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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나빠질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견딜 만 해.
강두의 인생은 줄곧 그랬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정신을 차린 후, 강두의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견디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강두는 3개월이 넘는 혼수상태에서 기적처럼 깨어났다. 그리고도 꼬박 3년을, 다 부서진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고 재활 치료를 받느라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그동안 남편밖에 모르고 살았던 순하고 여린 엄마는 덜컥 집까지 팔아 식당을 시작한다. 그러나 식당은 사기로 두 달 만에 폐업을 하게 되고, 설상가상 엄마는 병까지 얻었다. 모자가 나란히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두 살 터울의 여동생 재영은 홀로 남겨져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매일 밤 강두의 병상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강두는 힘들고 위로 받아야 할 엄마가 왜 자꾸 미안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 미안해하라고,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점점 무너져가는 엄마를 보며 강두는 결심한다. 어떻게든 일어나리라, 엄마와 동생은 내가 보살피리라. 그러나 강두가 간신히 재활을 끝내고 스스로 서게 됐을 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쓰러졌다. 이미 척수 신경까지 전이된 암. 동글한 얼굴에 말갛게 웃던 엄마는 깡마르고 시커메진 얼굴로 병상에 눕게 된다. 내가 살릴 거야. 엄마는 내가 살릴 거야. 아버지처럼 눈앞에서 허망하게 보내지는 않겠노라- 강두는 다짐한다. 그러나 강두의 나이 고작 18세. 다리마저 불편한 강두는 그저 무기력하게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엄마 좀 보내줘. 아빠한테 갈래. 보내줘, 강두야.
쇳소리를 내며, 간절히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강두는 잊지 못한다. 얼마 후, 엄마는 강두의 바람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순식간에 불어난 빚만 남아버렸다. 스무 살, 한창 꿈을 위해 달려가야 할 나이에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강두. 비빌 부모도, 학력도,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강두는 수순처럼 뒷골목으로 스며든다. 저와는 다른 여동생 재영에게 더는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며 여관방을 전전한다. 그러다 문수를 만난다. 자신과 달리 일상을 지키며 슬픔과 싸우고 있는 문수가 강두는 못마땅하다. 입바른 소리나 하고, 저도 힘든 주제에 남부터 도우려고 하는 문수의 태도가 거슬린다. 그러다 궁금해진다. 멀쩡한 척 하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문수가 저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문수와 가까워지면서, 강두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문수 앞에서 제대로 한 번, 멋진 놈이 되고 싶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무섭다.
사고 이전, 강두의 삶은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다. 손 귀한 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촉망받는 축구 선수였다. 뚜렷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억울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엿같이 됐지-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나도 서주원처럼, 조금은 멋진 놈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문수에게 좀 더 당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다.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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