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金清佳[1]/白清佳[2]못 미더운 악녀입니다만 ~추궁접서 교체전~의 등장인물. 나이는 1~8권 기준 17세. 영요명 20세, 황영림 16세, 주혜월 17세, 남방춘 13세, 현가취 19세로 요명보다 3살 연하, 영림보다 1살 연상, 혜월과 동갑, 가취보다 2살 연하다.
서부에서 영(詠)나라의 예술과 상업을 관장하는 금(金)씨 가문의 영애로 황태자 요명(尭明)의 추녀로 선임되었다. 현 황제의 숙비(淑妃)인 여아(麗雅)의 이복 언니 청추(清秋)의 딸이기도 하지만 집안 사정과 기질 차이로 인해 사이는 매우 나쁘다. 화려한 미모와 예술적 소양, 특유의 강한 자존심과 드센 성격을 가진 귀족 영애의 화신이지만 정정당당하고 우직하며, 특유의 예술적 기질 때문에 다소 공상적이고 엉뚱한 면도 있다.
2. 행적
2.1. 1막(1~2권)
1권에서 금씨 가문의 아용이라는 궁녀를 자칭한 인물이 리리에게 접근해 청가가 창고로 추방당한 주혜월을 괴롭히는데 성공하면 금씨 가문에 거두어 주겠다고 유혹하자 리리는 청가가 상인 기질이라 착각하고 거래를 받아들였다. 정작 그 주혜월의 정체는 황영림이라서 상쾌하게 다 씹고 결국 친해지지만. 이 때문에 황영림은 금청가가 정정당당한 호인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인물이었냐며 아용(?)이 리리에게 거래 담보로 넘긴 비녀를 청가에게 돌려줘 역협박을 하기 위해 중원(中元)절(음력 7월 15일) 행사에 참가한다.[3]청가는 예술가 기질인 금씨 가문의 직계로 태어나 미(美) 원리주의 사상이 강한데, 황영림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모와 재주에 감탄해 황영림이야말로 황후의 자리에 걸맞은 인물이니 자신은 귀비(貴妃)가 되어 용의 기운을 가진 요명을 뒷받침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혜월을 추궁의 시궁쥐라 경멸하고 있었지만 상대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며 무시하고 있었는데, 주혜월이 칠석날 황영림을 누각에서 밀쳐 떨어뜨리고 황영림(=주혜월)의 몸이 악화되어 중원절 연회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주혜월이 추궁을 나가고 싶어질 정도의 망신을 주겠다고 결심해 중원절 히메들의 춤 순서 중 주혜월의 순서를 마지막으로 미루고 춤을 못 추면 물을 끼얹자고 제안했다. 물론 주혜월의 자리는 아예 마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혜월(=황영림)이 혼신의 화장 기술로 화려하고 요염한 미모를 과시하며 자리에 나타나자 당황하고, 튼튼한 얼굴을 한 것 같은데 바닥에나 앉으라고 모욕했지만 영림은 튼튼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바닥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7월의 행사는 금씨 가문의 관장이라[4] 자신이 행사를 주도했는데, 첫 번째는 현가취에게 맡겼고 두 번째는 남방춘에게 맡겼으며 세 번째는 자신이 맡았다.
황영림을 제외하면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가장 뛰어난 춤사위를 자랑하기 때문에 자신만만했으며, 특유의 예술적 감각으로 현가취와 남방춘의 춤을 품평하기도 했다. 가취의 춤은 실수는 없지만 무술을 선보이는 것 같다며 좋아하지 않았고 방춘은 애초에 예술 감각이 자신과 안 맞아서 싫어했다.[5] 자신의 춤이 요명에게 칭찬받자 혜월(영림)을 보며 약옥(藥玉)을 선물로 주는 건 모욕이라며 골려주려 했지만, 혜월(영림)이 비녀를 내밀자 의아해한다. 그러자 금씨 가문의 궁녀들이 청가의 편을 들겠답시고 영림과 리리를 모욕하다가 영림이 분노해 말싸움이 붙고, 이에 귀비가 당장 물러나라며 영림을 압박하지만 영림은 개의치 않고 내 춤이 형편없지 않다면 사과해라는 내기를 하자 잠깐 당황하다가 받아들인다.
하지만 제례용 춤을 추는데 필요한 방울을 시녀가 괴롭힌답시고 실을 잘라 바닥에 뿌려버리자 오히려 시녀들에게 화를 내고,[6] 영림은 순순히 받아들이며 대신 서역의 이국에서 유래된 고난이도 춤인 호선무(胡旋舞)를 선보이자 순간 영림을 떠올렸지만 영림은 허약함 몸 때문에 저런 격렬한 춤을 못 춘다며 정정하고 감탄한다.
청가는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뛰어난 예술은 만인에게 칭송받아 마땅하다며 칭송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영림은 무시하고 비녀를 도둑맞았다고 말한 궁녀 없냐, 알면 신상과 '못 먹는 음식'을 가르쳐 달라고 압박한다. 요명이 영림의 춤에 감탄해서 자기가 소지한 부채를 하사하려 했지만[7] 영림은 깔끔하게 씹었고(...) 이 난장판을 수습하기 위해 리리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금씨 가문의 상위 궁녀 중에 아용이라는 궁녀는 없고, 비녀를 도둑맞았다고 말한 궁녀는 3일 전이 아닌 1달 전이라고 정정해서 영림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직후 귀비가 저기 황씨 가문의 시녀가 왔다 말하고, 동설이 나타나 영림의 상태가 죽기 직전까지 악화되었다고 말해 중원절 의식은 마무리된다.
2권에서 영림이 혜월을 구하겠답시고 밤새도록 파마의 활을 쏘다 쓰러졌고 다음 날까지 깨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듣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직접 시녀들과 함께 창고까지 찾아가서 환자용 과일을 선물했다. 이때 영림은 자고 있었지만 이틀이 지나서야 깨어난 영림은 상대를 배려해서 선물을 할 줄 아는 청가가 아용을 시키지는 않았을 거라며 용의선상에서 제외한다.
한편 영림이 깨어났다는 말을 듣자 숙비와 함께 황기궁에 들른다. 숙비가 영림이 쓰러졌다 깨어난 것 가지고 선물을 잔뜩 주네 마네 난리라면서 출산이라도 했냐며 영림을 까자 진짜 영림의 출산이라면 저러겠냐며, 임신 한 번 못한 숙비는 이해 못하겠다고 숙비를 놀린다. 이에 숙비는 청가에게 그게 숙비인 자신에게 할 말이냐 불쾌해하지만 청가는 지난번에 춤 실력도 별로면서 뻔뻔하게 먼저 나섰다가 망신 당한 거 잘 봤다면서 숙비를 3류라고 깠다.[8] 이에 숙비는 다음 황후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묻자 자신은 충분히 귀비가 될 수 있다 대답하고, 영림이 약해지고 요명이 혜월(실은 영림)에게 관심을 드러낸 사이에 영림을 몰락시키고 최고 지위에 오르라고 부추기지만 무시한다.
청가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숙비를 날려버리고 싶지만 히메는 결국 후비의 제자이자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황태자의 예비 신부일 뿐이기에 비를 대놓고 거역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분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혜월(실은 영림)이 귀비의 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영림(실은 혜월)을 도와준 것을 떠올리고 한탄하기도 했다. 숙비가 영림을 까다가 분노한 황후가 황후의 권력으로 쫓겨나고 싶냐고 위협하자 황후에게 대신 사과하며 뭐하면 근신 정도는 시켜도 상관없다고 돌려 말하자 황후가 웃어넘기면서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자 의외라고 반응한다. 그런데 숙비가 황제의 아들을 낳은 건 황후뿐이지 않냐고 아첨하려다 분노한 황후가 찻잔을 깨뜨리며 자리를 파토내고 히메들에게 공평하게 선물을 나누어 주라고 지시하자 가취, 방춘과 함께 자리를 뜬다.
가취가 왜 황후가 화낸 건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자 "비록 사산(死産)이기는 하셨지만 귀비님께서도 아드님을 얻으셨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아첨하는 건 무례의 극치"라며 한 소리한다. 하지만 방춘이 하지만 그거 가지고 황후가 거기까지 화낼 이유가 있었냐고 묻자, 청가는 확실히 둘이 친하지는 않은 걸로 보인다며 의아해하고 가취는 이전에 귀비가 사산 후유증으로 몸져누웠을 때 황후는 다른 비와 달리 찾아가지 않고 선물도 안 보낸 걸로 안다고 말하자 "숙비는 험담이나 하러 갔을 테니 그 나름의 배려 아닐까"라 추측한다. 그러면서 후궁에서 후비들은 서열에 따라 모든 것이 다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 과정에서 귀비가 망가지고 둘의 사이가 본래는 좋았지만 나빠지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추측하며 앞으로도 이 추궁에서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강하고 아름다워지겠다고 결심한다.
2.2. 2막(3~4권)
3권에서 남령의 온소(溫蘇)라는 마을로 외유를 나갔을 때 풍년제에서 혜월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혜월(=영림)이 훌륭한 춤사위를 보이자 호선무 때를 떠올리며 경탄한다. 하지만 직후 온소의 천민들이 제식장에 불을 지르고 영림과 경행을 납치하자(엄밀히는 스스로 따라간 거지만) 나름대로 걱정하고, 4권에서 영림(=혜월)이 연 다과회에 참석해서 방춘의 언변에 휘둘려 영림과 온소 천민촌을 불태우는데 동의할 뻔했지만 혜월의 기지로 마을 소각을 기각하고 방춘에게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후 사건에 개입하는 일 없이 추궁으로 돌아간다.2.3. 3막(5~6권)
5권에서 황제가 직접 주최하는 겨울 찬앙례를 기대하며 춤 연습에 매진하는데, 예전에는 부채를 사용했지만 영림의 영향을 받아 폐백을 보조 도구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재주 있는 자들과의 경쟁으로 지고의 예술에 도달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한편, 혜월이 중원절과 풍년제에서만 유독 뛰어난 춤을 보인 것 때문에 도사인 아버지에게 무슨 주술을 배워서 그때만 예술의 신이 강림한 건가 의아해하기도 했다.숙비가 나타나 이딴 춤만 가지고 무슨 높은 자리를 얻냐며, 이기기 위해서는 모략을 써야 된다 말하자 추궁은 정정당당하게 뛰어난 재주를 가진 후비를 육성하는 학교라고 항의하며 당신 같은 3류가 뭘 아냐고 항의하다가 따귀를 맞는다. 숙비는 이전까지는 영림의 몸이 너무 약해서 이름뿐인 황후 자리를 봐줄 수 있었지만 4권 사건에서 친구를 구한답시고 천민 마을까지 갔다는 말에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으니 영림을 해치워야 한다며, 이번 찬앙례에서 영림을 암살하는 계책에 동참하지 않으면 너를 아내를 학대하는 늙은 상인에게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하자 위축된다.
첫 번째 경연에서 자신을 특정한 꽃으로 표현하라는 주제에 '모란'을 선택했으며, 영림이 마지막 순번으로 나가도록 부추기면서도 영림을 천막에 깔려 죽도록 지시를 내리는 것을 주저하자 숙비가 청가를 모욕하면서 대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영림과 혜월 모두 살아남았고 각자의 기지로 과제를 완수하는데 성공하자 죄책감을 느낀다. 이후 두 번째 경연에서도 시와 그림을 뛰어나게 해내고, 영림과 혜월의 말싸움이 격화되어 틀어박힌 영림의 멘탈이 완전히 나가 온갖 삽질을 저지르자 걱정하면서도 숙비가 둘을 이간질하는 것에 억지로 동참한다. 평소 거짓말을 싫어하는 청가라서 영림도 속았지만 리리는 진상을 바로 파악하고 둘을 암여우라고 씹었다.
6권에서 숙비가 병문안 선물인 척하고 저주문을 숨긴 인형을 줘서 영림을 반역자로 몰아 죽이게 하려는 계획의 실행자가 되고, 질색하면서도 억지로 따르고 있었지만 이때 만난 영림은 사실 혜월이었다.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하면서 차라리 히메 자리에서 물러날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본 혜월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가가 나약하게 주위에 휘둘리기만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아무리 이 계획에 모든 히메의 협력이 필요하다지만 저런 인형은 필요없다며 그렇게 팔리는 게 두려우면 황씨 가문이 필요한 돈을 주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기녀로 낙적해줄 수도 있다고 비웃었다.
그제서야 청가는 분위기 차이로 혜월이라는 것을 깨닫고 교양 부족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고 너같이 천박한 여자가 영림의 자리를 원해서 빼앗은 게 아니냐며, 취관에게 신고하겠다고 화냈지만 혜월은 오히려 '고작 그 정도냐'라고 코웃음치며 불로 위협하자 바로 주저앉으며 겁에 질린다. 특유의 자존심으로 혜월에게 추하다고 화를 냈지만 오히려 숙비가 위협 좀 했다고 아무 저항도 못하고 휘둘리는 게 네 미학이냐, 네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고만 산다고 처지가 나아지기라도 했냐, 숙비의 말대로 영림을 모함하려는 걸 알면서도 실행조에 나선 네 태도는 저 인형처럼 추하기 그지없다고 디스당하자 "정정해. 나는 추하지 않아. 그리고 인형도 아니야."라며 인형을 부수고 숙비와 싸울 결심을 굳힌다. 혜월이 16년 동안 학대 속에서 (방식의 문제야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싸웠듯이 청가도 17년 동안 할머니와 어머니에서 내려온 삶의 방식이 있다고.
이후 나머지 히메들과 황후, 현비와 손잡고 다같이 문제의 거울 주조를 도왔으며 이때 황영림의 본성을 알고 멘붕하기도 했다. 혜월의 도술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걸고 추궁하지 않은 채 묵묵히 도왔다고. 이후 평소와 달리 반묶음머리를 한 채로[9] 다같이 황제에게 거울의 신통력을 빙자한 혜월의 도술로 안니, 숙비, 덕비의 부정과 3년 전 현무조 살해의 진실을 폭로하고 황제가 상으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숙비에게만 벌을 주고 자신을 비롯한 금씨 가문에게는 연좌를 하지 말 것을 소원으로 빌어 숙비를 내치고 히메 지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에필로그에서 기도사에게 황궁의 기밀을 빼낸혐의와 황영림 살해모의 그리고 자신을 유혹하고자 마약을 쓴 혐의로 황제가 숙비를 금명궁 별실에 연금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이에 여아는 본디 극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신에게는 숙비라는 권력과 재산이 있기에 연금으로 끝났다고 믿고서 자신을 감시하는 궁녀와 취관을 매수해 별실에 각종 세공품과 금은보화를 쌓기 시작했다. 며칠 뒤 방문한 청가는 반성한 기색없는 여아의 모습을 혐오스럽게 보며 쓴소리를 하자, 여아는 청가에게 금명궁은 여전히 내 뜻대로 돌아간다 착각해서 청가에게 신경질을 내며 청추 건으로 패드립을 시전한다.
패드립을 모두 들은 청가는 사실 황제께서는 금명궁의 별실에 숙비를 유폐할 것을 명하며 닷새간 궁녀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가지고 가는것을 허락했는데[10] 자신이 3일로 줄였다고 고백하며, 마지막 반성의 기회[11]를 줬는데도 변함없으니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고, 이제부터 별실은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영구히 유폐될 것이며[12] 식량도 변기도 마련하지 않은 휘황찬란한 방에서 잘 버텨보라며 숙비를 가두고 떠난다.[13]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숙비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과하겠다고 애원했지만 끝까지 속물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는 숙비에게 혐오감만 표하며 무시하고[14],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그저 버티는 것이 옳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리 손에 더러움이 묻더라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피워 보이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이 각오가 청가와 청추, 청가와 청추의 어머니와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한다.
2.4. 4막(7~)
8권에서 영림(혜월), 방춘, 가취와 함께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지방에 파견되었으며 도술 건이 들키면 공범인 너희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협박에 응해 은폐에 협조하고 있다. 혜월의 재능이 모자라다고 열심히 까기는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을 포기하지는 않기 때문에 계속 들볶고 있다고. 방춘의 음험함도 슬슬 짐작하고 있으며 가취와도 원만하게 대화하는 등 선대들과 달리 그럭저럭 상호협력과 대화가 통하는 모습을 보인다.[15]8권에서 20여년 전 금가의 선대 당주가 그에게 원한을 가진 황제의 자객에게 암살당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세대를 고려하면 여자 문제를 일으켰던 청가의 외조부일 가능성이 높다.
3. 인간관계
- 금청추(金清秋) : 존경하는 어머니. 3막에서 청가가 숙비의 협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극심한 가난을 비롯한 수십 년간의 괴롭힘 속에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걸 보면 멘탈은 청가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청가가 6권에서 정신을 차린 이유도 어머니와 외조모에게서 물려받은 긍지가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 영요명(詠尭明) : 경애하며 따르는 황태자. 이성적으로 사랑한다기보다는 요명이 가진 용의 기운과 황자로서의 위엄에 심취한 것에 가깝다. 청가의 목표는 영림이 황후, 자신이 귀비가 되어 요명을 받치는 것이다.
- 황영림(黄玲琳) :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의 미학을 체현시킨 존재라며 매우 고평가하며 영림이라면 황후 자리를 넘겨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림은 청가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청가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며 고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6권에서 영림의 본성(...)을 알게 되자 기겁을 하면서 호접의 이미지는 저 멀리 날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진 건 아니다. 8권으로 가면 영림의 성격을 짐작하면서도 열심히 현실부정을 하고 있어 혜월이 속으로 동정까지 할 정도.
- 주혜월(朱慧月) : 주씨 특유의 괄괄한 기질과 시골 서민 출신의 언행 때문에 천성 귀족 영애인 청가는 혜월이 교양 없다며 아주 싫어하며, 혜월도 청가를 겉멋만 들었다며 싫어했다. 영림은 둘 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직한 면이 닮았다고 평했으며, 실제로 히메들 중에서는 가장 성격이 비슷한 편이다. 오행의 화극금(火剋金)의 특성상 혜월의 상성이 위인데, 6권에서는 영림의 몸을 쓰던 혜월에게 내내 위압당했으며 혜월이 "지금 숙비에게 휘둘리는 네 행동은 추하기 그지없다"고 일갈하자 나는 추하지 않다며 정신 차리고 숙비와 맞서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혜월이 청가를 싫어한 이유가 나오는데, 혜월의 성격은 문제가 많지만 이는 혜월이 성장환경의 특성상 어떤 식으로든 주위에 맞서지 않으면 처참하게 도살당할 운명이었기에 (수단에 문제는 많아도) 어떻게든 저항했지만 청가는 막상 숙비가 작정하고 위협하자 휘둘리는 모습이 입만 산 것처럼 보여서였다고. 여전히 가치관 차이로 서로 질색하지만 6권 이후에는 악우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 현가취(玄歌吹) : 무뚝뚝하고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꺼려서 별로 대화는 없었고 잘 모르는 사이. 하지만 6권에서 가취의 대략적인 사정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아 이후에는 원만해졌을 듯.
- 남방춘(藍芳春) : 백(白)씨계의 예술적 미학이 시문(詩文)을 관장하는 남(藍)씨의 미학과 안 맞아서 싫어하며, 금극목(金剋木)의 특성상 본능적으로 남방춘에게 위압하려고 한다. 남방춘의 본성을 알게 된다면 극혐할 가능성이 높다.
- 황견수(黄絹秀) : 황후가 가진 장대한 대지와도 같은 위엄에 황영림과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을 느껴 존경하고 있으며, 마음 같아서는 저열한 숙비보다 견수의 편을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6권에서 황후와 손잡고 숙비를 날려버렸으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3.1. 금여아
청가는 자신의 이복 이모인 숙비 금여아(金麗雅)와 처음부터 끝까지 사이가 나쁘다 못해 사실상 원수지간이었는데, 이는 가문의 특성과 가정사 문제에서 기인한다.영나라 서부를 통치하는 서령 금씨(西領 金氏)는 예술을 관장하는 예술가 기질의 직계와 상업을 관장하는 상인 기질의 방계가 나뉘며 청가는 전자라고 한다. 소설 2권의 서술에 따르면 본래 서부 일대의 영주는 금(金)을 제례에 쓰는 신관 가문인 서령 백씨(西領 白氏)였지만 특유의 예술적, 공상적 기질로 인해 영지 경영에 실패해 방계인 금씨(金氏)에게 영주 자리를 빼앗겼다. 하지만 이들도 상인 특유의 속물적인 면과 근시안적 행보로 인해 영지 경영을 크게 망친 적이 있고 舊 백씨로 인해 위기를 모면하자 이들은 타협 끝에 현 금씨 직계는 舊 백씨가 담당해 예술과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상업과 비전을 현실화하는 일을 금씨 방계가 맡으면서 상반된 기질이 공존하는 현재의 서령 금씨 가문으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기질 차이가 심해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서로 깔보면서 싫어하기 일쑤였다.
금씨 당주는 舊 백씨인 정실과 방계인 측실과의 사이에서 각각 청추(清秋)와 여아(麗雅)라는 딸을 두었는데, 당주는 정실과 적장녀가 가진 백씨 특유의 강한 자부심과 미학을 부담스러워해 속물적이고 바위를 잘 맞추는 측실과 여아를 편애했고, 이에 측실과 여아는 정실과 청추를 지독한 가난에 몰아넣고 온갖 괴롭힘을 가했다. 여아의 말을 보면 이들이 강한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굴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었던 모양. 여아는 이복 언니를 제치고 온갖 사치를 부리다 청추의 히메 자리를 빼앗아 대신 히메가 되었다.
여아의 어머니는 청추를 상견례(相見禮)를 빙자한 인신매매로 천박한 성품의 졸부에게 팔아버렸고, 청추는 남편과의 기질 차이로 인한 갈등과 금씨 방계의 횡포의 피해자들에게서 매일마다 항의를 듣는 듯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청추와 청추의 어머니는 백씨 특유의 강한 자부심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수십 년간 온갖 고난을 버티며 청가를 교육시켰고, 청가는 그런 어머니와 외조모를 보며 자신도 이런 어머니와 외조모를 본받아 강한 자부심과 미학을 가진 재녀가 되어 어머니와 외조모의 삶의 방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세월이 흘러 돈벌이에만 열중하던 방계에서 마땅히 히메로 내세울 만한 영애를 찾지 못하자 여아는 사이가 나쁨에도 청가의 미모와 재주가 조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이유로 히메로 지정했고, 청가는 그럴 줄 알았다며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귀비의 자리에 올라 숙비도 금씨 가문의 썩어빠진 인간들을 쳐내겠다는 마음으로 입궁했다. 이러다 보니 청가는 공공연히 숙비를 무시하곤 했고, 숙비도 마음 같아서는 내쳐버리고 싶지만 마땅히 대신할 만한 사람을 못 구해서 서로 기싸움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5권에서 숙비가 더는 못 봐주겠다며 이번 찬앙례 때 황영림을 몰락시키지 못하면 아내를 심하게 학대하는 늙은 부자에게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하자 겁에 질린 청가는 숙비에게 휘둘렸고, 본인도 그런 상황을 싫어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다. 6권에서 이런 상황을 한심하게 본 주혜월이 지금의 너는 겉모습만 예쁘고 숙비에게 휘둘리는 그 행동이 추하기 그지없다고 디스하자 그제야 정신 차린 청가는 "나는 추하지 않아. 그리고 인형도 아니야."라며 정신을 차리고, 여아에게 3대에 걸친 원한을 복수하는데 성공한다.
4. 기타
특유의 성격과 예술가 기질에서 나오는 엉뚱한 사고방식과 달리[16] 의외로 상식적인 면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비중도 많으며 인기 캐릭터다. 연재본 당시에는 히메들 중에서 영림, 혜월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캐릭터 항목이 있었을 정도이며 나무위키에서는 가장먼저 단독항목이 만들어졌다.중화풍이 배경이라 흑발이 많은 본작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밝은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고수머리를 하고 있다. 이복 이모인 금여아도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 눈동자인 걸 보면 금씨 가문 특유의 외형인 듯.
청가는 본인은 귀비, 영림이 황후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독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혜월이 추녀를 그만두지 않으면 요명에게는 혜월이 영림 다음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혜월의 서열이 더 높을 것이며 남방춘은 2막 사건 때문에 요명에게 찍혀 최하위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숙비~덕비 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선대인 여아가 친 사고를 고려하면 오히려 덕비로 내려갈 수도 있다.(...) 혜월이 추녀를 그만둔다면 서열이 변동될 수도 있지만 영림의 입장과[17] 여아 문제 때문에 귀비는 무리라는 평이 많다.
[1] 작중에서 금(金)씨 성을 쓰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언급된 아버지의 출신을 보면 어머니 청추(清秋)의 성을 대신 쓰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주혜월의 주(朱)씨 성도 엄밀히는 어머니의 성인데, 100년 전 추궁 체제가 성립되면서 오로지 다섯 가문의 성(姓)만 입궁이 허락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금씨 가문에서 내세우는 히메인데 금씨 성을 안 쓰는 것도 부자연스럽기는 하고.[2]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백(白)씨라 호칭되지는 않지만, 소설 2권에 나온 서령 금씨(西領 金氏) 가문의 기원과 청가의 출신, 특징을 생각할 때 백씨가 본성(本姓)에 더 가깝다.[3] 주혜월이 황영림과 몸을 바꿔 7일간 근신을 명령받았는데 이때가 칠석(음력 7월 7일)이라 근신 기간이 끝난 뒤라 참가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진짜로 주혜월(=황영림)이 참석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4] 중국의 음력에서 1~3월은 봄, 4~6월은 여름, 7~9월은 가을, 10~12월은 겨울로 취급한다. 물론 실제 날씨는 이와 전혀 맞지 않지만(...) 관례적으로 그리 취급되었기에 7월 행사를 가을(秋)을 상징하는 쇠(金) 속성의 금씨 가문이 담당한 것이다. 실제 작중에서 양력으로는 8월~9월 초인 해당 사건이 관례와 별개로 제일 무더울 시기라고 명시하고 있다.[5] 시(詩)와 학문을 관장하는 남(藍)씨의 예술 취향은 백(白)씨와 정반대라고 하며, 금극목(金剋木)이라는 오행의 특성상 백씨가 남씨를 위압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고 한다.[6] 청가의 예술가적 자부심의 특성상 못난 춤을 보인 무용수에게 물을 끼얹을 수는 있어도 춤을 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애초에 이 상황은 자신의 시녀가 영림의 시녀에게 인종차별을 하자 영림이 정당하게 반박하며 사과를 요구한 것인데, 여론도 영림의 말에 공감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동까지 벌였다가는 청가의 위신이 손상되었을 것이다.[7] 요명의 소지품을 하사받은 히메는 '전하의 호접'이라 불린 황영림밖에 없다고 한다.[8] 숙비는 황후와 귀비 자리를 견수와 아미에게 빼앗긴 것에 울분을 가지고 있었다.[9] 히메는 엄밀히는 미혼 처녀이며 자신의 미숙함을 드러내고자 반묶음머리를 하지만 청가는 특유의 자신감과 성숙한 외형 때문에 평소 주저 없이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10] 즉, 지금껏 궁녀와 취관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가 헛짓거리였다.[11] 여칙(女則)을 비롯해 각종 교본과 경전을 필사할 것. 하지만 여아는 홧김에 쓸어서 내동댕이 쳐버렸다.[12] 근신기간 단축에 추녀의 손가락 하나가 필요하다는것으로 보아 추녀도 자신의 신체를 걸정도의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이니 황제도 말로만 근신이지 숙비에게 사형선고를 내린것.[13] 사실 마약과 기밀을 빼낸것은 덕비도 하였지만 안니의 자백에서 숙비만 거론한 덕분에 덕비는 무기한 유폐를 당했어도 숙비와 다르게 취관을 부르거나 물건을 요구하는데 제약은 없었다. 하지만 방춘의 모략으로 인해 근신기간 동안 궁녀들이 숙비를 보필할수있게 탄원하였고 황제가 이를 받아들여 오랫동안 숙비에게 학대와 고문을 받아왔던 궁녀들에게 언제 끝날지 알수없는 근신기간 동안 자신이 궁녀들에게 하였던 고문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14] 문을 잠그고 다시는 열지못하도록 못질까지 함은 물론 숙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창문까지 막도록 지시하였다.[15] 희한하게도 전대들과 달리 이번 세대는 전원이 권력다툼에 관심이 없다. 혜월조차 흑화 당시에는 애정결핍의 충족을 원했지 권력을 원한 게 아니었고 남방춘도 성격이 뭐같은 것과 별개로 권력다툼에는 예나 지금이나 관심없고 유열의 충족에만 관심을 가진다.[16] 연재본 외전을 보면 제일 상식적인 주씨의 입장에서 구 백씨와 남씨 특유의 감수성은 영 부담스럽다고 한다. 물론 가장 4차원적인 황씨와 냉혹한 성격인 현씨는 당연히 논외.[17] 정치적인 균형관계 상 한 가문에서 연속으로 황후가 나오면 안 된다. 영림이 황후로 논의된 것은 영림이 지나치게 허약해서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 영림의 몸이 나으면 그런 거 없다. 실제로 영림의 몸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자 3막에서 금여아와 남방림이 바로 영림을 죽이려고 했을 정도. 황씨 가문도 그 점을 알기 때문에 영림을 입궁시키는 것을 반대했으며 영림을 황후로 만들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