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실패한 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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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고의 난은 이고가 일으킨 난이다.2. 상세
이고 본인에게 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신들에 비해 심한 푸대접을 받고 있는 부분에 불만을 품어서[1] 1171년 1월 정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몰래 불량배 및 법운사의 승려 수혜, 개국사의 승려 현소 등과 교분을 맺고 밤낮으로 연회를 벌여 술을 마셨으며, 그들에게 큰일이 성공하면 높은 벼슬을 얻게 될 것이라 떠들어 댔다.거짓으로 제서를 꾸며 태자의 관례를 위해 태자궁인 여정궁에서 연회가 열리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이의방 제거를 시도했지만 이고의 사환이었던 교위 김대용의 아들을 통해 교위 김대용과 내시장군 채원이 함께 이의방에게 고변하면서 일이 틀어지게 되었다.
이고는 평소 이의방을 핍박했는데 이의방이 이들을 통해 계획을 알아채자 이의방은 채원 등과 함께 궁문 밖에서 기다렸고, 이후 이고는 궁궐로 들어오려고 할 때 이의방의 철퇴에 머리를 맞아 객사했다.
3. 이고 가족들의 최후
이의방의 명령을 받은 순검군에 의해 이고의 어머니와 일당들은 모두 처형되었으나 이고의 아버지만은 이고가 불량하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의절했기 때문에 처형되지는 않고, 대신 유배만 떠났다고 한다.[1] 일부에서는 특히나 이 불만이 이의방을 향해 있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정중부야 애초에 경력이나 직위로나 이고 본인이 결코 넘볼 수 없었던 반면에 이의방은 그래도 넘볼만한 위치였고, 본인 역시 같이 정변을 주도했지만 받는 취급이 이의방보다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