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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0:37:14

자유당(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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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일본 제국 (1945년 이전)
2.1.1. 자유당(1881년)2.1.2. 국민자유당(国民自由党)2.1.3. 자유당(1890년)2.1.4. 동양자유당(東洋自由党)2.1.5. 자유당(1903년)
2.2. 쇼와 전후 (1945년 이후)2.3. 쇼와 이후

1. 개요

자유당(自由党; じゆうとう)이라는 정당명은 일본에 의원내각제가 시행된 이후로 7개나 있었으며, 당명 일부에 '자유'가 들어간 당까지 포함한다면 13개나 된다.

2. 목록

당명 일부에 '자유'가 들어간 정당도 표시하며, 단 한 번도 정당요건을 갖추지 못한 정치단체는 제외한다.

2.1. 일본 제국 (1945년 이전)

2.1.1. 자유당(1881년)

일본 최초의 근대 정당.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가 창당하였으며, 자유민권운동 급진파를 제어하지 못하여 당내 갈등으로 1884년에 해산했다.

2.1.2. 국민자유당(国民自由党)

대동구락부(大同倶楽部, 1889-1890)의 소수파가 1890년에 이탈하여 창당했다. 그러나 창당 직후 한 파벌 전체가 탈당해버리고 친정부 성향을 띠었다가 친정부 정당(吏党) 결집에 대한 노선 차이로 창당 7달 만인 1891년에 공중분해되었다.

2.1.3. 자유당(1890년)

1889년에 창설된 대동협화회(大同協和会)의 후신으로서, 오이 겐타로(大井憲太郎),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사이토 게이지(斉藤珪次) 등이 1890년 1월에 창당했다. 이후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합류하면서 당명을 입헌자유당(立憲自由党)으로 바꿨으나 1891년에 다시 자유당으로 환원했다. 1898년에 진보당(進歩党)과 합당하여 헌정당(憲政党)을 구성하면서 해산했다.

2.1.4. 동양자유당(東洋自由党)

자유당(1890년) 내에 호시 도루(星亨)와의 정쟁에서 패한 오이 겐타로(大井憲太郎)를 중심으로 1892년에 창당되었다. 대외강경 색채를 띠었으며, 1893년에 대일본협회(大日本協会)에 합류하는 식으로 해산했다.

2.1.5. 자유당(1903년)

1903년에 가쓰라 다로 당시 총리와의 협력에 반대한 입헌정우회(立憲政友会) 소속 제국의회 의원 20명이 창당했다. 1905년에 갑진구락부(甲辰倶楽部), 제국당(帝国党)과 함께 대동구락부(大同倶楽部, 1905-1910)를 결성하면서 해산했다.

2.2. 쇼와 전후 (1945년 이후)

파일:일본자유당(1945) 로고.png
* 일본자유당(1945년) - 1945년 11월에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고노 이치로(河野一郎), 아시다 히토시(芦田均),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등이 주축이 되어 창당하였다. 현재 일본의 여당인 자유민주당(일본)의 시조격인 정당이다. 보수주의 정당으로서 반(反)군국주의를 추구했으며, 1946년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제1당이 되어 하토야마 이치로가 총리로서 내각을 구성할 것이 확실시 되었으나,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공직추방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하토야마의 대타로 요시다 시게루가 총리에 취임한다. 그러나 1947년에 실시된 제2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사회당에 12석 차이로 패하여 제2당으로 밀려났으며[1] 1948년에 동지클럽(同志クラブ)과 함께 민주자유당(일본)을 결성하면서 해산되었다.
* 민주자유당(일본) - 1948년에 동지클럽(同志クラブ)과 일본자유당(1945년)이 연합하여 창당했다. 동년 10월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다시 총리로 취임하여 1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으나, 그래도 일본사회당에 밀려 여소야대 정국이었기 때문에 동년 12월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1949년 1월에 제2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은 466석 중 264석(57%)을 얻으며 압승했다. 이후 안정적으로 정권을 운용해 나가다가 1950년에 일본민주당(1947년)의 연립파와 합당하여 자유당(일본 1950년)을 결성하는 형태로 해산되었다.
* 자유당(일본 1950년) - 민주자유당(일본)일본민주당(1947년)의 연립파가 합쳐서 1950년에 결성한 정당. 요시다 자유당(吉田自由党)으로 부르기도 한다. 역대 일본의 자유당 중 가장 중요한 정당이다. 원내 다수당으로 출발했으나, 1951년에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내려진 공직추방령이 풀려 정계에 복귀하자 당은 요시다파와 하토야마파로 분열하였으며, 결국 1953년에 하토야마는 탈당하여 자신이 처음 창당한 정당과 이름이 같은 일본자유당(1953년)을 결성한다. 1954년에는 요시다가 퇴진하고 오가타 다케토라(緒方竹虎)가 총재로 선출되었으나 수반지명선거에서 하토야마에게 패하여 당세가 약화되었다. 결국 1955년에 일본민주당(1954년)[2]과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을 결성하는 형태로 해산되었다. 현재 일본의 여당인 자유민주당의 직접적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자유당(1953년) - 1953년의 '바카야로 해산' 이후 요시다 총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 하토야마 이치로와 히로카와 고젠(広川弘禅)이 위의 자유당(일본 1950년)에서 갈라져나와 창당한 정당. 하토야마 자유당(鳩山自由党)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토야마는 자신이 1945년에 처음 창당한 일본자유당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동년 4월에 실시된 제2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이후 하토야마를 포함한 대다수는 자유당(일본 1950년)으로 복귀했으나, 미키 부키치(三木武吉)와 고노 이치로(河野一郎)는 신당에 남아 요시다 타도를 외쳤다. 1954년 11월에 자유당(일본 1950년) 내 소수파와 시게미쓰 마모루가 총재로 있던 개진당(改進党) 의원들을 규합하여 일본민주당(1954년)을 결성하는 형태로 해산했다. 이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해 현재 일본 여당인 자유민주당이 된다.
* 자유민주당(일본) - 1950년에 창당된 자유당과 1954년 창당된 일본민주당을 규합하여 1955년에 창당되었다. 현재 원내 1당이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3. 쇼와 이후



[1] 따라서 일본사회당의 당수인 가타야마 데츠가 총리가 되었는데,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해 당황했다고 한다.[2] 하토야마가 탈당해서 만든 일본자유당(1953년)의 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