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의 침입에 손도 발도 못쓰게 된 송나라에 난관을 풀어주겠다며 나선 사기꾼으로, 송휘종과 송흠종이 곽경을 믿고 수비를 맡길 정도로 송나라의 군사 사정이 매우 형편없었다.
당시 곽경은 육갑법(六甲法)에 정통한 인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육갑법으로 생년월일이 간지에 맞는 사람 7777명을 뽑아 육갑신병이라 칭하고는 정말 육갑을 떨고있다. 길일을 택해 전투를 치러야 한다며 적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그리고 신병 이외의 병사는 모두 후퇴시키고, 적이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신병들과 함께 성문을 활짝 열고는 금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군사 훈련도 제대로 안 된 병사들을 이끌고 싸웠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당연히 대규모 양민 학살을 당하며 변경이 함락되었고, 곧 수도 개봉도 함락된다.
1127년 4월 5일에 개봉에서 달아난 곽경은 살두성병이라 칭하며 거짓으로 무리를 환술로 미혹해 양양으로 갔다. 무리 천여 명이 있어서 동산사에서 종실을 찾아 황제로 세우려 했는데, 전개, 왕양, 장사정 등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개봉에서 온 사람이 곽경이 조정을 기만한 일을 말하자 장사정 등이 그를 가두고 찔러죽였다.
하지만 완안누실신도비라는 비석 및 금사에서는 오히려 곽경의 부대가 용맹하게 싸워서 완안누실이 일시적으로 정면승부를 피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육갑법을 운운한 것이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라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으로, 육갑신병도 사실은 일종의 결사대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난리통에 달아났다가 양양에서 살해당했지만, 민간에서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탓에 수호전의 후속작인 수호후전(진침 作)에서 대놓고 전투력 측정기로 등장한다. 일단 임진인의 제자로 도사이지만[1], 시작부터 번서에게 두 번이나 당하고[2], 복병에 걸려서 거지꼴이 되고, 귀신을 잡는답시고 겁도 없이 덤비다가 되려 귀신에게 홀려서 사람들을 공격하고[3] 아이들이나 여자들[4]에게 말빨로 당했다. 상술한 육갑신병으로 금군과 싸우려고 했으나 겁을 먹어서 도망쳤다. 그러다 금군에게 슬쩍 투항해서 운성현 지현 자리를 얻었지만, 송청을 구출하려고 온 양산박 군에게 털리고 증세웅을 낚으려는 미끼로 쓰이다가 결국 번서에게 처형당한다.(증세웅은 서성, 호연옥에게 처형.)
김부식이 묘청의 서경천도를 반대한 것에 관련된 역사스페셜 다큐에서도 꽤 중요하게 언급되는 구절이다. 병자호란 당시 제2의 원균이나 다름없었던 김경징도 육갑병신이라 불린다.
[1] 도사인데도 도술을 대충 배워다고 한다. 여담으로 임진인에게 제자가 한명 더 있는데, 바로 고렴이다. 제자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2] 이 때 번서를 공손승으로 생각해 원수로 삼는다.[3] 오죽했으면 같이 도망간 병사 하나가 "당신 도사 맞아요?"라며 의심했을 정도였다.[4] 화봉춘, 화영의 여동생, 화영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