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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07:30:53

관노비의 난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시대 실패한 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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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1. 개요2. 상세
2.1. 의의

1. 개요

전주 관노비의 난 / 죽동의 난

1182년 전주에서 군사들과 관노들이 일으킨 난이다.

괸노들이 일으켰으나 당시 지방관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참여 하며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2. 상세

고려의 명종 12년, 전주의 지방관이었던 진대유(陳大有)는 자신은 강직하다고 백성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려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나라에서 배를 만들어 보내달라 요청했을때 진대유는 상호장(上戶長) 이택민(李澤民)과 함깨 백성들에게 일을 빨리 하라고 재촉하였다.

그러자 주현군의 우두머리중 죽동 외 6명이 관노에 큰 불만을 가져 봉기를 일으켰다. 죽동은 진대유를 산에 있는 절로 쫒아냈고, 이택민 등 지방관들의 집에 불을 질렀고 판관 고효승(高孝升)을 협박하여 지방관을 바꾸었다.

일이 생긴것을 알아차린 안찰사는 박유보(朴惟甫) 파견시켰는데 박유보가 진주에 오자 관노들은 잠시 군세들 가담듬고 박유보에게 진대유의 만행을 말하였다.

박유보는 진대유를 개경으로 압송하고 반란군에게 멈추라고 하였으나 관도들은 듣지 않아 군대를 동원 했지만 40일째 제압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노들의 내부분열이 생겨 관노들끼리 서로를 죽여 알아서 제압된 것이다. 그 이후 남아있는 관노들도 모두 처형되어 이 봉기는 끝나게 되었다.

2.1. 의의

이 난은 지방관과 주리의 횡포에 반발한 주현군, 관노, 승도, 농민들이 연합하여 봉기한 사건이었으며, 이로써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엉망인지 짐작 할 수 있다. 군대의 제압에도 40여 일이나 버틴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반란군의 규모가 매우 컸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