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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08:52:17

권태규

파일:권태규.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910년 4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
(現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 402번지)[3]
사망 1957년 4월 7일[4] (향년 46세)
경상북도 봉화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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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재호(權載昊)는 권태규의 증조부 권재원(權載瑗, 1832 ~ 1908. 12. 25)의 사촌 동생으로, 권태규에게는 증조당숙할아버지가 된다. 독립유공자 이효정은 권태규의 외사촌동생이다.[5]

조선 명종병조판서를 지낸 권벌의 13대손이다.

2. 생애

1910년 4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 와단면 한수리(現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402번지)의 양반가에서 아버지 권중구(權重九, 1891 ~ 1940. 6. 4)와 어머니 청주 정씨(1890 ~ 1978. 11. 25)[6] 사이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정미업에 종사하다가[7] 상경했고, 1935년 6월부터 안승락이 경영하던 중앙의원(中央醫院)에서 의사 조수로 근무했다. 이때 안승락은 동대문 일대를 중심으로 '혁명적 노동조합 공장그룹'의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권태규는 안승락의 지도를 받으며 박인선(朴仁善) 등과 함께 참여했고, 주로 동지들 간의 연락 및 치료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1935년 9월 27일 이재유의 공산주의 운동에 연루되어 안승락이 검거되자 함께 체포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이후 1936년 2월 이병희(李丙禧)[8]의 소개로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 및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주도하던 김희성(金熙星)을 만나게 되었고, 연락원이 되어 김희성으로부터 박인선과 백윤혁(白潤赫)이 이용할 연락선을 의뢰받았다. 이에 그해 3월 김희성에게 먼저 박인선을 소개해주었고, 이병희와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의 후계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그해 9월부터는 박인선과 함께 반제국주의동맹의 기초 공작을 전개하기로 했다.
파일:권태규.png
파일:권태규2.png
(왼쪽·가운데) 1937년 3월 16일,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에서 촬영된 사진.
(오른쪽) 1937년 5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그러나 1936년 12월 경성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고, 경기도경찰부를 거쳐 1937년 5월 1일 이른 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구류를 살았다. 체포된 지 1년 반이나 지난 1938년 5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이른 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판결을 받았고, 이틀 후인 5월 23일 출옥하였다.

이후 고향인 봉화군에서 은거하다가 1957년 4월 7일 별세했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복야공파 침(斟)계 33세 태(泰) 항렬.[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상경·권재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3] 1937년 5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경기도 강화군(現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출생지로 기재돼 있다.[4] 안동권씨대동세보에는 4월 22일이 기일로 기재되어 있다.[5] 권태규의 아버지 권중구(權重九, 1891 ~ 1940. 6. 4)와 이효정의 어머니 권중숙(權重淑)은 남매지간이다.[6] 정약흠(鄭若欽)의 딸이다.[7] 당시 정미소 사장이라면 동네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유한 축에 속했다.#[8] 외사촌동생 이효정의 5촌 당고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