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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 간조 경성지점은 1926년에 구 간조 주식회사(하자마구미, 間組 株式會社, はざまぐみ、英称:Hazama Corporation) 경성지점 으로 활용되었던 근대건축물이다. 소재지는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42길 13[1]이다.2. 상세
용산은 일제강점기 철도관계 건설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녹도조(鹿島組)[2]를 비롯해 간조, 관동조 등 유수의 건설회사들이 위치했던 건축의 본산이었다. 이 중 간조(間租, 하자마구미)는 유수의 건설회사 가운데 하나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건설토목회사였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3년경 경부철도 공사를 위해 한반도로 진출해 도로와 철도, 군시설 등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인프라를 구축했던 건축회사였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한강인도교(한강대교의 전신)와 조선과 만주를 연결했던 압록강 철교 그리고 북한의 수풍댐도 간조에서 시공했다.≪간조 100년사≫에 따르면 간조는 1889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창립되어 1903년 경부철도공사를 위해 한반도로 진출하면서 1906년 용산출장소를 오늘날 한강대로 일대에 설치했다. 1914년 일본영업부와 조선영업부가 분리되었는데 이때 간조 조선영업부는 한강통(현 한강대로) 11번지로 옮겨와 목조 단층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1925년 을축년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고 이듬해 1926년 기존의 목조 건물을 철근콘크리트조 2층 건물로 개축하였는데 대표적인 건축회사답게 여느 건물과는 달리 외관을 고급스러운 타일로 치장했다. 그때 지은 건물이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 간조 조선영업부는 사세를 확장하며 간조 경성지점으로 이름을 고치게 된다. 신축 건물의 완공과 함께 간조 경성지점은 1927년 용산기지 내 제20사단경리부 건축기사를 발탁하며 건축부를 신설하는 등 조선과 만주의 거점 역할을 하며 수많은 건축과 토목공사를 시행했다. 물론 용산기지가 인근에 있어 군관계 건축도 많이 수주하게 되었다. 아래는 간조 경성지점 사옥이 들어선 이래 시공한 건축, 토목 목록 중 일부이다.
- 일본 주식회사 간조 주요 이력 (한반도 중심)
- [주요 이력]
- * 1889년 하자마다케마(間猛馬) 후쿠오카모지에서 토목건축하청업 하자마구미(間組)창립
- 1889년 규슈철도회사로부터 모지 기관차고 등 신설공사 첫 도급
- 1899년 관설 철도 가고시마선 공사 도급(관설 철도공사에 첫 진출)
- 1902년 시모노세키에 본점 개설
- 1903년 조선으로 사업 확장、조선 경성부에 영업소 설치
- 1905년 조선경성부 회동에 경성지점 개설, 경부선, 경의선 철도 공사 참여
- 1909년 만철안봉선개축, 압록강다리, 부산삭평등 아시아 유럽 연락철도 대공사 도급
- 1911년 경부선 한강교 공사 도급
- 1920년 조선 중대리 발전소 공사 도급(조선 최초 수력발전소)
- 1927년 조선지접에 건축부 설치, 조선 건축계 진출
- 1931년 조선 황해 수리 조합 1만정보 수리 공사 도급
- 1931년 대구사범학교 신축
- 1932년 용산공립중학교 교사 및 도서관 신축, 예성강 교량, 진남포 석탄선적부두 시공
- 1933년 경성제1공립고등여학교 증개축
- 1934년 마포공립보통학교 신축, 황해수리조합 제4공구 공사, 강원도립 강릉병원 신축
- 1935년 용산철도회관 신축, 한강인도교 교각 공사(1934년 한강인도교 해체)
- 1936년 다사도 축항공사, 강원도립 농사시험장 청사 개축, 부산 제1잔교호 선교 신축
- 1937년 압록강을 막는 동양 제일의 수풍발전소 건설 공사 도급
- 1937년 소래염전 축조공사
- 1938년 조선빌딩(반도호텔) 신축, 원산 석유정제공장 신축
- 1939년 만포선(조선과 만주를 연결), 만포역 청사 및 관사 신축, 압록강 교량 개축
- 1940년 수색 경성조차장 건설(미완공)
- 1943년 간몬터널 시모노세키구간 완성
- 1943년 북한 수풍댐 공사(1937~1943)
- ~1945년 이 외에 일제 말기 한반도 병참기지화 이후 34개소의 강제동원 현장을 건설 및 운영
- 1989년 창립 100주년 기념
- 1992년 'HAZAMA CORPORATION"으로 상호 변경.
- 2021년 자본금 17,006,123,275엔(2021年3月末日現在), 사원수 3,456인('21년4월1일 기준)
1945년 광복후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용산을 떠나면서 일본군의 용산기지 역사는 마무리되면서, 본 건물을 포함한 용산기지 일대를 접수한 미국은 이곳을 “캠프서빙고 (Camp Seobinggo)”라고 명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1948년) 되면서 미군은 한국에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495명만 남기고 철수했다. 이때 한국군과 국방부가 약1년 가까이 용산기지를 사용 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1950년)하자 용산기지는 북한군의 지휘소가 되었다가 다시 한국군이 차지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재 식자재 기업 (주)광일 (대표이사 조용걸, 이대무) 사옥으로 활용 중이다.
3. 건축물 이력
- 1926년~1945년 : 간조 주식회사(間組 株式會社) 경성지점 으로 활용
- 1945년~1948년 : 미군정에 의해 용산기지 부속건물로 활용
- 1948년~1950년 : 대한민국 국군에 일시 양도
- 1950년 경 : 북한군 지휘소로 활용
- 1951년~불명 : 소유주, 용도 불명
- 1966년 : (주)광일 모 기업 '광일화학공업사' 설립
- 불명~현재 : 식자재 기업 (주)광일 사옥으로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