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9-27 02:58:21

진정공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진(晉)나라의 마지막 군주 진정공(晉靜公)에 대한 내용은 진정공(40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진(晉) 전서체.png
진(晉) 국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익 翊
초대

당숙 우
제2대

진후 섭
제3대

무후
제4대

성후
제5대

여후
제6대

정후
제7대

희후
제8대

헌후
제9대

목후
제10대

상숙
제11대

문후
제12대

소후
제13대

효후
제14대

악후
제15대

애후
제16대

소자
제17대

진후 민
익/곡옥 분열
곡옥1대

환숙
곡옥2대

장백
곡옥 曲沃
제18대

무공
제19대

헌공
제20대

해제
제21대

탁자
제22대

혜공
제23대

회공
제24대

문공
제25대

양공
제26대

영공
제27대

성공
제28대

경공
제29대

여공
제30대

도공
제31대

장평공
제32대

소공
제33대

경공
제34대

정공
제35대

출공
제36대

애공
제37대

유공
제38대

열공
삼진분립
제39대

환공
40대

정공
}}}}}}}}}}}}}}}

진(晉)나라 34대 국군
정공
定公
희(姬)
진(晉)
오(午)
아버지 진경공(晉頃公) 희기질(姬棄疾)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47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11년 ~ 기원전 475년

1. 소개2. 생애

[clearfix]

1. 소개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제34대 군주. 진 경공의 아들.

2. 생애

진 경공 14년(기원전 512년), 진 정공은 아버지 진 경공이 죽자 진나라의 군주 자리를 이었다.

진 정공 12년(기원전 500년), 진(晉)의 경인 조간자 조앙(趙簡子 趙鞅)은 가신 동안(董安)으로 하여금 태원(太原) 땅에 성을 쌓게 했고, 완성되자 진양이라 이름붙였는데 대단히 견고하였다. 이후 이 진양성은 조씨 일가의 근거지가 되었다.

진 정공 15년(기원전 497년), 조앙은 진의 정경이 되었는데, 동족인 조오를 감금했다가 살해했다.[1]

진 정공 19년(기원전 493년), 갈등 끝에 조앙은 병사를 거느리고 범씨(范氏)[2]와 일전을 벌였다. 범씨, 그리고 범씨와 같은 편인 중항씨는 정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조앙은 전투 직전 이렇게 연설을 했다.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상대부는 현을, 하대부는 군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3] 선비들은 10만전으로 사례하고, 평민들은 상공업으로 이득을 보게 해줄 것이며, 노비들은 면천시키겠다."[4]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조씨가 전투에서 이겼고, 패배한 범씨와 중항씨는 제나라로 도망갔다.[5]

진 정공 30년(기원전 482년), 진 정공은 오왕 부차(吳王 夫差)와 위(衛)나라 황지에서 회맹하며 패자 자리를 다투었다.

부차가 말했다.
"주나라 왕실 혈통으로 보면 내가 위다."[6]

이에 진 정공이 대꾸했다.
"희성을 쓰는 이들 중에서 내가 최고다."[7]

결과적으로 당시 한참 기세를 높여 가던 부차가 회맹의 맹주로 추대되지만, 부차의 신하였던 월나라 군주 구천이 난을 일으켜 오 본국을 공격하는 바람에 부차는 군사들을 이끌고 급히 귀환했다. 그러나 이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월군에게 연전연패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궁지에 몰려 자결하고 만다.

진 정공 37년(기원전 475년), 진 정공이 사망하였다.


[1] 조오는 조앙의 친척으로 한단을 다스렸는데 조앙이 조오에게 위(衛)나라가 나한테 준 500호를 진양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조오는 실행하려 했으나 주변에서 '위나라가 우리를 비호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긴 500호 때문인데 함부로 옮기면 더이상 우리를 비호하지 않을 거다. 차라리 제나라를 공격해서 제나라 군이 반격하면 이를 핑계로 안전한 진양으로 옮기겠다 하자'라고 조언하자 그 조언대로 하려 했다. 하지만 조오가 명령을 따르지 않아 화난 조앙은 조오를 잡아 죽였고, 조오와 사이가 가깝던 중항씨와 범씨가 조씨를 공격했다.[2] 구 사씨(士氏).[3] 군현제의 이치로 보면 상급 행정 구역인 군이 커야 맞지만, 춘추시대에는 군이 현보다 작았다.[4] 천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일개 정경이 해주겠다고 말한 것은 점차 주나라의 예법이 무시되었던 전국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5] 그 당시 6경으로는 중항씨, 범씨, 조씨, 위씨, 한씨, 지씨 가문이 있었고, 각 가문의 당주가 경의 자리를 맡았는데, 순씨의 종주 순인과 범씨의 종주 범길사가 조앙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망명함으로써 4경으로 줄었다. 그리고 이 4경은 나중에 지씨가 한씨, 위씨를 데리고 조씨를 공격하다 오히려 조씨 ,위씨 ,한씨의 협공을 받아 몰락하여 세 가문만 남게 되었고 이는 전국시대의 삼진으로 이어진다.[6] 주나라의 시조는 주문왕 희창이고 그의 아버지는 계력인데 오나라는 계력의 큰 형인 태백이 세우고, 작은 형 중옹이 뒤를 이은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진나라의 초대 군주인 당숙 우는 계력의 증손이었다.[7] 왕을 자처하고 있지만 기실 부차는 자작에 불과했던 데 반해 진 정공은 후작이었다. 게다가 진나라는 이미 오래도록 패권을 쥐고 있었으니.... 희성 중 제일이면 자기가 주나라 천자보다 높다는 건가. 그래봐야 자기도 신하들 눈치나 보는 입장이면서. 그리고 사실 진나라의 작위가 높은건 맞는데 그렇다고 독보적으로 높은건 아니라서 노나라, 위나라, 채나라 등도 높긴 했다. 다들 오나라나 진나라에 못미치는 약소국이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