 말을 듣고 공신인 이극을 죽여버렸는데, 《사기》에 의하면 외국에 나간 공자 중이와 내응할까 두려워서라고 했다. 《춘추좌씨전》에는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애매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두예[6]가 주석에서 찬탈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7] 양백준은 임금을 시해한 악인을 죽인 것이라고 알기 쉽게 주석을 달았다. 그러나 죽인 뒤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형인 신생의 묘소를 개장했다. 한편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간 비정은 여생, 극칭, 기예 셋이 진(秦)나라에 선물을 주지 않게 하므로 이들을 유인해 진혜공을 몰아내고 중이를 진(晉)나라 군주로 옹립할 것을 제안했다. 진 목공이 거기에 따르자 여생, 극칭, 기예는 비정의 파당을 몰살했다. 사마천의 평에 의하면 그것 때문에 진혜공은 민심을 잃었다고 한다.

진혜공 4년(기원전 647년), 진혜공이 진 목공에게 곡식을 팔라고 해서 진 목공이 승낙했다.

진혜공 5년(기원전 646년), 진 목공의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자 진혜공은 대부 괵사의 말을 듣고 구원 요청을 쿨하게 거절해버렸다. 그 이유가 가관인 게 선물 안 준 김에 쿨하게 주지 말자고... 거기다가 괵사의 말이 더욱 가관인 게, 오히려 진 목공의 진나라를 치자고 했다. 경정이 반대했으나 진혜공은 그 조언을 듣지 않았다.

2.3. 한원 전투와 사망

진혜공 6년(기원전 645년) 봄, 진(秦)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3번 연속으로 지고 한원으로 후퇴했다. 결국 진혜공은 가복도를 거우로, 보양을 어융으로 삼고 정나라에서 온 말안 소사로 끌게 한다. 경정은 소사가 실전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진혜공은 그 조언을 무시한다.

같은 해 9월, 한간[8]에게 진나라를 정탐하게 한다. 한간은 진(秦)의 병사 수는 적으나 사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힘들 것이라 보고했지만 진혜공은 그 말을 무시하고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경정의 예상대로 경험이 없던 소사가 놀라는 바람에 위험에 빠진다. 그러자 그는 경정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경정은 직접 구하지 않고 진목공을 쫓던 양유미, 한간, 괵사 등에게 군주를 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혜공은 결국 포로로 잡히고 거의 잡을 뻔했던 진목공을 사로잡는데는 실패하고 한원의 전투는 진(晉)의 대패로 마무리된다. 진목공은 진혜공을 풀어주는 대신 태자 어를 인질로 요구했다. 그리고 하외의 5성을 챙겼다.

진혜공 13년(기원전 638년), 혜공이 병이 들자 뒤를 잇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태자가 몰래 돌아왔다.

진혜공 14년(기원전 637년), 진혜공이 죽었다. 태자 어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진회공이다.

3. 평가

진목공의 원조를 받아 즉위해 5개 성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주지 않았으며, 진(晉)에 흉년이 들었을 때 진목공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진(秦)에 흉년이 들었을 때는 원조를 거부하고 역으로 공격하려 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 그 업보 때문인지 자신이 포로가 되는 굴욕을 당했고 태자를 인질로 보내는 굴욕적인 강화를 해야만 했다.


[1] 진혜공은 머리는 좋은 편이었지만 너무 신의가 없고 욕심만 많아서 진나라의 많은 국인들은 이오보다 그 형인 중이를 더 선호했다.[2] 양백에게 점을 치게 하니 신하가 된다하여 그리 지었다.[3] 딸의 이름은 '첩'이다. 역시 양백에게 점을 치게하니 첩이 된다고 나와서 그리 지었다.[4] 원래는 중이를 군주로 세우려 했으나 호언의 조언을 들은 중이가 거절했다.[5] 원래는 극씨로 기 땅을 식읍으로 받았기에 기예라고 부른다. 극결의 아버지이다.[6]삼국지》에 나오는 그 두예 맞다.[7] 이극이 해제와 탁자를 죽인 바탕 위에 즉위한 것을 지적한 것.[8] 한궐의 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