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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6:51:09

기오르기 2세(카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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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티온 왕조
기오르기 1세 알렉산드레 1세 기오르기 2세 레반
바그라티온 왕조
알렉산드레 2세 다비트 1세 콘스탄틴 1세 테이무라즈 1세
바그라티온 왕조
아르칠리 에레클레 1세 다비트 2세 콘스탄틴 2세
바그라티온 왕조
테이무라즈 2세 에레클레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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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헤티 왕국 3대 군주
გიორგი | 기오르기 2세
제호 한국어 기오르기 2세
조지아어 გიორგი
라틴어 George II
별명 악한 자 기오르기(ავგიორგი)
가족 알렉산드레 1세(아버지)
안나 티나티나(어머니)
디미트리오스(동생)
엘레네 이루바키제-촐로카슈빌리(아내)
레반(장남)
흐바람제(장녀)
마리암(차녀)
생몰 년도 1464년 ~ 1513년
재위 기간 1511년 ~ 151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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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헤티 왕국 3대 군주.

2. 생애

카헤티 왕국 제2대 국왕 알렉산드레 1세와 조지아 귀족 가르세반 촐로카슈빌리의 딸 안나 티나티나의 장남이다. 동생으로 디미트리오스가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아버지가 동생을 총애하는 걸 보고 계승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결국 1511년 4월 27일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처형하고 동생을 실명형에 처한 뒤 왕위에 올랐다.

민심이 이 일로 요동치자, 그는 군사적 위업을 세워 백성들의 인정을 받기로 하고 카르틀리 왕국을 침략했다. 카르틀리 왕 다비트 10세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두 왕국의 국경 지대에 무크라니 공국을 세우고 동생 바그라트를 초대 공작으로 세웠다. 1512년, 기오르기 2세는 무크라니 공국의 주요 요새인 치키스지리를 공격했으나 함락에 실패했다. 1513년, 다시 므츠헤타 인근으로 진군했다가 바그라트의 군대에게 매복 공격을 받고 생포된 뒤 므트베리 요새에 투옥된 후 얼마 안가 옥사했다.

그는 생전에 엘레네 이루바키제-촐로카슈빌리와의 사이에서 아들 레반과 두 딸 흐바람제, 마리암을 두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레반은 9살에 불과했다. 다비트 10세는 그가 사망하면서 카헤티 왕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쳐들어가서 카헤티 왕국을 병합했다. 레반은 충성스런 귀족들과 함께 산 속에 숨었다. 그러다 1518년 사파비 제국이스마일 1세가 카르틀리 왕국을 공격한 틈을 타 카헤티 왕으로 즉위했다.