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6:23:46

권국빈


성명 권국빈(權國彬)
이명 권근파(權瑾波), 왕억(王億)
생몰 1901년 ~ 몰년 미상
출생지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면 구천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국빈은 1901년생이며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면 구천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 6월 6일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어수리에서 곽익호, 곽선호, 손재흥(孫再興)·김청풍(金淸風) 등과 함께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결성하고 독립청년단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부할 것
2.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조선인 경찰관리와 밀정을 살해할 것
3. 한국인으로서 요구되는 독립운동 자금의 제공을 거부 또는 독립운동자를 관(官)에 밀고한 자는 살해할 것
4. 한국 내의 독립운동 상황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할 것
5.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송부해온 독립운동 선동 인쇄물을 일반 한국인에게 배포하여 그 사상을 선전할 것

그는 독립청년단 교통원을 맡았고, 1920년 7월 임시정부로부터 우송되어 온 <독립신문> 4천매와 <신한청년> 40여 부를 비밀리에 지참하고 서울로 가서 정의도·이원직 등에게 교부하는 한편, 사리원 지역 민가에도 배포하여 일반 민중들로 하여금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1931년 11월 광동으로부터 상하이로 건너간 뒤 안창호를 만나 중국측과 논의한 대일전선통일동맹계획안(對日戰線統一同盟計劃案)을 협의·작성하여 항일투쟁 준비계획을 실행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권국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